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시절에 품은 단단한 철(鐵)
철현금 연주자 양아실·김경미
글. 장혜선(객원기자)
철현금. 어떻게 보면 거문고 같기도, 다르게 보면 기타 같기도 하다. 철현금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국악기다.
오른손은 술대, 왼손은 농옥을 사용해 철 줄을 튕기면 강렬한 음색이 발현된다.
금속성의 음색은 거칠게 느껴지다가도, 여음은 애달프며 영롱하다.
신비한 철현금의 음색에 매료돼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두 철현금 연주자를 만났다.
언제, 어떻게, 철현금과 마주하게 됐나?
양아실 나는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유난히 여러 악기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한 기회에 신재현 선생님과 유경화 선생님이 연주하는 철현금 소리를 듣고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신비로움을 맛봤다. 잘 모르는 악기였지만 여음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김경미 어머니가 민요를 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경기민요를 했다. 자의적으로 민요를 시작한 게 아니어서 그런지 항상 악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유경화 선생님 음악을 좋아하신다. 한 번은 어머니가 유경화 선생님이 연주한 철현금 산조를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 소리에 매료돼 어머니에게 철현금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철현금 연주자로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 철현금의 매력은 무엇인가?
김경미 철현금은 줄타기 명인이셨던 김영철 선생님께서 기타를 거문고처럼 눕혀서 제작한 악기다. 연주법은 거문고와 비슷하다. 하지만 명주실을 사용하는 기존 악기와 달리 쇠줄을 사용해 이국적인 음색이 나온다. 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거친 음색이 나지만 얇은 줄은 영롱하다. 악기의 하청에선 폭 넓은 저음이 나고 상청은 예리하다. 이런 것들이 공존한 철현금은 음색이 매우 매력적이다.
양아실 맞다. 철현금은 거문고와 비슷하다. 오른손은 술대를, 왼손은 농옥을 사용한다. 활을 사용하지 않는 악기는 여음을 내기가 힘든데, 철현금은 다른 악기에 비해 연주가 자유롭고 여음이 난다. 분명하게 소리를 내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철현금 소리가 명료하게 전달된다. 내가 전공한 가야금과 철현금의 음역대는 비슷하다. 하지만 똑같은 소리를 내더라도 줄이 다르니 음색이 확연히 다르다.
대학에서는 다른 전공을 했는데, 철현금을 배울 때 유달리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양아실 악기마다 각자의 어려운 점이 있다. 가야금은 힘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내가 익혔던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는 힘이 더 들어가는 편이다. 반면 철현금은 힘이 덜 들어가지만, 농옥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돼서 능수능란한 소리를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김경미 나는 악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산조의 정형화된 장단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농옥을 사용할 때 미세하게만 잘못 움직여도 음정이 크게 바뀐다. 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갑자기 철현금을 배운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김경미 보통 “‘칠’현금?”이라고 되묻는다. 유경화 선생님께서 개량 작업을 하며 위판이 둥그렇게 변했고, 재질도 오동나무로 바뀌어 외형이 전통악기 같아졌다. 그런데 기타 줄을 쓰니 다들 신기한 악기라고 한다.
양아실 친구들에게 철현금 이야기를 해주면 실컷 듣다가 “그래. 너 철가야금…”이라고 말한다.(웃음) 우리가 앞으로 해야 될 게 많은 것 같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
김경미 지난 해 성창순 선생님의 〈새해를 부르는 소리〉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성창순 선생님의 제자인 유경화 선생님과 신재현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철현금 제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합주했다. 나에게는 철현금으로 서는 첫 무대였고, 성창순 선생님과 함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연주였다. 선생님과 함께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무대였다.
양아실 정말 감명 깊은 무대였다. 그 무대 위에 섰던 많은 친구들이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아프신 줄 몰랐다. 병마와 싸우고 계신데도 단정하고 결연하게 연주 하셨다. 바로 다음 달에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철현금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현금을 향한 성창순 선생님의 그 마음을 기억해서 대중에게 전하고 싶다.
이번 〈청춘가악〉 공연에서 선보일 레퍼토리를 소개해 달라.
김경미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곡은 철현금과 장구 두 대가 엮어가는 새로운 산조이다. 산조의 음악 어법을 근간에 두고 그간 정형화된 장단 틀을 과감히 깬 곡이다. 보다 자유롭고 확장된 리듬 패턴으로 산조를 해석한다. 김영철류 철현금 산조를 골자로 하지만, 장단의 변주나 구성, 철현금의 엇모리·휘모리 가락은 유경화 선생님께서 새로 만드셨다.
양아실 초연은 유경화 선생님이 장구 세 대와 철현금 한 대로 연주하셨다. 이후 무대에 따라 소리북 두 대와 장구 두 대로 타악기를 확장하기도 했다.
유경화 선생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양아실 선생님이 철현금 연주에선 워낙 독보적이라 많은 영감을 받는다. 유경화 선생님은 항상 혁신적이시고 획기적이다. 늘 임팩트 강한 연주를 보여주시고, 바쁜 일정 속에도 많은 제자들이 오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려고 노력하신다. 정말 든든하다. 성격도 정말 유쾌한 분이다.
김경미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신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에서도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고 알고 있다.
연주자로서의 삶이 지치진 않는가? 새롭게 철현금에 도전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양아실 연주자들은 기본적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대회나 오디션을 나가면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오늘은 경쟁자가 된다. 철저하게 혼자만의 고독을 느끼는 시간이 힘들다.
김경미 어릴 때부터 한 길만 보고 쭉 오다 보니까 더 지치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잘하는 연주자들을 봤을 때 좌절하지 않고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대가 끝나면 어떤 평을 듣고 싶나?
김경미 무대가 끝나고 아무 반응이 없는 게 더 두렵다. 듣기 싫은 말이라도 연주에 대한 지적이 있으면 더 열심히 연습을 할 텐데, 오히려 무반응이 더 무섭지 않은가.
양아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잘 하지도 않고, 못 하지도 않고, 평범하다”는 말이다. 영혼이 없다는 소리 같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 그 자체이다. 똑같은 연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각자의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가 아름다웠다”는 말을 들으면 기쁠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철현금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김경미 대학 교육에서 양금이나 생황은 부전공으로 있지만, 철현금은 배울 수 없다.
양아실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철현금 종목이 없어서 못 나간다. 사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가야금을 할 때에는 대회에 분야가 없어서 못 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철현금이란 악기의 특수성이 느껴져 놀랍고 씁쓸했다. 아무래도 대학에 전공 학과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배우는 학생들이 많아야 철현금 교육 현장도 더욱 발전하지 않을까? 성창순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가락이라도 더 배우라며 제자들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유경화 선생님과 신재현 선생님이 주축이 돼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계시니 곧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전공에서 철현금을 병행한 것을 보니 호기심이 많은 성격처럼 느껴진다.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은가?
김경미 철현금과 기타는 같은 줄을 쓴다. 그래서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철현금과 기타가 합주해도 음색이 잘 맞을 것 같다. 기타 주법을 철현금에 융합하는 시도도 해보고 싶다.
양아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머니는 시조 시인이시고, 언니와 형부는 미술을 한다. 가족들이 하는 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예를 들어 그림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문학은 단어의 맛이 음악의 가락의 맛과 같다고 생각한다. 음악과 미술, 문학의 경계를 두지 않고 예술을 즐기려고 한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
양아실 산조를 다 배우긴 했는데, 가야금으로 표현하는 것만큼 잘 안된다. 풍부한 성음을 내고 싶다. 깊은 소리 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이다. 철현금은 아직까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악기에 비해 곡이나 음반 같은 작업물들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더 많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흰 도화지에 색을 채워나가는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
김경미 나는 경기민요와 철현금을 계속 함께 해서 나중에 철현금 병창을 하는 게 꿈이다.
이번 무대를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김경미 많은 연주자들이 철현금의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양아실 우리가 원하는 건 철현금의 대중화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역할은 미미하지만, 이번 무대에서 패기 넘치는 연주를 선보여 철현금 역사에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