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으로 향하는 ‘자유(free)로’
돈화문국악당 프리&프리
writer 송현민(음악평론가)
서울 창덕궁 일대에 들어선 서울돈화문국악당은 140석 규모의 아담한 공연장으로,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국악기의 생생한 소리를 접할 수 있는 ‘자연 음향’ 공연장이다. 이곳은 2016년 9월 개관 이래, 그 규모에 걸맞은 아담한 공연을 제공하며, 국악이 담길 그릇으로서 제 역할을 돈독히 하고 있다. 최근 소규모와 자연주의 음향을 목적으로 한 공연장들이 잇따라 개관·재개관하면서 경쟁 도구는 음향과 규모에서, 기획물로 옮겨지고 있다. 여기에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재빠른 걸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으니, 3월 3일부터 5월 27일까지 선보이는 ‘프리&프리’ 기획물에 눈길이 간다.
‘프리&프리’는 ‘전(前)’이나 ‘사전(史前)’을 뜻하는 프리(pre), ‘자유로운’을 뜻하는 프리(free)가 합쳐진 말. 2016년, 개관 전에 선보인 ‘프리&프리’가 개관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프리(pre)’에 방점을 찍었다면, 올해 ‘프리&프리’는 다양한 공연과 레퍼토리를 준비하여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프리(free)’에 방점을 찍는다.
올해의 ‘프리&프리’를 위해 돈화문국악당은 2016년 12월부터 1월까지 공모를 했고, 이에 응한 134개 팀 중 25개의 팀을 선정했다. 선정과정에서 관객의 유형을 유·아동/청소년/주부·시니어/외국인/일반으로 분류하여, 각 파트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한 것이 장점이다. 각 유형별로 활동 시간대를 고려하여 공연 시간을 조정한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각 팀의 소재와 형식을 살펴보면 특색들이 보인다. 유아·아동을 대상으로 한 그룹 자하의 <달방울>은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샌드아트와 동화 구연을, 그룹 문화놀이터 동화의 <어린 왕자의 지구 보고서>는 동화 <어린 왕자>를 소재로 했다. 평일·휴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공연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룹 노리꽃의 <배의 밤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룹 음마갱깽의 <꼭두,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의 주인공 박첨지를, 그룹 필락의 <젊은 연희 콘서트>는 사물놀이·굿·탈춤·풍물 등을 소재로 했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시각 장애인 궁중 악사의 우리 소리 진수성찬>은 조선 시대에 음악적 능력이 뛰어났던 시각 장애 악사들로 구성되었던 관현맹인(管絃盲人) 제도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국악의 대중화’이라는 슬로건이 유행이었다. 그러던 국악계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대중화’보다 명민한 기획력으로 대중을 세분화하여 연령층과 직업군에 맞는 공연을 기획·생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롭게 부상한 계층이 주부층, 실버 세대라 불리는 시니어 층이다. 이들을 위한 공연으로 소리꾼 유리나의 <생각보다 좋은 노래>, 그룹 음악도깨비 홀림의 <홀림樂(악)담-발상의 전환>, 판소리치료연구소의 <요절복통 창작 판소리-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가 오른다. 이 공연들은 평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또한 판소리와 탭댄스를 소재로 한 <소리꾼, 탭꾼>, 한국어·영어로 해설하며 해금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A Journey To Haegeum>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지만, 국악의 첫 관문 앞에 내·외국인이 따로 있으랴. 국악 초심자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이외 전통부터 창작 국악까지 다양한 음악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13개 단체 및 음악가들이 오른다. 이들은 그룹 919-23, 두들쟁이 타래, Project ‘봄’, 첼로 프로젝트, 그룹 시로, 예술 동인 카인, 그룹 다올소리, 이선(가야금병창), 아음회, 김동환, 김계옥가야금연주단, 이승희(해금) 등으로 각자의 음악적 정체성을 무기 삼아 다종다양한 팬을 거느리고 있다. 요새 초심자와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음악가와 그룹은 없다. 따라서 이들이 전문적 단체라 할지라도 초심자를 배려하며 문턱을 낮춘 레퍼토리를 장착하고 있으니, 돈화문국악당으로 하여금 활짝 열린 ‘자유(free)로’를 타고 국악의 길로 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2주간 국악 동호인들의 무대로 꾸며지는 ‘시민주간’도 진행된다. 첫째 주에 ‘해금과 사람’ ‘대금사랑 청소리회’ 등, 둘째 주에 ‘연세국악’ ‘경기교사’ 등, 각 주마다 10개씩 공연한다. 객석으로의 관객 유입 외에 무대로까지 관객 유입에 신경 쓴 돈화문국악당의 봄은 한마디로,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