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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전설적인 1965년 레코딩>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전설적인 1965년 레코딩>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그녀의 1965년 레코딩은, 1999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발매되었습니다.
지금은 ‘건반 위의 암사자’ 같은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최고의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노래를 지금 만나보세요.

지금으로부터 약 51년 전인 1965년, 제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22살의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전혀 놀랄 일도 아니었죠. 그녀는 이미 16살 때인 1957년, 3주 간격으로 진행된 '제네바 콩쿠르'와 '부조니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천재 피아니스트였으니까요. 더구나 '제네바 콩쿠르'에서는 극강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마저 2위로 밀어내고 차지한 우승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우승 후 며칠 만에 앨범을 발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때는 아니었지만, 음반사들이 그녀를 가만 놔둘 리 없었겠죠? 가장 먼저 그녀의 마음을 뺏은 EMI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쇼팽의 곡들로 레퍼토리를 꾸며 그녀를 녹음실로 불러냈습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막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죠.
쇼팽의 '녹턴'과 '스케르초' 그리고 '영웅 폴로네이즈'와 '소나타 3번' 등이 그녀의 앨범에 담길 레퍼토리였습니다. EMI의 명 프로듀서인 '수비 라지 그루브'가 이 레코딩의 책임자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어둡고 우울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커피를 주문해서 벌컥벌컥 마시더니, 또 한 잔을 곧바로 주문해서 마시고는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 망설임 없이 '영웅 폴로네이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의 입에서는 탄성이 튀어나왔답니다. "지저스...."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수비 라지 그루브'가 누굽니까? 전설적인 프로듀서 '월터 레그'의 오른팔이자 그의 후임으로 EMI의 수많은 명반을 생산해낸 EMI의 대표 프로듀서가 아닙니까? 아마도 수백 명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봤을 그가 그녀의 연주를 처음 듣고는 그만 넋을 잃고 만 것이지요. 그의 파트너였던 녹음 담당 엔지니어도 그녀의 연주에 할 말을 잃고 "와우~"라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하니 당시 그녀의 압도적인 연주와 카리스마가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중 모습
마르타 아르헤리치

녹음 마지막 날, 그녀는 역시 진한 커피를 연신 들이켠 뒤, 쇼팽 '소나타 3번'과 '스케르초' 등을 마저 녹음했다고 합니다. 특히 소나타 3번의 마지막 악장은 아무런 편집도 없이 한 번 만에 ‘원테이크로 녹음된 레코딩’이라고 합니다. 좀처럼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지만, 더 이상의 연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고 생각한 프로듀서의 판단이었겠죠?
이 녹음의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클래식 팬들과 피아노 팬들은 이 앨범이 발매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끝내 발매되지 못했습니다. ‘EMI’가 맺은 계약이, 그녀가 먼저 계약을 맺었던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사와 뭔가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르헤리치의 EMI '데뷔 앨범'은 그녀가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을 유지한 수십 년 동안, 언제 깨어날지 모를 긴 잠에 빠지게 됩니다.
어쩌면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그녀의 1965년 레코딩은, 1999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발매됩니다. 그녀가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계약을 끝내고, ‘EMI 클래식’과 새롭게 음반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죠. 녹음된 지 무려 3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앨범들이 발매된 뒤라서, <데뷔 앨범>이라는 타이틀은 쓰지 못하고, <전설적인 1965년 레코딩>이라는 타이틀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죠.
지금 들어봐도 그녀의 연주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활기 넘치는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 쇼팽의 작품을 여리고 가냘프기만 하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죠. 아마도 가장 남성적인 쇼팽을 들여준 연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장 남성적인 쇼팽을 들려준 연주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그리고 드디어 올해, 이 앨범은 무려 반세기 만에 최초로 LP로도 발매가 되었습니다. LP 시대에 태어나야 했던 앨범이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먼저 CD로 선을 보인 뒤, 무려 51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LP 형태로 발매된, 긴 사연을 가진 앨범입니다.
지금은 ‘피아노의 여제’, ‘건반 위의 암사자’, ‘피아노의 활화산’ 같은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최고의 거장이 되었지만, 1965년 당시 24살의 젊은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열정’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을 이 앨범을 음악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되겠죠? 그것이 CD건 LP건 혹은 디지털 음원이건 말이지요.

Chopin: The Legendary 1965 Recording

Chopin: The Legendary 1965 Recording

1번째 : 쇼팽: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 B단조 Op.58 - 1. Allegro Maestoso

2번째 : 쇼팽: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 B단조 Op.58 - 2. Scerzo: Molto Vivace

3번째 : 쇼팽: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 B단조 Op.58 - 3. Largo

4번째 : 쇼팽: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 B단조 Op.58 - 4. Finale: Presto Non Tanto

5번째 : 쇼팽: 마주르카(Mazurka) 36번 A단조 Op.59 1번

6번째 : 쇼팽: 마주르카(Mazurka) 37번 Ab장조 Op.59 2번

7번째 : 쇼팽: 마주르카(Mazurka) 38번 F#단조 Op.59 3번

8번째 : 쇼팽: 녹턴(Nocturne) 4번 F장조 Op.15 1번

9번째 : 쇼팽: 스케르초(Scherzo) 3번 C#단조 Op.39

10번째 : 쇼팽: 폴로네즈(Polonaise) 6번 Ab장조 O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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