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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가면 ‘텅 빈’ 공간의 추억

광화문에 가면
‘텅 빈’ 공간의 추억

글. 박정선(칼럼니스트)

어떤 날은 페스티벌이 열렸고, 어떤 날은 최루액 가득한 물대포가 쏟아졌다. 공간은 그저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구나 ‘광장’과 ‘극장’은 그런 점에서 참 닮았다. 그 ‘텅 빔’의 존재 가치를 누가, 어떻게 채우느냐에 의미가 참 달라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 광화문 그리고 그 한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얘기다.

세종문화회관 로비

서울의 첫 기억

머리가 굵어지고 서울에 올라온 건 대입 논술 시험을 앞두고서였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일산에 있는 외삼촌댁에 짐을 풀고서 같이 시험을 보러 온 친구 녀석과 만나기로 했다. 촌놈들끼리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 왔으니까 궁궐 함 가봐야 안 되긋나?’ 이러면서 만난 게 덕수궁 앞 대한문. 고궁이 편의점도 아니고 왜 24시간 한다고 생각했을까. 밤 9시에 만나선 덕수궁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간 곳이 광화문이었다. 광장이 들어서기 전 왕복 16차선이 가득한 광화문은 또 그것대로 참 장관이었다. 그렇게 그곳은 서울의 첫 추억이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부터 광화문은 하나 둘 일상과 역사의 기억을 점유해갔다. 다들 조금은 비슷한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졌구나.’라는 생각에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터져 나오던 2002년 월드컵의 함성, 미군 장갑차에 때 이른 슬픔을 겪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해 처음 든 촛불. 광우병 파동 속에서 경찰 버스로 이루어진 산성을 마주해야 했고, 지난겨울 우리는 또 한 번 촛불을 들어야 했다 뭐, 그런 거창한 기억만 있겠는가. ‘왜 하필 그녀는 광화문과 청계천을 좋아했을까.’ 헤어진 연인에게 괜한 투정을 하며, 교보문고 한 번 들리면서도 괜스레 비슷한 뒤태의 누군가가 지나가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억. 그래, 그곳은 참 그런 곳이었다.

광화문 광장

다시, 광화문

2017년 5월, 다시 광화문 앞이다 언제나처럼 인파가 가득하다. 엄혹했던 지난겨울의 시간이 과연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인가 싶을 만큼 화사하여 오히려 낯설다. 광장 한 가운데는 세종대왕님이 언제나처럼 손을 뻗어 자리를 지키고, 어느 새 더워진 날씨에 아이들은 광장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에 비쳐 까르르 눈부신 풍경 한편에는 또 눈이 시리게 먹먹한 풍경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분향소와 희망 촛불,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하나 그 추모의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들. 왠지 오늘따라 그 옛날 바다를 지켜 나라를 구한 장군의 뒷모습조차 괜히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마음은 더 노랗게 새겨 드는 계절. 근무를 서는 경찰의 모습 속에서도 긴장감은 사라지고 일상이 배어 있다. 광화문에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세월이 지나고, 또 다른 시절이 스며들고 있었다.

야외 무대

극장만이 무대는 아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으로 발길이 향했다. 마침 세종문화회관과 국제음악마켓인 재즈인서울이 함께 주최하는 〈세종페스티벌×서울뮤직위크〉가 열리고 있었다. 23개국에서 온 총 55개 공연팀이 선보이는 음악 축제는 세종문화회관의 뒤편에 자리 잡은 ‘예술의 정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아트 마켓 소소가 열렸다. 독립출판물, 드로잉, 일러스트, 디자인 소품, 사진 등 젊은 아티스트의 톡톡 튀는 작품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장이라는 이름의 전시관

극장이라는 이름의 전시관

가끔 해외여행 중에 현지의 공연을 보게 되면 극장 투어를 하든, 어쨌든 극장을 괜히 둘러보게 된다. 그런데 공연 기자를 하며 한동안 꽤나 들락거렸던 공간이지만 정작 세종문화회관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1층에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도 인상적이지만, 가만히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다 보면 극장 건물 내에도 은근한 볼거리가 있다. 3층에 오르면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우남회관, 시민회관을 걸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생겨나기까지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고, 4층에는 세종 문화회관에 터를 잡고 있는 예술 단체들의 지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극장 견학을 위한 세종투어라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잊지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그런 공간이 있다

극장 문을 나서려는데 공연에 늦은 관객들이 후다닥 들이닥친다. 무슨 공연인가 보니 마침 이문세 콘서트다. 그래, 광화문이니까 이문세지. 배시시 웃음이 나와 가만히 그의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그러게 말이다.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런데도 참 여전하다. 봄날의 광화문에는 다시 또 한 번 사적(私的) 기억과 역사의 편린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또 한 번 추억의 지층으로 쌓아가고 있었다. 부디 이제는 즐거운 것들로 오롯하기를 기도해본다.

세종 예술시장 소소 1
세종 예술시장 소소 2
세종문화회관 견학 프로그램 - 세종 투어

세종문화회관 견학 프로그램 - 세종 투어

시간 : 평일 오전 10시 (소요시간 1시간)

비용 : 대학생 및 성인 5천원, 초중고 학생 3천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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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예술시장 소소

세종예술시장 소소

기간 : 2017년 4월 15일~6월 17일,
9월 2일~11월 4일 (매월 첫, 셋 째 토요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뒤뜰 예술의 정원

문의 : 02-399-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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