차별을 부수며 달려온 <헤드윅>의 14년
헤드윅의 역사를 돌아보다
글. 장경진 (객원기자, 공연칼럼니스트)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입은 트랜스젠더라는 낯선 존재, 폭발하는 록 사운드와 비극적인 스토리. <헤드윅>의 등장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2005년 초연 이후 올해로 14년, <헤드윅>의 한국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인 뉴욕을 포함해 전 세계 <헤드윅> 중에서도
가장 많이 공연(2,150회)되고 가장 많은 관객(56만 명)이 관람한 공연으로 기록된다.
<헤드윅>의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의 내한공연을 맞이해 그간 헤드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헤드윅>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2년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당시 누적 관객 수는 4만 명. 지금의 성공을 생각한다면 다소 초라한 기록일 수도 있겠다. 물론 개봉 이후 <헤드윅>은 입소문을 타며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트렌스젠더라는 낯선 존재는 가장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런 <헤드윅>이 대중의 영역으로 올라온 것은 2005년 4월에 시작된 뮤지컬로부터다. 당시 영화 <와니와 준하>, <후아유>, <클래식>으로 입지를 다지던 조승우의 선택으로 <헤드윅>은 단숨에 양지로 올라왔다. 작은 극장에서 공연된 탓에 티켓 매진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암표 가격은 250%를 호가하기도 했다.
1인 스탠드업 콘서트라는 작품의 형식상 <헤드윅>은 배우의 성향과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조승우는 “헤드윅이라는 사람이 펼치는 쇼에 중점”을 두고 무대에 선다. 초연을 포함해 다섯 시즌 동안 그는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했고, 덕분에 그의 공연은 각종 애드리브가 더해져 3시간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헤드윅>의 연출을 맡았던 이지나 연출가는 연출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영리한 조승우가 “얄밉다” 했고, 또 다른 연출가 손지은은 “헤드윅은 조승우 피부의 한 부분”(<더 팩트>)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100번을 하면 100번 다 다른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조승우의 헤드윅은 ‘자유’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조승우만큼 <헤드윅> 무대에 자주 섰던 조정석 역시 장난기 많고 유들거리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무대를 휘저었다. 시침 뚝 떼고 펼쳐놓는 조정석만의 리듬과 호흡의 위트는 관객이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힘이다. 헤드윅의 “우는 것 대신 웃는 것을 선택했다”는 대사가 구체화된 것이 바로 조정석의 헤드윅이다.
헤드윅이 갖고 있는 오욕칠정 중 분노에 집중한 배우도 있다. 바로 가장 많은 여섯 시즌 동안 헤드윅으로 살아온 송용진이다. 그는 초연 당시 함께 캐스팅된 조승우, 김다현, 오만석 중 가장 매니악한 배우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본인이 록커였던만큼 송용진의 헤드윅은 가장 뜨거운 헤드윅으로 기록된다.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폭발시킨 그의 헤드윅은 ‘록뮤지컬’이라는 단어의 정의와도 같았다. 이후 2009년에 윤도현이 헤드윅으로 참여하며 <헤드윅>의 록스피릿은 훨씬 강해졌다. 특히 그는 10년 이상 한 팀을 꾸려온 YB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초연부터 쭉 참여해온 <헤드윅>의 이준 음악감독은 “거칠긴 해도 하나의 음악을 함께 해온 밴드의 호흡이 작품 전체에 영향을 줬다”(<텐아시아>)고 기억한다.
<헤드윅>을 드랙퀸의 화려한 쇼나 심장을 울리는 록 사운드로 설명해도, 결국 이 뮤지컬은 일생을 상처 속에 살아온 한 인간에 대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여왕님’이라는 호칭을 받은 오만석의 헤드윅은 여전히 가장 슬픈 헤드윅으로 회자된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고, 자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성기를 잘라내야 했고, 버려짐의 상처와 가난을 안고 삶을 일궈야만 했던 인물. 오만석은 군더더기 없이 헤드윅이 겪어온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관객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헤드윅>을 탄생시킨 존 카메론 미첼은 “오만석의 헤드윅을 보고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말로 그의 연기를 칭송하기도 했다. 2006년 출연 당시, 늙은 창부 같은 피로함을 무대에서 보여준 이석준은 이름을 딴 별명 대신 ‘베로니카’라 불리기도 했다.
국내에서 공연된 기간이 길어지며, 기존과는 다른 해석의 헤드윅들도 등장했다. 언제나 인물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품 전체를 관조하는 최재웅과 <헤드윅>의 2009년 조합은 관객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있었다. 최재웅의 묘한 저음과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표정에는 더 이상 징징대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아름다운 외모로 부각될 줄 알았던 2011년의 김재욱 역시, 읊조리는 듯 불친절한 연기로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무대 밖 실제 트렌스젠더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했다. <헤드윅>은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남성 배우들의 여장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들의 미모에서 비롯된 ‘꽃드윅’, ‘뽀드윅’, ‘짱드윅’ 같은 별명이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1년에 이어 2013년에 다시 무대에 오른 김동완은 ‘헤드윅=미모’라는 공식을 깨듯 접힌 뱃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소외 당하는 여자”(<더뮤지컬>)로서의 헤드윅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1년 당시 스물넷이라는 가장 어린 나이에 헤드윅을 맡은 손승원에게서는 서툴러서 아름다운 시절의 아련함이 있었다. 손승원은 헤드윅을 통해 성장한 토미에 자연스레 공감했고, 그런 그의 토미 덕분에 “신비한 신의 창조물 같은 당신”이라는 가사가 구체화되며 헤드윅은 또다시 새로운 인물로 탄생한다. 2017년의 마이클 리는 한국 <헤드윅> 역사상 유일한 배우로 기록된다. 최초의 원어 공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헤드윅이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 경계에 선 자의 불안을 가장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재미교포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40여 년을 살아온 이방인의 노래에는 당사자의 경험이 자연스레 배어나왔다.
여전히 <헤드윅>은 ‘도전’ 그 자체로 설명된다.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옆에서 지켜주는 캐릭터로 사랑 받아온 유연석이나 강태을, 정문성처럼 강한 인상의 배우들은 <헤드윅>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 남성 배우에게만 주어진 기회의 역을 여성 배우인 차지연은 오래 전부터 꼭 하고 싶은 배역으로 꼽아왔고, 지난 1월에 있었던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헤드윅>의 엔딩곡인 ‘Midnight Radio’를 부르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2016년에 레나 홀이 이츠학에 이어 헤드윅으로 무대에 섰다. 헤드윅은 동독 출신의 트렌스젠더라는 한 개인이지만, 수많은 약자의 합집합이기도 하다. 1998년, 낡고 허름한 호텔의 한 볼룸에서 시작된 <헤드윅>은 전 세계의 수많은 차별을 깨부수며 나아간다. 앞으로도 <헤드윅>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배우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 새로운 얼굴을 한 헤드윅이 탄생했지만, 그 모든 헤드윅의 바탕에는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이 있다. 그 ‘영감’의 원천, 존 카메론 미첼이 한국에 온다. 그것도 ‘스페셜 에디션’ 공연과 함께.
작품의 모티브가 된 자전적 경험부터 작곡가 스티븐 트래스크와의 우연한 만남,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연인에 관한 추억까지, 존 카메론 미첼이 직접 전하는 <헤드윅>의 탄생 비화가 강력한 로큰롤 사운드와 함께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헤드윅>의 주옥 같은 넘버들로 구성될 이번 콘서트에서는 어떤 모습의 <헤드윅>이 관객을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