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해석, 풍부한 연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리뷰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2017-18 세종시즌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정통성을 고수하려는 독일의 악단과 달리, 빠른 적응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시간이었다고 할까.
핀란드 출신으로 조국이 같은 시벨리우스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선사한 ‘애향심’, 거슈윈의 곡을 통해 악단이 지닌 ‘젊은 감각’,
그리고 라벨의 레퍼토리를 통해 이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정통성’을 한자리에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네 번째 내한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은 정명훈이 음악감독 시절에 함께 내한하여 한국 청중에게 낯설지 않은 오케스트라이다. 현재는 정명훈 (2000~2015년 재임)의 뒤를 이어 음악감독으로 핀란드 출신의 미코 프랑크가 음악감독 직을 수행하고 있다.
1부는 시벨리우스의 크리스찬 2세 모음곡 중 ‘야상곡’과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2부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과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으로 꾸며졌다. 미코 프랑크는 본인이 연출하고 싶은 소리가 뇌리 속에 명확한 풍경으로 있는듯 했다. 그 소리가 정확히 대극장을 울릴 때, 몸이 불편하여 의자에 앉아 지휘해야 하는 그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일어서고는 했다. 지휘대를 오르락 내리며, 때로는 단원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지휘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해도 지휘대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다른 지휘자들과는 모션이 달랐다.
사랑의 감성을 담은 시벨리우스의 크리스찬 2세 모음곡 중 ‘야상곡’을 노래하는 프랑크는 과장이나 효과 없이 음악을 명료하게 심플하게 그려냈다. 가을 숲의 잘 마른 오솔길처럼 바스락거리는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파리(5월 12일)를 시작으로, 부산(20일), 통영(21일), 대전(23일)을 거쳐 서울에 상륙한 ‘미코 프랑크&손열음표’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은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1악장에서 싱싱한 선율과 화려한 리듬으로 몰아갈 때 두 사람은 무아지경이었고, 부드러운 선율로 흐르는 2악장은 마치 시벨리우스의 〈야상곡〉의 연장선인 것처럼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손열음은 1악장과 3악장에서 마치 악단에 합류한 타악 연주자처럼 흥을 돋우는가 하면, 프랑크는 피아니스트가 야성적으로 박차고 나아가야 할 부분에서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하모니를 중요시해야 하는 클래식 음악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 연주는 분명 만점이지만, 재즈의 여흥과 감각을 입고 있는 곡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너무나도 모범(?)답안 같은 연주이기도 했다.
2부의 첫 곡인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은 어린이들의 마음속 공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곡이다. 원래 어린이용 기교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피아노 연탄곡이었고, 후에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되었다. 미코 프랑크는 이러한 태생에 방점을 찍었는지 편안하고 포근한 연주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부 첫 곡인 시벨리우스의 크리스찬 2세 모음곡 중 〈야상곡〉과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을 노래하는 현악기들의 색채가 완연히 달랐다는 점이다. 전자가 핀란드 출신의 시벨리우스와 미코 프랑크의 약속이 만든 사운드였다면, 후자는 프랑스의 정통과 뿌리가 몸에 밴 단원들과 그것을 아는 지휘자의 합의가 만든 또 다른 사운드였다.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은 의도적인 세련미를 피한 수수한 인상이며, 잔향 효과도 적은 편이었다. ‘새벽’, ‘무언극’, ‘일동의 춤’으로 구성된 이 모음곡을 미코 프랑크와 여섯 명의 타악 주자는 예상치 못한 악상 기호의 첨가와 악센트 구사를 통해 곡의 표정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앙코르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었다. 신경을 적절히 자극하면서도 포근한 감성에 젖게 하는 균형감이 돋보였다.
종합해보면 미코 프랑크와 이 악단이 선보인 ‘라벨 3종 세트’는 우리가 흔히 프랑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정서와 감각, 그것에 대한 충만함과 탄탄한 짜임새로 일관된 호연이었다. 특히, 관악 주자들은 적절한 비브라토와 힘의 분배를 통해 현악기들이 노래하는 주제 선율이 아름답게 수놓아질 수 있도록, 음악 전체의 구조 안에서 제 기능을 다 했다.
이날 아쉬웠던 점은 관객들의 박수였다. 각 곡의 악장마다 박수가 나왔고,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의 상승으로 치솟는 종결부에서는 음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를 맞이하는 박수와 그 사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2017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일정 : 2017.05.25 (목)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19시 30분
티켓 : VIP석 15만원, R석 12만원, S석 9만원, A석 6만원, B석 4만원
문의 : 02-399-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