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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생 우리들

마흔의 미혼을 위한 질문

78년생 우리들

마흔의 미혼을 위한 질문

글. 김신회(에세이스트, 저서 〈서른은 예쁘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

30대 때, 조금 더 정확히는 30대 중반까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만나는 사람은 있어요? 결혼은 했어요?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나니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듣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 얼굴에 나이가 새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세상에는 두 가지 나이가 있다. 하나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만 나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고 들어가는 한국 나이다. 올해 나는 만 나이로는 서른아홉이 됐고 한국 나이로는 마흔한 살이 됐다. 의도치 않게 삼십대와 사십대를 넘나들며 살고 있지만 심적으로는 비로소 마흔에 안착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나에게 질문과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실감 때문이다.
30대 때, 조금 더 정확히는 30대 중반까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만나는 사람은 있어요? 결혼은 했어요?, 왜 안 했어요? 결혼 안 할 거예요? 비혼인 건 아니죠? 등 대부분이 나이와 결혼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가 어떤 답을 하건 질문한 사람에게는 그 내용이 석연치 않았던 모양인지 질문 뒤에는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가 따라붙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이를, 결혼 적령기를, 임신 가능성을 염려했고 몇 명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예비 신랑감을 구해주겠다며 혈안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웃음이나 무뚝뚝한 말투, 발끈하는 표정으로 대응해왔지만 그들의 애정 어린(!) 조언과 참견이 결코 반가웠을 리 없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나니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듣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 얼굴에 나이가 새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애인이 없다는 것,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는 숨겨지지 않는 외모(!)가 된 건가.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건가 싶어 씁쓸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새 판에 박힌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궁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아직 결혼 예정자도 존재하지 않는 싱글 여성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때로는 그 호기심이 걱정이나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 되면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일은 어른의 당연한 의무이고, 아이를 낳는 일은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므로 그 둘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은 어른일 자격이 없다는 눈총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기 엄마’, 또는 ‘어머님’으로 불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사십 대 미혼의 여자를 부르는 말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주변 어르신들은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이 없다는 것,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볼 때마다 “나 아는 사람 아들이 있는데...”라는 말씀을 건넨다. 이미 결혼한 선배나 친구들은 “설마 독신주의는 아니지?”라며 내 눈치를 살피면서, 건너 건너 아는 남자들까지 총동원해 어떻게든 엮으려 든다. 만에 하나 만나는 남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신랑감으로 적절한지 아닌지를 점검하고, 일에 파묻혀 살고 있을 때는 ‘그러느라고 결혼을 못 하는구나’라며 너그럽게(!) 납득해 줄 때도 있지만 “그러다 평생 혼자 산다!”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이렇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결혼’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큰일 난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항상 있어 왔다.



늘 앞만 보고 달리던 이십 대, 왠지 모르게 늘 불안하던 삼십 대를 지나 어느새 사십 대가 되었다. 그동안 경험해온 일들은 남들에게는 별일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달고 시고 짠 내도 나는 특별한 기억들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나만의 역사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결혼 안 함’으로 정리된다는 사실은 조금 씁쓸하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수많은 싱글 미혼 여성들은 결혼 안 한 사람이기도, 언젠가는 결혼할 사람이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말 말고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결혼이나 나이 말고도 생각할 것들, 걱정할 거리들을 잔뜩 안고 있는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결혼과 나이에 관련되지 않은 다양한 질문에도 잘만(!) 대답해낼 사람들이다.

“요즘 언니의 소확행은 뭐예요?”
오랜만에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후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후배를 앞에 두고, 요즘 나를 둘러싼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 졸음을 참으면서 결말까지 보게 만드는 영화 한 편, 불쑥 운동화를 챙겨 신고 나가는 저녁 산책… 그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가슴속이 따끈해졌다. 그러면서 느꼈다. 그동안 나는 이런 질문을 기다려왔구나. ‘결혼’과 ‘나이’를 빼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오롯이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 하는 마음을 기다려 왔구나.
앞으로는 마흔의 미혼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져주심이 어떨지. ‘그런 질문, 다 딱히 할 말이 없으니까 하는 거야’라는 말을 종종 듣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혼과 나이 말고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요즘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요즘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지.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나 책은 무엇인지. 아니면 요즘 뭘 제일 맛있게 먹고 있는지. 이러한 질문 앞에 마흔의 미혼들은 적절한 대답을 궁리하면서도 딱 그 시간만큼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과 질문을 던진 사람을 전보다 조금 더 아끼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질문과 조언을 듣지 않게 된 지금 내 나이가 마음에 든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있을지 모를 ‘쟤는 포기해야겠다.’ 라는 체념이 또 다른 위로로도 느껴진다. 가끔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늘어가는 주름과 기미를 발견하며 한숨 쉴 때도 있지만, 그 역시 내가 살아온 시간이라고 믿어 보는 수밖에. 여전히 마흔에 걸맞지 않은 행동과 생각을 반복하며 살지만 그럴 때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나라도 나를 다독여주며 사는 수밖에. 나의 사십 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