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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여우사냥》과 뮤지컬 〈명성황후〉

이문열의 《여우사냥》과 뮤지컬 〈명성황후〉

글. 나상민(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

"나는 원래 명성황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못된 며느리에 '우는 암탉'이었고 왕비로서도 사치가 심했다는 막연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이문열)

윤호진 연출과 이문열 작가
‘명성황후’로 이어진 인연

윤호진 연출(극단 에이콤 대표)은 1976년 실험극장에 입단해 첫 연출작 〈그린 줄리아〉에 이어 두 번째 연출작 〈아일랜드〉(1977)로 국내 연극 최장공연을 기록하고 동아연극상 대상(1978)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소설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추리적 기법을 통해 종교문제를 그린 작품으로 1979년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중편이었던 이 작품은 1987년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됐다.)의 강렬한 주제에 사로잡혀 희곡으로 만들기 위해 이문열 작가를 찾아간다. 어렵게 탈고를 막 끝낸 작가는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사람의 아들》은 5번의 개작 끝에 희곡으로 탄생해 1980년 실험극장의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공연을 올렸다.
1982년 연극인 최초로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영국 연수를 떠난 윤 연출은 뮤지컬 〈캣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본격적인 뮤지컬 공부를 위해 뒤늦게 뉴욕대로 유학을 떠났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 친구인 이문열 작가를 1년 여간 설득해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한 작품을 쓰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작품이 바로 이후 한국 뮤지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명성황후〉이다.

이문열의 첫 희곡 《여우사냥》
‘조선의 잔 다르크’를 그리다

이 작가는 1994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 봄 호에 그의 첫 희곡 《여우사냥》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 민비의 시해사건을 소재로 고종과 명성황후, 대원군 등의 인물을 새롭게 해석했으며, 1894년부터 1년여 동안 당시 미국 무관인 다이 장군의 시선을 주축으로 외세의 격랑과 조선 조정의 권력다툼을 담았다. 《여우사냥》에 그려지는 명성황후는 일본인들이 그녀를 ‘여우’라 칭할 만큼 국제관계에 환하여 고뇌하는 왕에게 조선의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여인이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여우사냥’은 명성황후를 살해하려는 일본 낭인들의 작전 암호명이다. 작가는 ‘온몸으로 껴안으려한 조국으로부터 오히려 버림받고, 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 불꽃 속에 사라져간 조선의 잔 다르크’로서 명성황후를 바라보았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 작가는 명성황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연출의 권유에 따라 관련 자료와 책을 접하면서, 명성황후를 권력에 돌진하는 인물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조선의 잔 다르크로서 주체적인 개화론자이자 인간적인 인물로서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1895년 일본 낭인의 칼에 숨진 명성황후가 약 4년간의 작업 끝에 뮤지컬 〈명성황후〉로 되살아났다.

이 작가는 대형 뮤지컬로 제작해 국내외에서 공연한다는 계획 하에 많은 대사가 노래로 불릴 수 있도록 글자수를 맞춰 글을 썼다고 한다. “본질적으로는 ‘읽는 희곡’이지만 운문을 빌어 뮤지컬 대본의 바탕을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전통의 형식으로 보면 차라리 시극으로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이문열, 《여우사냥》, 살림) 뮤지컬 〈명성황후〉는 이문열의 희곡을 원작으로 극작가 김광림이 각색하고 윤호진이 연출을 맡았으며, 작곡가 김희갑과 방송극작가인 양인자 부부가 각각 작곡과 작사한 61편의 노래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갔다. 특히 화려한 의상과 경복궁을 축소시킨 모형과 회전무대 등은 작품의 스펙터클을 가미했다. 공연은 애초에 19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에 막을 올리려 했으나 여러 사정상 12월 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했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명성황후의 외침
"백성이여 일어나라!"

뮤지컬 〈명성황후〉의 막이 오르면 스크린에 히로시마 원폭투하 장면이 투사되고 그 위로 1945라는 자막이 뜬다. 무대가 밝아지면 1896년 히로시마 법정에서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재판을 받는다. 1866년 봄, 고종과 민자영은 만백성의 합창과 함께 축원 속에 혼례를 올린다. 한편 홍계훈은 무과시험에서 장원에 올라 시위별감으로 궁궐 수비를 맡는다.
세계열강들은 조선의 문호개방을 요구하지만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하던 대원군은 무력으로 이들을 쫓아내고 쇄국정책을 펴나간다. 이후 세자를 얻은 고종과 민비가 친정을 펼치면서 대원군은 물러나고, 고종은 수구파와 개화파의 당쟁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에 민비는 개화정책을 지지하며 일본과의 문호개방을 선택하지만, 일본 상인들은 이를 이용해 농간을 부린다.
일본의 움직임에 반발한 조선의 구식군은 일본인을 살해하고 민비의 처형을 요구하는 임오군란을 일으킨다. 결국 민비는 충주사가로 피신하게 되고, 홍계훈은 끝까지 민비에게 충성을 다짐한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틈 속에 대원군은 복귀하지만 청나라가 개입하면서 중국으로 추방된다. 왕실로 돌아온 민비와 조선을 대동아공영권 구축의 교두부로 삼으려는 일본의 갈등 속에 일본은 민비의 암살계획을 세운다.

2막은 보다 급박하게 극이 진행된다. (이 부분은 꼭 공연으로 보길 바라며 설명을 축약한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명성황후의 삶이 끝나고 조선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라’며 노래하는 명성황후의 외침은 진한 감동과 함께 객석을 숙연케 한다. “알 수 없어라 하늘의 뜻이여, 조선에 드리운 천명이여. 한스러워라 조정의 세월, 부질없는 다툼들. … 이 나라 지킬 수 있다면 이 몸 재가 된들 어떠리. 백성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천만 신민 대대로 이어 살아가야 할 땅!”

연이은 기록 세우는 뮤지컬 〈명성황후〉
2018년 3월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뮤지컬 〈명성황후〉는 1995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초연 이후 1997년 아시아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링컨센터에서 공연했다. 2002년 영국 웨스트엔드 아폴로극장, 2004년 캐나다 토론토 허밍버드센터 등 해외 공연을 이어가며 국내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줬다. 2007년 3월 국내 창작뮤지컬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2009년 12월 26일 1,000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5년 2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했던 〈명성황후〉가 오는 3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올해 〈명성황후〉에서는 뮤지컬배우 김소현과 최현주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총명한 정치가이자 고종과 세자를 지극히 보살피는 명성황후 역에 캐스팅됐다. 국내외 혼란 속에서 조선왕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종 역은 양준모, 손준호, 박완이 맡았다. 극중 명성황후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조선의 무관 홍계훈 역에 오종혁과 최우혁이, 강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세도 정치의 폐해를 바로잡지만 명성황후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대원군 역에 이희정과 정의욱이, 명성황후 시해 계획을 세우는 일본 공사 미우라 역에 김도형, 이정열, 박성환이 맡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 3월, 역사의 혼돈 속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의 최후의 노래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보자.

※본 기사는 《여우사냥》(이문열, 《여우사냥》, 1995, 살림)을 비롯해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매일경제 등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뮤지컬 `명성황후` THE LAST EMPRESS

뮤지컬 `명성황후` THE LAST EMPRESS

일정 : 2018.03.06 (화) ~ 2018.04.15 (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화,목,금 20시 / 수 15시, 20시 / 토 15시, 19시 / 일 14시, 18시30분

티켓 : VIP석 14만원, R석 12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문의 : 02-2250-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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