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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가까워지는 오페라와 뮤지컬

점점 가까워지는 오페라와 뮤지컬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칼럼니스트)

© Decca, Andrew Eccles

지난 7월, 15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진 ‘미국의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은 한국 관객들에게 뮤지컬 데뷔 소식을 알렸다. 내년 3월 23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는 뮤지컬의 고전 <회전목마>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초기작인 <회전목마>는 놀이공원 호객꾼 빌리와 여공 줄리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플레밍은 줄리를 비롯해 극중 인물들이 엄마처럼 의지하는 네티 역할을 맡았다. 플레밍은 내한 콘서트 당시 <회전목마> 속 넘버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오즈의 마법사>, <왕과 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유명 뮤지컬 넘버를 오페라 아리아와 함께 불러 박수를 받았다 . 내년 <회전목마>에는 빌리 역에 조슈아 헨리, 줄리 역에 제시 뮬러 등 브로드웨이의 스타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회전목마>는 아직 극장과 공연 횟수 등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오페라계 슈퍼스타 플레밍의 출연 소식으로 세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성악가들의 뮤지컬 출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 본격적으로 태동한 뮤지컬이 유럽의 오페레타에 뿌리를 둔 만큼, 초기 작품은 뮤지컬과 오페라 양쪽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오페라 전문 성악가와 뮤지컬 전문 배우라는 구분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코미디 스타일이 붐을 이루면서 성악가가 뮤지컬에 출연하는 경우는 점점 줄었다. 두성으로 강력한 고음을 내는 성악 발성이 마이크를 쓰는 뮤지컬에선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 장르의 구분이 뚜렷해지자 성악가들의 뮤지컬 출연은 큰 주목을 받게 됐다.

ⓒ Tristram Kenton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MET, 메트)에서 22시즌 출연했던 이탈리아 베이스 에지오 핀자는 1949년 로저스&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남태평양> 초연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의 토니상 남우주연상까지 획득했다. MET와 작별하며 사실상 오페라에서 은퇴한 그는 <남태평양>의 대성공 덕분에 각종 콘서트의 단골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1954년 뮤지컬 <파니> 초연에도 주역으로 나왔다. 핀자 이후 MET에서 17시즌 동안 바그너 전문 소프라노로 각광받았던 헬렌 트라우벨을 비롯해 여러 성악가가 뮤지컬 무대를 찾게 됐다.
오늘날 오페라 스타들의 뮤지컬 출연은 오페라단이 직접 뮤지컬을 공연하면서 점점 더 늘고 있다. 1984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와 뉴욕 시티 오페라(NCO)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를 공연한 것은 큰 전환점이 됐다. 팀 버튼 감독이 조니 뎁을 주인공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던 <스위니 토드>는 197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니상 7개 부문을 휩쓸었다. 하지만 작곡가 손드 하임은 스위니 토드를 비롯해 주역들의 노래에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좀 더 성악적인 발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Tristram Kenton

젊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싶었던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와 뉴욕 시티 오페라는 1984년 <스위니 토드>를 오페라로 공연했다. 초연 당시 뮤지컬과 비교해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 등은 그대로고, 출연진만 성악가들로 바뀌었다. 당시 오페라단이 뮤지컬을 공연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잠깐 일었지만, 평단은 예술성 높은 손드하임의 뮤지컬이 현대 오페라의 범주 안에 있다고 봤다. 손드하임 역시 “오페라와 뮤지컬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 작품을 상연하는 건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오페라 <스위니 토드>가 큰 인기를 얻자 뉴욕 시티 오페라는 아예 <스위니 토드>를 레퍼토리로 삼아 종종 공연했다. 또한 <어 리틀 나이트 뮤직> 등 손드하임의 다른 뮤지컬들과 번스타인의 <캉디드>처럼 뮤지컬로 종종 공연되는 오페라들을 잇달아 올렸다. 이에 따라 브로드웨이에서 주로 활약해온 연출가 등 제작진들도 오페라로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됐다.
뉴욕 시티 오페라의 행보는 영미권의 여러 오페라극장과 오페라단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 역시 충성도 높던 노년층의 고령화로 관객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숙제였기 때문이다. 영국 중부도시 리즈에 자리 잡은 오페라 노스는 1989년 뮤지컬의 고전인 제롬 컨의 <쇼보트>를 처음 무대에 올린 이후 손드하임, 거슈윈,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 쿠르트 바일 등의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해 인기를 끌었다.

ⓒ Tristram Kenton

또 ENO(이엔오)로 불리는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 역시 그동안 뮤지컬을 종종 올렸지만, 2014년부터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든 모습이다. 특히 지난 4월 <회전목마>를 올리면서 남녀 주역으로 알피 보와 캐서린 젠킨스를 캐스팅한 것은 지나친 스타 캐스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두 배우 모두 성악에서 출발했지만, 각각 크로스오버 가수나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ENO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관객층 개발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회전목마>는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배우들의 정통 오페라 무대 출연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1940~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오가며 주역을 맡았던 캐슬린 그레이슨은 1960년대 들어 오페라에도 자주 출연하며 또 다른 인기를 끈 바 있다. 최근엔 브로드웨이 최고 여배우로 꼽히는 켈리 오하라가 2년에 한 번꼴로 MET에 출연해 화제다. 2014년 출연한 오페레타 <메리 위도>는 뮤지컬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더라도 2016년 바로크 오페라 <디도와 아에네아스>, 2018년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까지 점점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오하라의 공연은 최근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MET에서 가장 인기 있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시카고 리릭 오페라, 미네소타 오페라 등 미국의 오페라단들은 1990년대 이후 마이클 존 라키우사를 필두로 한 뮤지컬 작곡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작을 의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작품에는 뮤지컬 배우들이 성악가들과 나란히 출연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오페라와 뮤지컬의 크로스오버가 시작된 모습이다. 지난 2015년 소프라노 임선혜, 김순영이 뮤지컬 <팬텀>에 출연한 것은 대표적이다. 그리고 남성 4중창단을 선발하는 JTBC 예능 <팬텀싱어> 역시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 사이의 거리를 좁혀 놓고 있다. 심지어 최근 성악가들만 무대에 서는 갈라 콘서트에서도 뮤지컬 레퍼토리가 절반 가까이 될 정도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전속단체인 서울시뮤지컬단과 서울시오페라단이 공동 작업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