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가는 세상에 고함
셰익스피어 인 발레 <크레이지 햄릿>
writer 장혜선(객원기자) / photo SEO(서)발레단 제공
미치고 싶은 세상에서 하루를 무던히 견뎌내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안무가 서미숙은 동시대에도 유효한 햄릿의 비극을 날카로운 몸짓으로 포착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400여 년 전 햄릿의 독백은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고백이다. 호소력 짙은 이 명언은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지난 10월, 셰익스피어 <햄릿>을 각색한 창작극 <함익>에선 이렇게 불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도 아니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것이 문제야.” 이처럼 원작의 유명한 구절이 새롭게 변형되고 있지만, 관통하는 뜻은 한결같다. 악독한 운명을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초상을 담는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11월, 발레STP협동조합과 세종문화회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크레이지 햄릿>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던질 것이다. “미치거나, 미치지 않거나, 그것이 문제로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SEO(서)발레단의 예술감독 서미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햄릿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고 전했다. 살다 보면 극한의 상황 앞에서 ‘차라리 미쳐버리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내뱉는다. 차라리 미치면 모든 것을 마음 편히 내려놓기에 좋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작품은 현대인들의 이러한 내면을 이야기한다. 주요 인물인 햄릿, 오필리아, 클라우디우스, 거트루드가 출연해 각 인물의 내적 갈등을 다룬다.
1막, 거대한 사운드의 록 음악이 무대를 채운다. 적적한 내면을 형상화한 계단 위에 햄릿의 복잡한 삶과 가장 밀착된 세 인물이 올라간다. 세 개로 나뉜 계단에서 오필리아, 클라우디우스, 거트루드는 각자의 광기(狂氣)를 드러낸다. 자신만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그들은,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다’고 과감하게 표출한다. 광기와 슬픔을 적나라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용수들의 즉흥 춤도 들어갈 예정이다. 2막은 햄릿의 비련의 여인, 오필리아를 중심으로 작품이 진행된다. 햄릿의 꿈속에서 어린 시절의 오필리아가 등장한다. 순수했던 시절, 어린 오필리아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춤은 점점 현실과 가까워지면서 격렬해진다. 햄릿과의 듀엣은 혼돈 속에서 펼쳐진다. 2막은 무용수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에 주목하여 관람하면 좋을 것이다.
<크레이지 햄릿>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리며 새롭게 제작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민간발레단 저변 확대를 위해 출범한 발레STP협동조합과 서울특별시가 설립한 세종문화회관의 합심으로 의미를 가진다. 정부나 기업의 후원 없이 활동해야 하는 민간단체는 재정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용계 환경이 점차적으로 개선되려면 공공단체와 민간단체의 균형적 발전이 시급하다. 세종문화회관과의 협업은 발레STP협동조합이 출범 3주년 만에 이뤄낸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민간발레단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지속되고, 단체가 직면한 문제에 귀 기울이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