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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그랑 프로제

세종문화회관과 새 콘서트홀

현대식 그랑 프로제

세종문화회관과 새 콘서트홀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는 프랑스 미테랑 정부의 정책 브랜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통령을 지낸 미테랑은 파리를 중심으로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건축물을 지었다. 대규모 하드웨어 확장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정책은 주로 문화예술 부문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오르세 미술관, 라 빌레트 등이 있다. 특히 파리의 경우는 지금의 파리 신을 만들어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국책 사업 또는 국가적 건립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그랑 프로제는 이후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영국 런던도 성공한 예로 본다.
그랑 프로제는 규모에서 국가적 사업인 만큼 기대되는 편익 또한 크고 다양하다. 문화예술 부문이라고 해서 자체의 동기와 니즈만으로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 크고 다양한 니즈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도시 경쟁력 확보, 지역 간 균형 발전, 시민의 자부심 확대, 관광 산업의 질적·양적 변화 등과 같은 것이다. 대형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전면에 문화예술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사회적, 경제적, 산업적 편익을 도모하는 것은 보편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랑 프로제의 대표 격으로 내세울 만한 것으로 예술의전당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다. 두 프로젝트는 모두 중앙정부가 주도했고 건립에서 개관까지 10년 이상 걸렸다. 예술의전당은 1980년대 초반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정권이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펼친 사회 전 부문의 소위 ‘개혁’의 산물이다. 언론 통폐합이나 삼청교육대와 같은 조치의 한쪽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독립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던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개관 후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동기가 강했던 프로젝트였기에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또 다른 대표적 그랑 프로제다. 2003년에 이루어진 기초 연구로 따지면 2015년 개관까지 12년이 넘게 걸렸다. 투입된 재원도 기록적이다. 대통령만 따져도 세 명의 대통령 임기에 걸쳐 있다. 예술의전당이 아트센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실행한 것처럼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새로운 개념 위에 만들어졌다.

③ 썸머클래식

예술의 전당

④ 신시

좌: 예술의 전당, 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간으로 따지면 서울에 새 콘서트홀을 짓겠다는 구상도 만만찮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예정지는 노들섬이었고 ‘노들섬 예술센터’라고 불렸다. 노들섬에 콘서트홀을 비롯한 복합예술 공간을 지으려고 한 계획은 계획 발표 후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다. 타당성 조사와 국제 심포지엄에 이어 국제 아이디어 공모대회와 지명초청 설계 경기가 2005년과 2006년에 2년에 걸쳐 잇달아 열렸다. 당시 지명초청설계경기에서는 장 누벨이라는 세계적인 건축가와 삼우건축의 컨소시엄이 당선된 바 있다. 2006년 중반 새 시장을 맞은 서울시는 프로젝트를 재검토했다. 기존의 당선작을 배제하고 새로운 설계 공모를 열어 새 당선작을 발표했고, 실시 설계에 들어갔다. 프로젝트 이름도 ‘한강예술섬’으로 바꾸었다. ‘노들섬 예술센터’ 시절부터 다양한 비판과 반대를 받았던 이 프로젝트는 결국 2012년 이후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그랑 프로제의 성격을 버리고 민간 주도의 음악복합문화 시설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콘서트홀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남았다. 복합예술 공간에서 콘서트홀만 떼어낸 프로젝트 구상은 계속되었다. 서울에 새 전용 콘서트홀을 짓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위치였다. 서울시는 타당성 조사(2014년)를 거쳐 2015년에 세종로 공원을 새 건립 예정지로 확정하였다. 알다시피 세종로 공원은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사이에 있는 공원이다. 지하에는 6층까지 도심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새로운 예정지인 세종로 공원에도 이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올해 세종문화회관 일대에 예술복합단지 조성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종로 공원에 건립하려고 한 콘서트홀과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 리모델링을 묶어 새로운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건립한 지 40여 년이 된 세종문화회관과 초현대적 공연장인 콘서트홀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사업이 된다. 2년여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해 온 나는 정작 바로 옆에 건립하려고 한 콘서트홀 건립 계획에 기여하지 못했다. 세종문화회관 일만으로도 숨이 차서이기도 하지만 새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가 새해 추진하려고 하는 예술복합단지 조성이 완전히 새로운 구상은 아니다. 이전 계획에도 새로 콘서트홀을 지으면 세종문화회관의 기존 공간과 역할 분담을 통해 협업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간 다른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보니 새로운 그림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당장 나는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면 세종문화회관에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탁월한 위치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인프라와 운영으로는 서울(나아가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되는 게 쉽지 않다. 이미 문화유산급인 기존의 인프라를 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홀은 이 일대의 문화적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다. 그것은 세종문화회관보다 서울, 우리나라에 더 좋은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요즘 식 그랑 프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