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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권좌의 무게를 감당할 자 누구인가?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작 <왕위 주장자들> 유연수·유성주·김주헌 인터뷰

욕망과 권좌의 무게를 감당할 자 누구인가?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작 <왕위 주장자들>
유연수·유성주·김주헌 인터뷰

writer 최보윤(<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일인자’로 타고났다 확신하는 자와 그 자리는 내 것이라 꿈속에서도 욕망하는 자.
이 둘을 저울질하며 배후의 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이.
오만과 비겁이 판치고 배신과 모략이 뒤범벅된 현장은 마치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듯하다.

3월 31일부터 세종M씨어터 무대에 오를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왕위 주장자들>은 지금으로부터 154년 전인 1863년에 쓰인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대성’을 지닌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국내 초연이다.
13세기 노르웨이가 무대로 선대 왕이 서거한 뒤 어린 호콘 왕과 그를 대신해 섭정했던 이인자 스쿨레 백작, 이 둘 사이에서 심리적 간계를 꾸미는 니콜라스 주교가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이다.

유연수 - 니콜라스 주교 © 김호근

왕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누구보다 크지만, 그만큼 겁쟁이이기도 하다. 교회라는 거대한 권력 뒤에 숨어 대리만족한다. 왕의 적통성에 대한 의심을 자꾸 백작에게 던진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존재다.

지난 2014년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며 과거의 사건을 두고 마치 어제 벌어진 것처럼 놀라운 통찰력을 보였던 김광보 서울시극단장이 연출을 맡아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외에도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 홍문기 의상, 정윤정 소품, 금배섭 안무, 이국호 무술 등 국내 최정상 제작팀이 모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창직, 강신구, 유성주, 최나라, 이지연 등 서울시극단 단원과 연수 단원, 그리고 유연수,김현, 문호진, 김주헌 등 실력파 배우 총 23명이 출연한다.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지, 무모한 자리다툼으로 인간적 고뇌에 휩싸이고, 나약한 자기 신념은 결국은 파멸의 길이란 걸 그려내는 ‘주장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에 긴장감을 주는 니콜라스 주교 역의 배우 유연수는 연극 <칠수와 만수>, <나쁜자석>, <프루프> 등을 연출한 경력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다각도로 해석해낸다. 입센 전문가이자 이 작품을 번역한 한양대학교 김미혜 명예교수가 “가장 ‘햄릿적’이자 현대적인 인물”로 꼽은 스쿨레 백작 역은 서울시극단 지도 단원인 유성주가 선보이고, 호콘 왕 역은 연극 <소설처럼>, <요요현상>에서 호연한 김주헌이 맡았다.

유성주 - 스쿨레 백작 © 김호근

끊임없이 욕심을 품는 스쿨레 백작은 매일 밤 꿈속에서 "난 노르웨이 왕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욕망이 가득하다. 호콘이 ‘확신하고 있는 자’라면 백작은 스스로 이 자리에 적법한가 계속 의구심을 가지며 괴로워한다.

극 속에서 각 인물들은 다들 괴로워한다. 뭐가 그리도 왕이 되고 싶게 만들었을까?

유성주 스쿨레 백작 대사 중에 호콘 왕과 싸우면서 “내가 왕이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연습 중이긴 하지만 실제 스쿨레가 왕이 됐어도 잘 다스렸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웃음). 중간에 스스로 왕관을 쓰는데, 문제는 왕이 되고 나서부터다. 왕이 되기까지는 직진이었지만, 정작 오르고 나서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신은 나의 편이 아니라는 불안감이 증폭하고, 내가 생각하는 왕권이란 게 이상적인 것인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고뇌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유연수 니콜라스 주교 역시 왕을 손에 쥐고 흔드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호콘 왕과 스쿨레 백작 사이를 오가며 둘의 갈등을 심화하고 끊임없이 부채질하면서 전쟁도 일으키게 하는 등 왕을 흔들어 놓는다. 스스로 악마가 되길 자처하는 사람이다.


유성주 그런 인형 놀 음에 휘청이는 것도 그만큼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주교가 툭툭 던지는 미끼에 저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된다. 입센의 원작은 왕권중심주의 시절 ‘적통성’이 과연 무엇으로 결정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구세대와 신세대의 충돌도 담고 있다. 왕권을 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스쿨레 백작에게 호콘 왕은 한마디 던진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내용 같지만, 달리 보면 삼촌인 스쿨레를 하대하는 가진 자의 거만으로 들리기도 한다.

유연수 - 김주헌 - 호콘 왕 © 김호근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왕이다. 김광보 연출과 작업하면서 왕이 갖고 있는 단순한 근엄함보다는 인간적으로 파고드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연기하면서 힘든 게 있다면.

유연수 지금 우리 모습만 봐도 그리 싱싱한 건 아니지 않은가(웃음). 셋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요 역할이다 보니 한 명만 흔들려도 균형감을 잃기 쉽다. 힘든 것에 앞서 대본의 동시대성에 놀라 연습하면서도 감탄하고 있다. 154년 전 이야기가 2017년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들린다. 탄핵과 조기 대선을 앞두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암투도 벌어질 수 있고, 어떤 킹메이커의 손에 각본이 쓰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모두 밑바닥에 지닌 악마성이 어떻게 변용돼 나올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유성주 5막짜리 연극이라 대사 분량도 많고 특히 스쿨레 백작은 독백이 많아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김광보 연출은 ‘빈 무대’로 유명한 분이다. 그걸 연기로 채워가야 하니 쉬운 건 아니다. 그래도 연출이 워낙 정확해서 좋으면 ‘좋다’고 확실하게 말해줘서 자신 있게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왕위주장자들
유연수  © 김호근

김주헌 인물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돼 있긴 하지만, 좀 더 새로운 해석을 해보려 한다. 3막으로 넘어가면서 스쿨레 백작에게 “왕국을 나에게 줘”라고 하는 대사를 무겁지 않게 처리할 생각이다. 인물에 있는 지질함과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려고 한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듯, 이 작품 역시 한 명만 살아남는다. 다툼에서 진 자에게는 인간의 마지막 존엄 같은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작품이 더 현대적으로 읽히는 건 바로 이런 대목이다. 언제나 적을 설정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이에게 용서와 화합보다는 언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 모르는 싹을 제거한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첫 대목처럼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나지만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쇠사슬로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외려 노예들보다 더 삶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위를 지키려는 자도, 찬탈하려는 이도, 이를 부추기는 존재도 서로가 서로를 예속하며 타인에게 삶을 의존하는 모양새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도 자세히 설명됐듯, 노예에 의존해 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라면 그 삶의 주인은 자신이 될 수 없다.
대주교였던 니콜라스는 지옥에서 부활해 스쿨레 앞에 다시 나타난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죽은 자의 망령도 되살릴 만큼 선동적이다. 언제든 포획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악마의 꼬임을 읽고 있으면 이 문장이 단지 종교적인 수사가 아니라 숨겨놨던 치부를 들킨 듯한 느낌이다.

김주헌 © 김호근

이번 작품만의 매력을 말한다면.

유성주 이전에 공연한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을 볼 때도 놀랄 정도로 우리 상황과 닮아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통찰력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재밌고 웃음 나는 작품들도 많겠지만, 고전극 특유의 철학적인 제언같이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김주헌 1막부터 밀어붙이며 숨통을 죄어오는 치열함이 극 전체를 지배하지만, 분명 위트 있고 재밌는 구석이 엄청 많다. 권력 최상위층의 사람들이 치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위와 상관없이 인간 누구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대결로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특정 계층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유연수 권력 다툼이란 게 연극의 모티브로 자주 이용되는 소재고 많이 소비돼 왔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직접 와서 보면 작가의 위대함에 놀랄 것이다. 게다가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극 아닌가. 어깨가 무겁다. 이 좋은 작품에 어깨가 짓눌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하하.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헨리크 입센의 `왕위 주장자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헨리크 입센의 `왕위 주장자들`

기간 : 2017.03.31(금) ~ 2017.04.23(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월,수,목,금 19시30분/ 토 14시, 18시30분/ 일 14시(화 공연 없음)

티켓 :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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