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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찌질함의 미덕

장우재 작가의 신작 <옥상 밭 고추는 왜>

극단적 찌질함의 미덕

장우재 작가의 신작 <옥상 밭 고추는 왜>

글. 고연옥(극작가)

서울변두리, 재건축을 앞둔 낡은 빌라.
장우재 작가의 전작 <햇빛샤워>의 악녀, 광자는 예순여섯 노파가 되어 빌라 옥상에 밭을 일구어 고추를 기른다. 직접 손으로 진딧물을 잡으며 온갖 정성을 기울여 키운 그것을 빌라 사람들에게 마음껏 따서 먹으라고 베풀기도 한다.
역시 작가의 전작 <여기가 집이다>, <햇빛샤워>의 수도승같은 소년 동교는 47살 중년이 되어 시간강사를 하는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있다. 갈 곳은 없지만 아내와의 깨끗한 정리를 위해, 손수 ‘방내놓음’ 전단을 붙이고 다닌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늙고 힘 빠진 ‘광자’와 ‘동교’를 배경으로 매우 현실적이며 동시에 문제적인 두 명의 인물을 충돌시킨다.
그 중 ‘현자’는 ‘여상 나와서 옆도 안 보고’ 살았고, 전화국 정년퇴직 후 재건축과 아파트 분양권 등 일종의 부동산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그리고 광자가 기르는 무농약 고추를 ‘스무 개씩, 백 개씩’ 따서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김포에서 가져온 거라며 나눠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추를 또 싹쓸이하듯 따다가 광자에게 들킨 현자는 오히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온갖 심한 욕을 퍼부으며 광자를 기함하게 만들고, 충격을 받은 광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뒤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간다.

서울시극단_왕위주장자들

서울시극단_왕위주장자들

이제 가장 문제적이며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33세 현태라는 인물이 본색을 드러낸다. 현태는 요구르트 배달하는 엄마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형과 함께 살고 있으며, 단편 영화를 몇 편 찍은 적 있는 배우이다. 믿었던 선배로부터 포르노영화를 제안 받거나 단역으로 출연하기로 한 약속이 문자메시지 한통으로 취소되는 그들의 무례함에 분통 터뜨리던 그는 광자에 대한 현자의 폭력에 그야말로 분노가 폭발한다. 현태는 현자에게 ‘일종의 살인행위’를 저질렀다며 사과를 요구하지만, 현자는 약해빠졌기 때문에 쓰러진 거라며 조롱하고, 모친은 지 앞가림도 못하면서 왜 답답한 걸 세상에 풀려 하냐고 핀잔한다.
마치 김수영의 시처럼, 거대한 폭력 앞에선 무력하지만, 누군가의 무례함에 대해선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는 것. 현실에서 우린 그런 사람을 ‘찌질하다’고 말하곤 한다.

서울시극단_함익

서울시극단_함익

서울시극단_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

서울시극단_헨리 4세 – 왕자와 폴스타프

어떤 각성을 거쳐 왔는지 알 순 없으나, 장우재 작가는 담론적 성격이 강했던 첫 제목 <에틱스 vs. 모럴스>를 <옥상 밭 고추는 왜>라는 전혀 다른 작품 같은 제목으로 바꾸었다. 제목 덕분일까, 이제 현자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현태의 ‘찌질한’ 공격은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하고, 그저 낡은 단독빌라였던 이곳은 순식간에 마치 이 세계를 그대로 압축한 듯한 격전의 현장으로 변신한다. 개인과 집단, 양심과 욕망, 현실과 이상은 물론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기시감마저 들게 한다.
그렇다면 결국 현태는 승리했을까? 이 싸움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하는 순간 실패는 예정된다. 작가는 오히려 더 찌질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모든 폭력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므로(“The personal is political.” Petra Kelly, 작가의 메모에서 재인용).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

일정 : 2017.10.13 (금) ~ 2017.10.29 (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월수목금 19시 30분 / 토 14시, 18시 30분 / 일 14시

티켓 : R석 5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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