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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아이들의 욕망과 감정을 다룬 뮤지컬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아이들의 욕망과 감정을 다룬 뮤지컬

글. 장경진 (객원기자, 공연칼럼니스트)


2018년 뮤지컬은 어린이 배우들에 의해 시작되고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락해가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꿈에 대해 이야기한 <빌리 엘리어트>가 상반기를 책임졌다면, 하반기는 어른을 향한 통쾌한 복수극인 <마틸다>가 기다리고 있다. 12월에는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애니>도 7년 만에 돌아온다. 단순히 어른들의 각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아이들의 욕망과 감정을 다룬 뮤지컬들을 알아본다.

 

<애니>,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소녀



1976년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장 유명한 어린이 뮤지컬로 소개된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드문 탓도 있지만, 애니만큼 전 연령에서 사랑 받는 아이도 드물기 때문이다. <애니>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전면에 세운다. 그러나 작품 어디에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늘 술에 취해 아이들을 구박하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고아원장 해니건은 우스꽝스럽다. 아이들은 키가 자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노래하지만, 그 노래는 희망찬 미래를 예고하듯 밝고 경쾌하기만 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시 애니다. 애니는 희망을 잃지 않은 채 긍정의 에너지로 고아원 친구들을 달랜다. 수시로 고아원을 빠져 나오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는 열한 살. 감정 없이 돈만 쫓아오던 억만장자 워벅스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 것도 애니가 가진 특유의 긍정 에너지 덕이다. 그런 애니를 가장 잘 설명하는 곡은 역시 ‘Tomorrow’. 티 없이 깨끗한 목소리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틀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Tomorrow’가 대공황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위로의 노래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애니의 노래에 감명 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모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Tomorrow’가 한 개인의 노래가 아닌 모두의 노래라는 것을 증명한다.

<빌리 엘리어트>, Always be yourself



“별 볼일 없는 우리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야.” 이 대사만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잘 설명하는 것은 없다. 빌리는 아버지와 형 모두가 광부로 일하는 탄광촌에서 자란다. 어른들이 민영화에 반대하며 1년 째 파업 중이지만, 아이들에게 만큼은 권투와 발레를 가르치는 곳.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마초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빌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춤을 만난다. 때문에 빌리는 발레는 물론, 탭댄스와 스트리트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춘다. 그 강도가 어마어마해서 <빌리 엘리어트>는 “어린 아이에게 마라톤 풀코스를 뛰면서 햄릿을 연기하라고 요구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활약 중인 톰 홀랜드 역시 2008년부터 3년간 빌리로 영국 무대에 섰다. 오랜 시간에 걸친 오디션과 1년에 이르는 트레이닝 끝에 빌리는 탄생하고, 무대는 작은 소년이 구현해내는 환상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빌리가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와 추는 파드되는 우아하고, 거대 드레스들과 함께 하는 탭댄스는 화려하고 흥겹다. 뮤지컬은 빌리가 처한 어려운 환경을 외면하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빌리 가족을 향한 지역사회의 연대와 언제나 네 자신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작품의 메시지는 빌리 또래의 아이들은 물론 성인 관객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이 작품이 어린이 뮤지컬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틸다>, Girls can do anything!



작품 속 젠더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때다. 그러나 여전히 주체적으로 활약하는 여성 주인공을 뮤지컬 무대에서 보기는 어렵다. 나이가 어리다면 더더욱. <마틸다>는 뮤지컬로서의 다양한 매력은 물론, 바로 이 지점에서도 주목 받는 작품이다. 남들은 부모에게서 “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살지만, 마틸다는 태어나자마자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박을 받는다. 외모를 가꾸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엄마는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는 태도로 마틸다를 대하며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한다. 마틸다는 그런 부모의 말에 수긍하는 대신 책을 통해 터득한 방법으로 어른에게 복수하는 것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절대 공평하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삶을 바꿔주지 않기 때문에. 특히 <마틸다>는 아이들만의 행동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부당한 판을 엎으며, 어쩔 수 없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뮤지컬들에 비해 한발 앞으로 나간다. <마틸다>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들이 아이들의 앙상블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들은 학교에 함께 등교해 그네를 타고 뜀틀을 넘는다. 곤경에 처한 친구에게는 선생님이 아닌 다른 친구의 용기 있는 응원이 힘이 된다. <마틸다>는 아이들 모두를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싸우고 노래하며 성장한다. 그러니 왕자의 도움을 받아 구해지는 공주 이야기에 신물이 난 마틸다가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서편제>, 넌 자라 내가 되겠지



다양한 리스크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은 어린이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자주 제작되지 못하는 이유다. 때문에 어린이 배우들이 맡는 역할은 <모차르트!>의 아마데처럼 천재의 재능을 상징하거나,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쉬처럼 사건의 기폭제 같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창작뮤지컬에서는 이조차도 시도되기 어렵지만, 한 가족의 50년에 가까운 삶을 그린 <서편제>는 어린이 배우들을 통해 작품의 한계를 돌파해낸다. 어린 송화와 동호는 한편의 수묵화 같은 무대 위에서 소리를 하며 성장한다. 어린 동호와 성인 동호는 어머니의 죽음을 함께 겪어내고, 어린 송화와 성인 송화는 그런 동호를 위로하며 함께 ‘살다보면’을 부른다. 서로 다른 옥타브가 내는 음악은 깨끗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데 더없이 훌륭하다. <서편제>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해내는 인물을 그린다. 21세기의 관객에게 이 가족의 이야기는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극 초반 송화와 동호가 겪어내는 일들을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이 배우들이 연기하자 작품에는 현실감각이 살아나고, 관객은 이 극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서편제>는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만으로 어린이 배우들의 활약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자라 어른이 되니까.

송년 가족뮤지컬 <애니>

일정 : 2018.12.15 (토) ~ 2018.12.30 (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화,목 19:30 / 수,금, 토, 일 15:00, 19:30 / 공휴일 15:00

연령 : 만5세 이상 관람가(미취학아동 부모동반입장)

티켓 : VIP석 7만원 / R석 5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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