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웅이 필요한 때!
뮤지컬 <영웅>
writer 부소정(공연칼럼니스트) / photo ㈜ 에이콤 제공
한 인물의 삶이 이토록 세대와 세대를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관객이 다 함께 벅찬 감동으로 공연장 문을 나설 수 있는 공연, 오래된 심지처럼 울림이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는 공연, 시국이 혼란할 때일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공연, 뮤지컬 <영웅>이 돌아온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일 년을 뜨겁게 투영하고 있는 뮤지컬 <영웅>은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일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
단지동맹을 통해 동지애를 불태우고,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군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리는 등 숨 막히는 장면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동지들의 죽음에 오열한다. 십자가 밑에서 ‘장부가’를 부르며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장면은 대의를 위한 희생과 인간적 고뇌 사이에서 외적 내적 갈등을 동시에 겪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겹쳐져서 가슴이 찡하다.
안중근 의사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환영처럼 등장하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한 땀 한 땀 지은 수의를 보내며 안중근 의사의 결의를 다지게 만들어준다.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올바른 정의의 편에 서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든든한 지지를 받으며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동양의 평화를 꿈꾼다.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혜라는 것이다.
일본인 간수조차 그의 인품에 감격하여 평생 선생님으로 모셨다는 일화는 오래도록 회자된다. 하지만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밖에 없었던 열다섯 가지 이유를 강력하게 주장한 재판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품에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담은 창작 뮤지컬로 의의가 있다는 점 외에도 뮤지컬 명장면과 명넘버가 많은 뮤지컬로 손꼽힌다. 11인의 독립투사가 자작나무 숲 앞에서 조국에 한 손가락을 바치며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 장면, 독립군과 일본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 실제 열차가 무대에 등장해 눈을 뚫고 달려가는 장면, 설희가 죽기 전에 눈이 꽃잎처럼 날리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대면서 ‘누가 죄인인가’에 대해 반문하는 재판 장면,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사무친 심정으로 노래에 담아 부르는 장면, 안중근이 최재형, 동지 3인방과 큰 태극기를 펼치며 독립 의지를 다지는 장면 등 한 장면 한 장면이 윤호진 연출과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손에서 명품으로 디자인되었다. 뮤지컬 넘버 역시 3개의 베스트 넘버인 ‘단지동맹’,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외에 설희의 내적 갈등을 담은 ‘내 마음 왜 이럴까’, 조마리아 여사의 절절한 심경이 담긴 ‘내 사랑하는 아들, 도마’, 일본군과 독립군의 긴장 넘치는 추격전을 담은 연주곡 ‘추격’ 등도 인상적인 넘버로 뽑힌다. 뮤지컬 <영웅>은 2017년 또한 김문정 감독이 이끄는 24인조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생생한 라이브 음악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한다.
뮤지컬 <영웅>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안중근 역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2017년에는 영원한 안중근 정성화, 돌아온 안중근 양준모 배우 외에 새로 배우 안재욱, 이지훈이 합류하면서 4인 4색의 영웅을 만나볼 수 있다. 설희 역에도 기존 리사 외에 박정아, 정재은 배우가 합류하면서 기대감을 더한다. 중국인 소녀 링링 역에 새로 캐스팅된 허민진(크레용팝 초아)도 팬들의 관심 대상이다.
한 인물의 삶을 조망하는 뮤지컬은 탄생부터 시대적 고증까지 무대화되기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계보를 잇는 <영웅>은 명성황후의 후속작이 아닌, 새로운 명품 창작 뮤지컬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영웅으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가족과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애와 인간적 고뇌를 적절히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입체적으로 안중근 의사를 그려냈다. ‘안중근’이란 영웅을 이미 완성된 상태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여러 갈등과 고난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뒤에 더욱 애틋하고 가슴에 남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역사 창작 뮤지컬의 모범으로 우뚝 설 뮤지컬 <영웅>은, 난세의 ‘진정한 영웅’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함으로써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