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이고 현대적인 <카르멘>의 도발
서울시무용단 창작무용극 <카르멘>
안무·연출가 제임스 전 인터뷰
글. 장혜선 (객원기자) 사진. 유영춘
제임스 전이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카르멘>의 안무를 맡았다고 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제임스 전의 행보는 발레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다.
제임스 전은 이러한 편견에 대해 ‘이 시대의 한국무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서울시무용단은 서양의 고전문학과 한국무용을 새롭게 결합한 ‘문학과의 만남’ 시리즈를 시작했다. 작년에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오는 5월에는 <카르멘>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명의 오페라인 비제의 <카르멘>을 골자로 삼았지만 오페라 대본을 경쾌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의 안무를 맡은 제임스 전은 줄리아드 대학 무용과에서 수학했다.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 플로리다 발레의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1995년에는 민간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여 예술감독으로 20여 년을 활약했다. 2001년 <생명의 선>, 2002년 <이너 무브스>, 2004년 <12를 위한 변주>를 네바다 발레 시어터에 수출했고, 2008년 <이너 무브스>를 노바 발레에 판매했다. 제임스 전은 이번 서울시무용단과의 작업을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제임스 전과 나눈 일문일답.
20년 넘게 이끌어온 서울발레시어터를 나온 지 어느덧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가.
오랜 기간을 서울발레시어터에만 집중하며 살아 왔다. 늘 춤을 추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발레단 운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는 춤을 많이 추며 시간을 보냈다. 몸을 만들어야 무대에 설 수 있으니 열심히 몸 관리도 했다. 이전까지는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지난해에는 오직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 큰 변화라고 할 순 없지만, 작은 변화가 있던 한해였다.
서울시무용단과 작업한다는 말을 듣고 꽤나 놀랐다. 그동안 발레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어떠한 계기로 서울시무용단과 함께하게 됐는가.
2016년 겨울, 서울시무용단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여러 이유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카르멘> 안무 의뢰가 다시 들어와 매우 기뻤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유독 발레와 현대무용, 전통무용으로 춤을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는 줄리아드 대학 무용과에서 수학할 당시 여러 춤을 다양하게 배웠다. 줄리아드 대학의 목표는 ‘무용수’와 ‘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이어서 한 가지의 춤 스타일만 가르치지 않는다. 이후 한국에서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발레만 하게 된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했고, 서울발레시어터를 이끌다보니 ‘발레안무가’로 이미지가 굳혀졌다. 그동안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서울시무용단과 함께하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다.
아무래도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은 전통무용이 익숙할 텐데,
무용수들과의 소통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나는 한국 전통무용의 독특한 느낌을 좋아한다. 한국의 ‘미(美)’가 예쁘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잘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작품을 잘 풀어가고 있다. 이미 2주 전에 안무를 끝냈고 이제는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사실 이렇게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지 몰랐다. 서울시무용단 무용수들의 역량이 대단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추구하는 방향이 똑같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단 하나의 마음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제임스 전도 ‘발레안무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겠다.
작품이 잘 나오면 그렇게 되겠지(웃음). 어찌 됐든 이번 작업은 나에게 무척 특별하다. 여태껏 작품을 많이 만든 편이라 그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면 작품을 만들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드물다. 그런데 서울시무용단과 함께하는 이번 작업은 매순간이 행복하다. 이제 나이가 꽤 들었는데, 늦게나마 이런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보통 <카르멘>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비제의 오페라가 떠오른다. 이번 작품에서 비제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맞다. <카르멘>이라고 하면 당연히 비제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페라의 캐릭터들이 생각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답은 비제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제의 음악을 중심으로 1시간 20분짜리 작품을 구상했다. 만약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기간이 나에게 2년 정도 주어졌다면, 음악을 아예 새롭게 구상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음악까지 다시 작업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다만 기존의 스토리에 변화를 줬고, 서울시무용단만의 움직임을 덧입혔다. 다행히 비제의 음악이 스페인 민속 음악 느낌이어서 서울시무용단 무용수들과 잘 어울린다.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적 정서가 스페인 사람들과 잘 맞는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 모두 열정적이고 다혈질이다. 게다가 서울시무용단 무용수들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예를 들어 부채를 펼치고 접을 때에도 움직임이 부드러우면서 강인하다. 발레 무용수들과는 또 다른 감수성이다.
무용극이 다이내믹을 잘 이끌려면 일차적으로 대본의 구성이 중요하다. 작품의 스토리텔링 관련해선 극작을 맡은 서지영과 어떠한 점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내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오리지널 스토리에 더욱 개연성을 주고자 했다. 인물의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중심으로 원작 스토리를 변형했다. 원작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심리에 개연성을 더했다. 그리고 원작의 시대와 오늘날의 시대는 매우 다르다. 여성상도 많이 변했다. 원작의 약혼녀 미카엘라는 순박하고 순종적으로 나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솔직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약혼자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다면 가만히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 미카엘라는 자신의 질투와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대본을 살펴보니, 카르멘의 독무를 뱀춤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 깊은데.
다른 안무가들은 보통 그 부분에서 카르멘과 호세의 이인무를 넣는다. 카르멘과 호세가 에로틱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카르멘은 혼자 뱀춤을 추고, 호세는 사과를 맛있게 먹는 장면을 설정했다. 사과와 뱀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성경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사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성(性)을 알지 말라는 뜻이었다. 상징적인 오브제를 사용해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오디션을 통해 직접 주역 무용수를 결정했다. 입단 3년 차에 접어든 오정윤과 김지은을 카르멘 역으로 캐스팅한 동기가 궁금하다.
서울시무용단의 무용수들이 다 춤을 잘 춰서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처음부터 카르멘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무용수들도 있었다. 이에 비해 오정윤과 김지은 무용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를 알려주면 세 개를 보여주는 무용수들이다. 자꾸만 채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번 공연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 확신하는 점이 있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작품을 보고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외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반응이 뜨거울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카르멘’이라는 소재, 비제의 음악, 그리고 서울시무용단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춤의 색이 어우러지면서 벅찬 감동을 불러온다. 우리는 모두 한국 정서를 지닌 한국 사람이지 않은가. 우리가 하는 작업이 바로 동시대 한국무용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