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도덕, 그 미묘한 선을 논하다
서울시극단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
고수희·이창훈 인터뷰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서울 어딘가. 노후한 다가구 주택을 배경으로 하는 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옥상 밭 고추는 왜>.
작품의 주요 사건은 옥상 텃밭의 고추를 두고 일어나는 주민들 사이의 승강이다. 그 아래로 작가는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을 매복해놓았다.
원제 <에틱스 vs. 모럴스>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윤리와 도덕 사이의 미묘한 선에 대한 질문이다.
장우재가 쓰고, 김광보가 연출하는 서울시극단 세 번째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주인공 고수희와 이창훈에게 그 답을 묻다.
“안티네, 안티야. 지적 허영심을 가지고 있는 안티.” 녹음 파일 마지막에 녹취되어있던 말은 저것이었다. 고수희가 필자에게 한 말이었다. 어떤 배경에서 저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말미에서 밝히겠다. 사실 실랑이는 두 번째 질문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첫 질문은 에틱스와 모럴스의 정의에 관한 것이었다. 이창훈은 ‘윤리는 사회적 개념, 도덕은 개인적 개념’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판단이 맞는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며 다소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말을 받은 고수희는 자기 생각은 이창훈과 반대라고 했다. 덧붙여 배우들 모두 연습을 계속 진행하면서 윤리와 도덕에 대해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작품에서 현자(고수희 분)는 윤리나 도덕과는 거리가 먼 다소 그악스러운 인물 아닌가?” 바로 고수희의 반박이 이어졌다. “왜요? 인물을 잘못 보셨네. 현자는 도덕과 윤리를 떠나, 지키고자 하는 걸 지켜내는 여자예요. 빨리 재건축이 돼야 돈을 버는데 광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재개발을 반대하고 고집하잖아요. 광자가 이기적인 인물이죠. 재건축이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잘살자고 하는 건데. 전 현자가 지극히 정상적인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를 드세거나 억센 여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반박할 논리가 부족해져, 극중 현자와 대립해 싸우는 현태, 이창훈에게 지원 요청의 눈빛을 보냈다. “작가님도 말씀하셨지만,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이것이 윤리고 저것이 도덕이다, 이렇게 나뉘어 있다고 말하는 이분법적인 작품이 아니에요. 초반에 현자가 그악스럽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과연 현자와 대립하면서 그녀 또한 무너뜨리는 현태의 행동이 과연 정의로운 것이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거든요. 그런 혼란을 주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고 방향인 것 같아요.”
결국 ‘그악스러운’ 대신 ‘현실적인’이란 표현으로 대체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현자는 현실적인 인물, 현태와 동교는 이상적인 인물로. 그렇게 무마하려 했다. 이에 대한 고수희의 반론이다. “전 동교가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본을 들여다볼수록 현태가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사실 현태가 일만 잘 풀렸으면, 제가 고추를 100개를 따건, 200개를 따건 아무 상관 안 했을 거예요. 현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죠. 동교도 그렇고요. 그래서 제가 한번은 연습 중에 연출님께 그랬어요. 나는 동교가 가장 이해가 안 되고, 저 사람이 멋있게 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동교가 마지막에 ‘나는 이런 사연이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는 현태나 동교를 타당한 사람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좀 있어요.” 이창훈도 거든다. “저 역시 이야기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현태가 현자에게 가진 분노는 현태가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뒤틀린 감정,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인해 현자를 현실의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에서 비롯되죠. 그리고 그걸 정의인 것처럼 표현하죠. 만일 현자를 나쁜 여자, 현태를 정의로운 청년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런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수세에 몰린 느낌에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김광보 연출과의 작업에 대해. 데뷔 20년을 바라보는 고수희가 김광보 연출의 작품에 출연하는 건,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데뷔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김광보 연출님이 러브콜을 보내셨는데 극단 스케줄 때문에 못 했어요. 7~8년 후에도 러브콜을 주셨고, 마지막으로 러브콜하신 게 2~3년 전이에요.” 사실 고수희는 같은 기간에 오르는 연극 <엘리펀트 송>에도 출연 중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영영 김광보 연출 작품에 오를 기회가 없을 듯한 생각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반면에 이창훈은 <프로즌>, <비>, <데블 인사이드> 등 최근 김광보 연출과 꾸준히 작업 중이다. ‘김광보의 페르소나’라고 고수희가 표현하자, 이창훈이 겸연쩍은 듯 손사래 치며 말했다. “연출님이 단장실에 부르시더니 “창훈이가 (현태하고) 잘 어울리지, 창훈이가 좀 지질하잖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마도 잘생기고 댄디한 배우가 현태를 맡으면, 현태가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일 우려가 있어서, 좀 지질해 보이는 저를 선택하신 게 아닐까요.” 물론,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연기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를 캐스팅했겠는가. 서울시극단과 첫 작업이라 ‘전학생이 된 느낌은 없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오히려 그들이 전학생 같다’며 전혀 위화감 없이 연습 중이라 입을 모았다. 몇몇 질문이 이어졌고, 화두는 제목으로 이어졌다. <에틱스 vs. 모럴스>는 세련된 느낌인 데 반해, <옥상 밭 고추는 왜>는 토속적인 느낌이라는 필자의 단상에 고수희가 “바꾼 제목이 훨씬 낫다”고 맞받아쳤고, 이창훈이 “열에 아홉 관객은 <옥상 밭 고추는 왜>라는 제목을 선택할 것”이라 말을 보탰다. 현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관념적 영어 제목에 대한 애정이 더해지며 필자는 졸지에 “안티, 지적 허영이 있는 안티”가 되어버렸다. 녹취는 거기까지였다.
예상 답안과 반대의 답변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선입견 깨기에 충분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인물과 작품, 나아가 윤리와 도덕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확장되었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처럼. 아, 또 지적 허영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오해는 금물. 인터뷰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그 화기애애에 대한 믿음으로 이 원고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알릴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