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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그의 펜에서 다시 태어난 햄릿(함익)

함익 작가 인터뷰

김은성, 그의 펜에서 다시 태어난 햄릿(함익)

함익 작가 인터뷰

writer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photo 이도영(STUDIO D) / stylist 이서연

창작극 <함익>은 셰익스피어 <햄릿>의 심리적 고독에 주목하여 ‘햄릿’의 섬세한 심리와 그에 내재된 여성성을 중심으로 재창작되었다.
김은성 작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함익은 과연 줄리엣이 될 수 있을까?

정경영

김은성

김은성

햄릿이란 캐릭터는 인간이 가지는 고민은 모두 다 짊어지고 있어요. 비극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어요.
원작을 읽으면서 햄릿이 겉으로는 남성적이지만 그 심리가 매우 여성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복수극인 원작이 심리 드라마로 바뀌게 된 거예요.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그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50여 편이나 되는 작품이 다양한 장르로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햄릿>이다. 최근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원로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햄릿>을 비롯해 현재까지 공연됐거나 공연 계획이 확정된 것만 16편이나 된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어머니와 삼촌의 결혼, 연인 아버지의 살해 등 가혹한 운명 속에서 고뇌하는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37개 희곡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래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그 비중이 유난히 크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공연으로 제작된 400개의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25%인 101편이 <햄릿>이었을 정도다. 올해도 다른 나라에서 <햄릿>이 공연되는 것과 비교해 압도적이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햄릿의 고뇌가 우리가 시대마다 처한 힘겨운 환경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극단도 올해 <햄릿> 공연 대열에 섰다. 9월 30일~10월 16일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서울시극단 단장인 김광보 연출로 무대에 오르는 <함익>은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햄릿 이야기가 펼쳐진다. 웅장한 복수극인 원작의 행간에 숨어 있는 햄릿의 심리와 고독, 특히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해 현재 서울에서 살아가는 재벌 2세 여교수 함익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만만치 않은 재창작 작업에 나선 주인공은 <달나라 연속극>(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 <로풍찬 유랑극단>(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뻘>(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순우삼촌>(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등 고전 희곡의 한국적 재해석으로 호평받고 있는 극작가 김은성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졸업하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동라사>로 데뷔한 그는 소외된 사람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희곡들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변엄마>와 <목란언니>는 각각 2010년 대산문화재단 대산창작기금 희곡 부문과 2012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및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에 도전한 그에게 작품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김은성

“올해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인지 몰랐어요. 원래 내년에 서울시극단과 작업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게 올해로 앞당겨진 거예요. 셰익스피어 작품은 기본적으로 규모가 있는 공공극단이나 프로덕션에서 만드는 게 좋다고 봐요. 그래서 서울시극단과의 작업으로 오랫동안 번안하고 싶었던 <햄릿>을 선택했던 상태였습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작가 벤 존슨이 남긴 ‘그는 한 시대를 위한 작가가 아니라 온 시대를 위한 작가’라는 헌사는 400년간 유효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깊은 통찰은 공간과 시간을 넘어 어떻게 변주되던 언제나 현재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시적이고 긴 대사는 현대인에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번역을 할 경우엔 더더욱 대사의 묘미를 살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은성의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플롯은 뛰어나지만 현재 관점으로는 다소 참신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게다가 대사들이 너무 장황하잖아요. 몇몇 작품들을 원어로 읽어보니 운율이 동반됐을 때 그 장황했던 대사들이 살아 움직이더라구요. 번역한 대로 하는 것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가운데 김은성이 <햄릿>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인공 햄릿 캐릭터가 가진 모호성에 끌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 극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어떤 고정된 패턴을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과 복합성을 가지지만 <햄릿>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상징되는 <햄릿>의 무거움을 깨고 싶었다.

“햄릿이란 캐릭터는 인간이 가지는 고민은 모두 다 짊어지고 있어요. 비극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어요. <맥베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보면 권력, 질투, 사랑 등 작품을 관통하는 욕망의 키워드가 명확한데 비해 <햄릿>은 정확하지 않아요. 그래서 <햄릿>이 가장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 아닐까요?”
그가 쓴 <함익>은 <햄릿>에서 비롯됐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은 창작극이다. 재벌 2세 여교수인 주인공 함익은 겉으로는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어머니가 젊은 계모와 아버지에게 살해되었다고 믿는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그녀의 망상 속에 등장하는 분신은 현실에서 용기 있게 실행하지 못하는 자신과 반대되는 존재다. 진솔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수업을 들으러온 배우지망생 연우를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왕실에서 벌어지는 <햄릿>을 현대로 가져오면 재벌이 되지만 너무 뻔해 보이지 않나요? 실제로 2000년에 에단 호크가 나온 영화 <햄릿>이 미국 재벌가를 배경으로 했는데, 재미 없더라구요. 현대 사회에서 <햄릿>의 플롯은 유효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원작에서 복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고독을 느끼던 햄릿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출발하다 보니 남자보다는 여자인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원작을 읽으면서 햄릿이 겉으로는 남성적이지만 그 심리가 매우 여성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복수극인 원작이 심리 드라마로 바뀌게 된 거예요. 사실 제 작품에선 복수가 중요하지 않아요.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마음을 병들게 한 게 중요한 거죠. 저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극작가들에게 직접 소재를 찾고 캐릭터들을 만든 창작극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몇몇 극작가의 경우 각색 또는 번안 작업에서 유난히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김은성은 ‘각색의 귀재’로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그가 손댄 각색 또는 번안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달나라 연속극>이나 <로풍찬 유랑극단> 같은 작품은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한편 원작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창작과 각색을 굳이 비교하자면 창작이 더 힘들죠. 원작이 있어서 기댈 수 있는 각색과 달리 창작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니까요. 특히 시작 부분이 너무 힘들어요. 각색과 관련해 정말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한국 이야기로 번안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런 마음이 우러나와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은 성공을 거두는 데 비해 주문을 받아서 의무감을 가지고 쓰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원작을 왜 바꾸려고 하는지 제가 동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리가 없죠.”
현재 각색을 염두에 둔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앞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각색에 다시 도전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도 흥미롭다.
“셰익스피어 각색은 쉽게 생각하면 큰코다칠 것 같아요. 이번에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은 못 건드릴 것 같아요. 다만 맘대로 한번 써볼 기회가 있다면 <오셀로>를 국내 프로농구 용병 이야기로 바꿔 써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무대에 농구 골대를 놓고 건장한 남성들이 나오는 연극으로 만들고 싶은데, 자칫 인종차별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어서 당분간은 구상만 할 거예요. 대신 조만간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각색을 할 예정입니다. 뮤지컬 초연 때는 일본 배경이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배경으로 각색할 거예요.”
그는 이번에 연출가 김광보와의 작업에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그가 윤색을 맡았던 일본 희곡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에 이어 김광보와 두 번째 호흡이지만 편안함을 느낀다. 그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연출가 부새롬, 전인철과 주로 작업해 왔던 그로서는 또 다른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 셈이다.

창작극 `함익`

창작극 `함익`

기간 : 2016.09.30 (금) ~ 2016.10.16 (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월,수,목,금 19시30분 / 토 14시, 18시30분 / 일 14시 / 화 공연없음

티켓 :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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