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관객들과 함께 만드는 오페라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관객들과 함께 만드는 오페라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글. 백다현(서울시오페라단 홍보담당)

푸치니와 베르디의 오페라도 모두 연극 대본에서 출발했고, 대본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 역시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이하 〈세종 카메라타〉)은 작곡가와 작가가 함께 지속적인 워크숍을 통해 말과 음악을 이해하며, 한국 희곡 작품을 바탕으로 한 창작 오페라를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종합연습실에서 진행된 〈세종 카메라타〉는 올해로 세 번째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공연은 각각 80여석이 마련되었는데, 모두 판매될 정도로 큰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오페라를 처음 관람하는 주부와 학생 등 일반 관객들은 〈세종 카메라타〉를 통해 오페라가 만들어지는 생생한 현장을 보고 느끼며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공연 후 대담회에는 원로작곡가 이상만, 이만방, 연출가 장수동, 음악평론가 탁계석, 이용숙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무대감독, 연출가, 작곡가, 배우 등 전문가와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이 참석했다. 이틀간 진행된 〈세종 카메라타〉 현장을 STORY175에 담았다.

달나라 연속극

〈달나라 연속극〉 6월 29일(목) 오후 3시

“〈달나라 연속극〉이 오페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70분 남짓한 공연이 끝나고,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전 단장은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절반이 손을 들었다. 이후 40여 분 동안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김은성 작가의 〈달나라 연속극〉은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로 자본주의 현실의 그늘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펭귄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작가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 결국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으로 삶을 견뎌낸다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의 동작을 중심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극과 달리 오페라는 노래를 통해 많은 것이 표현되는 만큼 이 부분에 관하여 더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일 작곡가 역시 ‘지금껏 오페라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던, 세밀한 장면들이 모인 드라마는 작곡가로서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라며, “작품이 차후 무대화가 된다면 극적인 음악보다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변화를 주겠다.”고 전했다.

〈비행사〉

〈비행사〉 6월 29일(목) 오후 7시

전쟁 후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정일 작가의 〈비행사〉는 관객들로부터 극적인 구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알 수 없는 시간과 황폐하고 쓸쓸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비행사〉는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보편의 이야기로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비행사〉의 대본에는 인물의 고유한 정서가 피어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작곡가로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나실인 작곡가는 작가가 대사의 운율이나 대사의 어미 등을 고려해 오페라에 적합한 대본으로 바꿔주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의 ‘수하’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아리아를 하나씩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전했다. 또한 ‘고하’ 역의 소프라노 장지애, ‘어미’ 역의 소프라노 윤성회 등 인물이 자신의 아리아를 부를 때 가사 전달력이 높아 관객이 작품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평도 받았다. ‘비행사’ 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 전태현 역시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으로 낯설고 외로운 인물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 〈세종 카메라타〉 워크숍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 중 하나는 한국어 발음 문제이다. 이 부분은 그 동안 작가와 작곡가 그리고 성악가들이 직접 대사를 노래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왔기에 이날의 성취로 이어질 수 있었다.

〈텃밭킬러〉

〈텃밭킬러〉 6월 30일(금) 오후 3시

주인공 ‘수음’이 ‘노스페이스’를 외치자,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현실을 반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입 속에 든 금니 세 개를 탐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윤미현 작가의 〈텃밭킬러〉는 경제적인 문제로 서로 의심하고 부도덕하게 변해가는 비정한 가족 공동체를 그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작품이다. 부모라는 텃밭을 갉아먹는 자식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현실 비판적이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끔 한다. 정주현 지휘자는 오페라의 대사에 있어 ‘대사와 음악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어떤 대사는 고유한 리듬과 운율을 가지고 있어서 더 음악적인 속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안효영 작곡가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언어 리듬에 주목하며, 무대화될 경우 서곡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의 마지막은 “오페라를 오페라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라는 한 대학생의 질문이었다. 여러 의견들이 오간 끝에 사회를 맡은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전 단장은 “예술의 정의는 항상 깨지는 것, 오페라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라며 관객들을 향해 답을 열어놓았다. 그야말로 모두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오페라 현장이었다.

마녀

〈마녀〉 6월 30일(금) 오후 7시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의 마지막은 〈마녀〉가 장식했다. 〈마녀〉는 2015년 4월 〈세종 카메라타〉의 두 번째 리딩 공연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거쳐 다시 선보인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 작품은 작곡가 임준희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는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만들 수 없는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1줄을 고치는데 1~2주를 소요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마녀〉는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 메시지인 ‘어머니’와 ‘구원’을 소재로 하며, 고재귀 작가에 의해 오랜 기간 다듬어진 대본은 깊은 철학적 사유와 섬세한 시적 언어를 담고 있다.
100여 분의 공연을 이끈 이태정 지휘자는 공연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지휘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프라노 정주희는 극에 완전히 몰입해 완벽한 마녀로 변신했으며, 바리톤 염경묵은 유형지의 대심문관 ‘기욤’과 왕좌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삼는 ‘황제’라는 1인 2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마녀〉의 음악에서 국악의 리듬을 발견한 관객도 있었다. 창작 오페라를 만들 때 우리 고유의 리듬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한국 고유의 오페라가 될 것이라는 의견에 모두가 공감했다.

〈세종 카메라타〉의 작품은 기존의 창작 오페라가 민화나 영웅전 등을 소재로 한 것과 달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또한 지휘자를 중심으로 배역을 맡은 성악가, 피아니스트 그리고 작가와 작곡가가 한자리에 모여 호흡을 맞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대사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장수동 연출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극을 좀 더 단순화시킨다면 한국어로 된 창작 오페라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만방 작곡가는 “앞으로 오페라가 귀족의 골방이 아닌, 과감하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