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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하는 사람들

밤에 일하는 사람들

글.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패턴은 좀 더 별나다.
시간으로 보면 낮보다는 밤에 노동이 집중된다. 공연이 주로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는 만큼 장점 보다는 핸디캡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다.

작업중인 무대뒤 작업자들

시차를 극복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햇볕을 쬐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아, 그럴 듯하다’ 느꼈다. 인간이 하루를 24시간으로, 1년을 365일로 나누어 사는 것은 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구의 양 극단이 아니라면 다 그럴 것이다. 바다의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달이듯 인간의 신체 프로그램의 기준이 되는 것은 태양이라고 유추했다. 햇빛을 기준점으로 하여 몸의 정신적, 육체적 시스템이 연동된다고 해석했다. 일단 내 맘대로 이렇게 해석을 하고나니 더 그럴 듯해져서 시차극복할 일이 있으면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쬔다.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이 말은 사람은 자연의 시간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겠다.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지면 쉬거나 자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삶이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실제로는 매우 힘들다. 나만 해도 그렇다. 오랫동안 아침에 약했다. 일이나 스케줄이 요구하지 않으면 새벽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때문에 특별히 건강을 해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나의 경우가 좀 심한 편이라 해도 현대인은 모두 조금씩은 자연을 거슬리며 산다.

무대 음향기기 제어장치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패턴은 좀 더 별나다. 자연은 물론이고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쉬거나 놀 때 일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이 없는 날이 전 세계적으로 월요일이 가장 많은 것이 하나의 예다. 주말이나 휴일은 대부분 일하는 날들이다. 휴가철이나 명절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으로 보면 낮보다는 밤에 노동이 집중된다. 공연이 주로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관객에게는 감동을 얻는 아름다운 예술 공간이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다. 그것도 위험도나 난이도가 꽤 높은 현장이다. 위험하기로 따지면 건설 현장 못지않다. 큰 공연장은 무대 아래와 위에 웬만한 작은 공장 수준의 기계설비가 장착되어 있다. 조명기와 음향장치가 수없이 달려있다. 오페라나 연극, 뮤지컬 등 세트가 필요한 공연에는 무대 위에 임시로 건물이 세워진다. 공연 중에 암전과 장면전환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위험하다고 헬멧을 쓰고 무대에 오르거나 플래시를 켜고 등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위험하기가 더하다.

노동 강도로 봐도 만만찮다. 흔히 공연은 재고가 없는 재화라고 한다. 공연은 기본적으로 라이브이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공연 중에 실수나 잘못을 하면 당장 만회하거나 수정할 기회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고도로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다중이용시설로서의 공연장도 까다로운 속성이다. 공연장은 서비스 수요탄력성이 크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다중이용시설 중에서도 짧고 강력하게 서비스와 관객이 집중되는 시설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 동안에 모든 서비스가 몰린다. 대개 그 시간동안에 잘했으면 잘한 게 된다.
공연장의 피크 타임이 낮이 아니라 밤이라는 말이다. 하루 중에 가장 긴장하고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밤인 것이다. 교대로 또는 때때로 밤 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시간대를 중심으로 하루가 편성된다. 이런 패턴은 몸의 생체 리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나 생활인으로서도 그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는 만큼 장점 보다는 핸디캡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다. 시차극복을 위해서는 햇볕을 쬐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겠지만 밤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단단한 직업의식이라든지 사명감 같은 것이 그런 것일 터다. 관객들이 감동으로 아름다운 밤을 보내는 것만큼 공연장 노동자들이 땀으로 같은 밤을 보내는 것도 제법 빛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