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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두 줄기 숨결

오페라 <맥베드> 지휘자 구자범&연출가 고선웅 인터뷰

고전에 새로운 바람을불어넣을 두 줄기 숨결

오페라 <맥베드> 지휘자 구자범&연출가 고선웅 인터뷰

writer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 photo 이도영(STUDIO D)

1997년 서울시오페라단이 초연한 오페라 <맥베드>가 2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구자범과 연출가 고선웅이 함께한다. 과연 두 사람이 어떤 새로운 고전을 창조해낼지 기대된다.

고전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한 지인이 하루는 이렇게 물어왔다.
“콘서트홀에서는 매번 베토벤 아니면 모차르트, 오페라 극장에서는 매번 베르디 아니면 푸치니만 하던데, 같은 작품을 계속해서 보면 지루하지 않나요?”
일단 오페라를 포함한 클래식 음악계가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척하기에 그리 쉽지 않은 환경임은 엄연한 사실이고 유감스런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똑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복습하러 다닌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관객들이 꾸준히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같은 작품에서 예전에 미처 못 본 새로움을 이번에는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 새로움은 파고 또 파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한하며,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고전’의 미덕인 것이다. 400년이나 지난 셰익스피어의 죽음을 오늘날까지 기념하는 것 또한 그가 남긴 작품의 영원한 생명력 덕분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오는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리는 오페라 <맥베드>는 그런 의미에서 ‘고전을 흠모하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 또한 젊어서부터 셰익스피어에 심취했던 열렬한 숭배자 중 한 명이었다. 베르디의 침대맡에는 이탈리아 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전집이 그가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생전에 그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오페라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늘 말하곤 했다. 이 소원을 이루기란 쉽지 않았다. <리어 왕>의 경우 무려 다섯 번이나 오페라로 제작하고자 시도했으나 불발로 그쳤다. 결국 마지막에 남긴 세 작품이 <오텔로>와 <팔스타프>, 그리고 <맥베드>다. 앞의 두 작품이 각각 베르디 최후의 비극과 희극을 기록한 말년의 작품인 데 비해, <맥베드>는 30대 초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시절에 작곡되었으며 베르디 개인에게는 열 번째 오페라에 해당한다. 앞의 두 작품의 대본을 보이토가 전적으로 집필한 것과 달리 <맥베드>는 베르디가 손수 대본 집필은 물론 노래와 장면 구분까지 했다(베르디가 완성한 1차 대본을 막역한 친구 피아베가 운문으로 수정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대문호의 원작 텍스트를 존중하고자 했던 작곡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음악을 언어처럼 구현하는 지휘자, 구자범

구자범

서울시오페라단의 <맥베드>를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토록 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맥베드>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들에 비해 세계적으로 드물게 상연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서울시오페라단이 초연한 이래 2008년 국립오페라단이 무대 위에 올린 게 전부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희소한 레퍼토리가 되어 버린 이유는 제작 과정에서 유독 이 오페라가 연극성과 음악성 양쪽 모두에서 똑같이 세련되고 복잡한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서울시오페라단은 두 아티스트를 제작에 섭외했으니, 그들이 바로 지휘자 구자범과 연출가 고선웅이다. 이번 오페라 <맥베드>를 주목하는 나머지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구자범과 고선웅의 컬래버레이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구자범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 함께 시네마 콘서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고선웅 “구자범 선생님이 영화음악들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했고, 저는 각 영화음악 테마들을 나열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썼습니다. 그때 지휘자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뜻이 잘 맞아 무척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자범 선생님도 참 열정적이셨어요. 한 번은 의논할 게 있다며 밤 10시에 제 사무실로 찾아오셨는데, 보안장치가 가동 중이어서 문이 잠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창문을 넘어서 들어오셨죠.”

고선웅은 오페라 <맥베드> 연출을 수락한 동기 중 하나가 “구자범이 지휘하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고선웅의 추임새가 아니더라도 오랜 침묵을 깨고 무대로 돌아온 지휘자 구자범은 이번 프로덕션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다. 그 무대가 오케스트라가 아닌 오페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교향악단 지휘자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귀국 전 독일에서 그는 오페라 극장 지휘자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아왔다. 2006년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 <투란도트>로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을 때, 그는 자신이 가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중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것은 가사의 뉘앙스를 음악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이었다. 음악과 가사 사이에 존재하는 행간의 콘텍스트를 거의 본능에 가깝게 파악하고 지휘봉으로 살려냈는데, 당시 한 청중은 “마치 이탈리아 어로 된 가사를 알아듣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는 관람 후기를 남겼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는 베르디가 <맥베드>에 심어놓은 여러 음악적 에니그마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구자범 “베르디가 이 작품에 시도한 파격적인 해석 중 하나가 마녀들이에요. 오페라에서는 음악적· 연극적 전개상 마녀들의 비중이 희곡 원작에 비해 훨씬 높죠. 원작에는 3명의 마녀가 소개되는데 오페라에서는 18명의 합창단이 마녀의 목소리를 대신합니다. 저는 여기에 마녀라는 존재를 믿지 않은 베르디의 해석이 들어갔다고 봐요. 즉 마녀가 맥베드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환영이란 것을 묘사한 것이죠. 던컨 왕도 그래요. 희곡 원작에서는 맥베드에게 살해당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오페라에서는 대사 한 마디 없는 벙어리로 출연합니다. 왕을 죽이는 음모 자체를 입 밖에 못 내는 긴박감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을 겁니다. 맥베드가 부인과 함께 왕을 죽이는 음모를 논의하는 이중창도 가성을 요구하고 오케스트라도 약음기를 끼고 연주해야 해요. 남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얘기라 그런 거죠. 맥베드가 왕이 되기 전에는 한참 강렬한 포르테로 노래를 부르다가도 ‘왕관’이나 ‘왕좌’란 가사만 나오면 피아니시모로 움츠러드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과거를 오늘처럼 되돌리는 연출, 고선웅

고선웅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인사인 연출가 고선웅의 섭외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또 하나의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이는 <맥베드>가 음악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베르디가 직접 원작(5막 29장)을 간추려 만든 이 오페라는 그리 길지 않음에도 4막에 무려 장면 전환만 열 번을 포함한다. 원작에서는 길게 이어지는 중요 사건들이 노래 한 곡에 짧게 압축되어 있기도 하다. 어지간히 정교한 연출이 아니면 빈번한 무대 전환과 가수들의 등·퇴장, 압축된 줄거리로 청중들은 산만해지기에 십상이다. 그동안 정극·뮤지컬·창극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고선웅에게 오페라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다. 구자범과 더불어 고선웅이 오페라 연출에 뛰어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맥베드>라는 작품 그 자체에 있다. 그에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안겨준 출세작이 바로 이 <맥베드>를 해학적인 액션활극으로 풀어낸 <칼로막베스>였다.


고선웅 “오페라는 늘 가까이하고 싶으면서도 선뜻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의 예술이었습니다. <맥베드>가 아니었다면 오페라를 하겠다고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칼로막베스>를 제작하며 원작 희곡을 정말로 오랜 시간 집중해서 분석을 마친 뒤라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오페라도 어쨌든 음악‘극’이니 제가 공헌할 수 있는 바가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오페라를 볼 때마다 노래도 잘하고 음악도 훌륭한데 연극적 측면에서 늘 아쉬웠어요. 손짓이라든가, 눈빛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교감을 조금만 다듬어도 배우들의 존재감이 더욱 돋보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맥베드>를 연출하며 생각에 머물던 이런 시도들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노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절대 원칙 아래에서요.”

고선웅 특유의 원작 비틀기는 오페라 무대에서도 볼 수 있을 듯싶다. 그는 일단 배경이 ‘중세 스코틀랜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동시대 관객들이 쉽게 감정을 이입하면서도 좀 더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를 주는 것이 고선웅의 연출 목표다. 조직의 헤게모니 속에 인간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내면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는 수백 년 전 거장이 통찰한 인간의 부질없는 고뇌와 욕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할 생각이다. 연극과 음악의 이상적인 조화는 베르디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그는 노래를 번호순으로 나열하는 형식에 그쳤던 ‘넘버 오페라’의 한계를 넘어서 최고의 극과 최고의 음악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열성적이었던 최초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구자범과 고선웅이 각각 음악과 연극이라는 기둥을 맡은 <맥베드>가 베르디의 이상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 어떤 새로운 고전을 창조해낼지 기대해 봄직하다.

오페라 <맥베드>

오페라 <맥베드>

일정 : 2016.11.24 (목) ~ 2016.11.27 (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평일 19시 30분, 주말 17시

티켓 : VIP석 12만원, R석 8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문의 : 02-399-1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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