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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성자, 슈바이처의 바흐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의 바흐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그의 많은 업적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운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바흐 협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 병원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럽 순회 연주를 할 정도로 출중한 오르가니스트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그의 연주는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울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슈바이처

그는 1875년 프랑스와 접경 지역인 독일의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해서 많이들 프랑스령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독일 프로이센의 땅이었죠. 알자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가 서로 섞여 있는 매우 독특한 지역입니다. 덕분에 슈바이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모두에 능통했고, 태어날 때는 독일인이었지만 후에는 프랑스인이 됩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강대국들이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서로 식민지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가뜩이나 발전이 더디던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많은 부와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의 가난과 고통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잔혹한 방법으로 아프리카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타인을 위한 삶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대까지만 자신을 위해서 살고, 30세부터는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특히 1905년 ‘아프리카에는 약도 없고 의사도 없다’라는 한 선교사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고, 의사가 되어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로 결심합니다. 무려 서른의 나이에 자신이 교수로 있던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의대에 진학해서 늦깎이 의대생이 되지요. 안정되고 편안한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내려놓고, 다시 학생으로 시작해 7년 만에 의사 자격을 획득한 그는 1913년 파리 선교회 소속 선교사 자격으로 드디어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개하므로 침략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양심을 대신해, 슈바이처는 현재 ‘가봉’의 ‘랑바레네’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합니다. 남편과 뜻을 같이해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부인과 함께였지요.

그는 의료소를 차리기도 전에 밀려오는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닭장을 개조해서 의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교회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약품 하나 붕대 하나조차도 모자라서 사용한 약병을 다시 돌려받아야 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각종 궤양과 한센병, 말라리아, 이질 등 아프리카에 만연했던 질병들로부터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의 건강을 지켜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후에도 65년까지 평생 13차례에 걸쳐 37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며, 의사로서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헌신합니다.
우리는 그가 의료 활동을 펼쳤기에 그를 지칭하는 ‘박사’라는 호칭이 ‘의학박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의사가 되기 이전인 24~25세 때에, 이미 철학박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연거푸 취득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능력 있는 교수였습니다. ‘예수’와 ‘바울’을 연구한 책을 집필하기도 한 뛰어난 신학자이기도 했죠. 그의 많은 업적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운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바흐 협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 병원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럽 순회 연주를 할 정도로 출중한 오르가니스트였습니다. 바흐에 관한 책을 저술할 정도로 권위 있는 바흐 연구가이자 음악학자이기도 했으며, 오르간 제작법과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음악에 대한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이미 철학박사, 신학박사, 의학박사였지만 그는 뛰어난 ‘음악 박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바흐 협회에서 보내준 피아노를 연주하며 평생 바흐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90세에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의 딸이 연주하는 바흐 음악과 함께했을 정도로 바흐를 깊이 사랑했었죠. 다행히도 EMI의 명 프로듀서 ‘월터 레그’는 오르가니스트 슈바이처 박사와 1930년대 중반, 세 번의 리코딩 세션을 가졌습니다. 그중에는 슈바이처 자신이 연주하던 스트라스부르 ‘성 오렐리 교회’의 오르간을 사용한 곡도 있었죠. 그 덕에 우리는 그가 연주하는 바흐 음악을 지금도 들을 수 있습니다. 비록 오래된 녹음이라 음질도 열악하고 사운드도 빈약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그의 연주는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울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상 수상으로 받게 된 상금조차도 모두 아프리카에 나환자촌을 건립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늘 자신을 위한 계획과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올해에는 ‘밀림의 성자’로 불렸던 슈바이처 박사의 삶을 생각해보고,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과 이웃을 위한 삶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연주하는 귀한 ‘바흐 연주’를 들으면서 말이죠.

바흐: 오르간 작품집 (Bach - Organ Works)

바흐: 오르간 작품집 (Bach - Organ Works)

1번째 : 토카타와 푸가 D장조 (Toccata & Fugue in D Minor, BWV 565)

2번째 : 사랑하는 예수여, 우리 여기 있나이다. (Liebster Jesu, wir sind hier, BWV 731)

3번째 : 전주곡과 푸가 C장조 (Prelude and Fugue in C, BWV 545)

4번째 :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 (Jesus Christus, unser Heiland, BWV 665)

5번째 : 전주곡과 푸가 E단조 (Prelude and Fugue in E Minor, BWV 548)

6번째 : 작은 푸가 G단조 (Fugue in G Minor, BWV 578)

7번째 : 진실로 그리스도를 찬양하리라 (Orgel-Buchlein, BWV 599-644: Christum wir sollen loben schon, BWV 611)

8번째 : 순결한 양의 하나님 (O Lamm Gottes, unschuldig, BWV 656)

9번째 :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C장조 토카타 (Toccata, Adagio and Fugue in C, BWV 564 : Toccata)

10번째 : Toccata, Adagio and Fugue in C, BWV 564 : Adagio

11번째 : Toccata, Adagio and Fugue in C, BWV 564: Fu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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