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듣는 뮤지컬의 환희
영화 〈위대한 쇼맨〉과 〈코코〉 O.S.T
글. 이유진(공연 칼럼니스트)
현재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음악을 선보인 〈위대한 쇼맨〉과 〈코코〉.
두 영화가 한국에서 관객을 만나기까지 의미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월에 개최된 제75회 골든글러브 시상식 주제가상 트로피는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이 가져갔다. “오로지 뮤지컬로만 가능한 것들을 모든 곡에 담았다.”는 작곡가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의 말처럼 〈위대한 쇼맨〉의 O.S.T를 듣고 있으면 뮤지컬 공연이 한창인 객석에 앉아 있는 듯한 환상이 펼쳐진다. 〈위대한 쇼맨〉은 오는 3월 예정된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도 오른 상태. 골든글러브에 이어 주제가상 부문에서 〈위대한 쇼맨〉의 경쟁자로 뽑히는 작품은 애니메이션 〈코코〉다. 디즈니와 픽사가 완성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완성한 건 “독창적인 사운드 트랙”이라 평가 받는 아름다운 O.S.T다. 현재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음악으로 〈위대한 쇼맨〉과 〈코코〉를 선정함에 이견이 없을 정도. 순식간에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는 중요한 인재 기용이 있었다. 그리고 국내 관객을 공략한 두 영화의 홍보 방향에도 주목할 만 한 사람들이 있다.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
디즈니와 픽사
〈위대한 쇼맨〉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더 그레이티스트 쇼(The Greatest Show)’는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비트와 반복되는 제창으로 화려하고 거대한 쇼의 시작을 알린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건 〈라라랜드〉(2016)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한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 듀오다. 〈라라랜드〉에 이어 지난 해 제71회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으로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두 사람이 〈위대한 쇼맨〉의 음악에 합류한 건 〈라라랜드〉로 유명세를 떨치기 전이다. 그들의 “록과 팝, 현대 브로드웨이 사운드를 합치는 재능”을 눈여겨 본 제작자 로렌스 마크와 “이야기를 잘 그리면서 영화적인 감정을 담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에 반한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선구안이 통한 셈이다. 두 사람은 브로드웨이 공연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위대한 쇼맨〉의 리허설과 촬영을 진행했는데 덕분에 화려한 ‘지상 최대의 쇼’를 지향한 영화의 목표를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위대한 쇼맨〉은 경이의 세계를 열어주는 이야기다. 그 세계를 완성하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즐거웠다. 오로지 뮤지컬로만 가능한 것들이 모든 곡에 들어있으니 마음껏 즐겨주길 바란다.”는 벤지 파섹의 바람 그대로 관객들은 경이로운 쇼를 완성한 음악에 매료됐다. 〈라라랜드〉에 이어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를 거머쥘 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위대한 쇼맨〉이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 듀오를 영입해 관객을 홀렸다면 〈코코〉는 디즈니와 픽사의 관록을 십분 활용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업〉(2009)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음악상, 그래미 어워드 영화음악상을 모두 거머쥔 거장 마이클 지아치노 음악감독이 〈코코〉의 O.S.T를 지휘한 것. 그는 “〈코코〉를 위해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바람을 담아 기타론, 민속 하프, 키하다, 마림바, 수자폰 등 멕시코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낼 수 있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여기에 〈겨울왕국〉(2014)의 ‘렛 잇 고(Let It Go)’로 전 세계에 엘사의 마음을 전한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작곡가 부부를 섭외하는 ‘신의 한 수’를 뒀다. ‘리멤버 미(Remember Me)’는 서정적인 선율로 부를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애잔하고 간절한 느낌이지만, 가슴을 펴고 의기양양하게 부를 때는 영원한 인기를 누리는 슈퍼스타의 마음까지 단번에 드러낼 수 있는 반전을 가진 곡이다.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 미구엘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 펼쳐지는 모험담과 함께 흐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악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음악을 꿈꾸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음악을 철저히 거부하는 사람이 모두 〈코코〉에 있다”는 리 언크리치 감독의 말처럼 영화 〈코코〉의 뿌리는 음악에 있고, 디즈니와 픽사는 이번에도 영리하게 그 몫을 해낸 것이다.
영화 속 명곡을 완성하는
뮤지컬 배우의 목소리
〈위대한 쇼맨〉과 〈코코〉가 각자의 방식으로 훌륭한 음악을 완성할 인재를 기용했다면, 한국에선 두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 의미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그 주인공. 〈위대한 쇼맨〉은 개봉 당일 마이클 리와 정선아를 캐스팅해 ‘디스 이즈 마이 데이(This is me day)’를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서 필립과 앤이 부르는 아름다운 듀엣 ‘리라이트 더 스타스(Rewrite The Stars)’를 부른 바 있는 두 배우가 직접 무대에 나서 관객들을 만난 것. P.T. 바넘의 쇼 비즈니스 파트너 필립과 공중그네 곡예사 앤의 아름다운 듀엣인 ‘리라이트 더 스타스’는 마이클 리와 정선아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원곡 이상의 감동을 안겼다. 마이클 리는 “〈위대한 쇼맨〉을 본 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놀라운 경험 중 하나였다”며 영화를 향한 애정을 밝혔고, 정선아 또한 “춤추게 만드는 흥겨운 명곡들”을 적극 추천했다. 별도의 더빙 개봉이 진행되진 않았지만 두 배우의 지원은 〈위대한 쇼맨〉을 향한 관객의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김소현, 배해선, 정영주를 비롯해 윤호진 연출, 김문정, 이성준 음악감독의 추천도 〈위대한 쇼맨〉을 관객들로 하여금 훌륭한 뮤지컬 영화로 인지하는데 힘을 보탰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뮤지컬 영화 참여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다. 〈코코〉의 더빙 판에선 주제가 ‘리멤버 미’를 뮤지컬 배우 정동화와 문서윤이 불렀다. 뮤지컬 〈보디가드〉,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한 아역 배우 문서윤의 맑은 목소리와 뮤지컬 〈타이타닉〉,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정동화의 호흡이 곡에 담긴 애틋한 정서를 훌륭히 표현해낸 것. 덕분에 보통 어린 관객층이 대부분인 여타의 애니메이션 더빙 판에 비해 〈코코〉는 성인 관객도 더빙 판을 많이 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디즈니가 국내 더빙 판에 뮤지컬 배우를 기용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맞는 전문 성우 캐스팅은 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삽입되는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는 데 주력해왔고, 그 노력이 빛을 본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겨울왕국〉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타깃인 아동 뿐 아니라 성인 관객까지 견인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는데, 전 국민이 따라 불렀던 ‘렛 잇 고’를 박해나가 맡아 원곡 이상의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당시 박해나가 뮤지컬 〈위키드〉에 출연하고 있었던 데다 원곡을 부른 이디나 멘젤 또한 뮤지컬 〈위키드〉에 출연한 바 있어 더욱 주목을 끌기도 했다. 영화 속 엘사가 부르는 세 곡을 녹음하는 데 8시간이 걸릴 정도로 공들인 녹음 과정이 있었는데 박혜나는 “캐릭터를 해석하고 그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는 작업이 뮤지컬과 비슷해 해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겨울왕국〉에서 한국 뮤지컬 배우 기용에 성공한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2017) 더빙 판에도 황만익, 이지혜, 이정열, 신영숙은 물론 23년 째 디즈니 더빙의 뮤즈인 정영주 등 다채로운 뮤지컬 배우를 섭외해 성공적인 더빙으로 평가 받았다. 이처럼 단순 홍보를 위한 명목상 캐스팅이 아니라 영화 속 아름다운 음악을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뮤지컬 배우를 기용하는 건 여러모로 반가운 일이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 이토록 훌륭한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뮤지컬 영화를 한국에서도 만나는 것. 현재 영화계에서 뮤지컬 영화 기획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