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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과 파리 오페라하우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기는’ 문화와 여행 이야기

<오페라의 유령>과 파리 오페라하우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기는’ 문화와 여행 이야기

writer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뮤지컬평론가)

학창시절, 뮤지컬과 여행에 푹 빠져 살았다. 경비를 마련하려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고, 방학이면 짐을 꾸려 공항으로 나섰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6개월의 유럽배낭여행을 일곱 차례 경험했다. 새로운 뮤지컬 작품을 만나는 재미는 지금 떠올릴 때도 손에 땀을 쥐게 될 만큼 흥미진진했지만,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 여행과 문화의 상관관계였다.
모쪼록 함께 여행을 하며 공연을 이야기하는 느낌을 나눌 수 있길 꿈꿔본다.

해질녁의 프랑스 수도 파리의 모습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안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안

볼 것 많고 즐길 것도 많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
노트르담 성당과 씨테 섬을 둘러싼 센 강의 야경, 몽마르트르 언덕과 무명의 화가들, 베르사이유 궁전과 아름다운 정원들, 개선문의 위용과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등 그야말로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도시다. 하지만 뮤지컬 마니아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가 한 곳 더 있다. 바로 파리의 오페라하우스인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배경이 된 장소다.
수수께끼 하나 풀어보자. 입장권을 사서 즐기는 문화 상품 중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한 작품은 무엇일까? 블록버스터 흥행 영화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정답은 놀랍게도 뮤지컬 작품이다.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의 허 머제스티스 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자그마치 6조원이 넘는 티켓을 팔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도 훌쩍 넘어서는, 한때 자동차 백만 대를 수출하는 효과와 비교되며 문화산업의 미래성을 상징했던 영화 <타이타닉>이 벌어들인 입장권 수익보다도 거의 3배나 더 큰 매출 규모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내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내부

더욱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이 매출액 규모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뉴욕과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수지타산이 높은 문화 콘텐츠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흥행도 여전한데, 각 나라말로 번역된 여러 언어의 번안 공연들은 물론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덕션의 인기도 여전히 천정부지 각광을 받고 있다. 1990년대 말 필자가 한 언론지상에서 언급해 한국어 공연의 홍보 문구로도 쓰였던 ‘세기를 뛰어넘어 종연을 예측할 수 없는’ 유령의 신기록 행진은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16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건만 아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재진행형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뮤지컬의 원작은 소설이었다. 1908년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였던 가스통 를루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지하의 미로 같은 어둠 속에서 사는 기괴한 인물의 이야기를 구상해낸 것이 단초가 됐다. 작가가 되기 전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신뢰성이 높은 기사보다는 ‘음모론’이나 ‘추측 기사’ 같은 분석 기사를 즐겨 기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능한 기자로서는 결코 좋은 덕목이 아니겠지만, 추리소설 작가로서는 더없이 매력적인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오페라하우스 주변의 실제 벌어졌던 여러 사건이나 죽음을 교묘히 연결해 그는 가상의 인물인 ‘유령’을 창조해냈다. 뮤지컬을 보고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찾아가면 남다른 감흥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그럴 법한’ 원작자의 상상력이 큰 몫을 한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2004)>

영화 <오페라의 유령(2004)>

파리에 오페라 극장이 들어선 것은 나폴레옹 3세가 다스렸던 제2 제정시대였다. 무명이었던 샤를 가르니에가 만든 설계 디자인이 무려 171:1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새로운 오페라하우스의 설계로 선정되는 파격을 이뤄내 당시 세간에 큰 화제가 됐다. 35세의 젊은 건축가였던 그는 그 시절 유행했던 고전주의적 양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탄생시키려 노력했다. 덕분에 오페라 가르니에는 꽤나 화려하면서도 새로운 양식미를 지닌, 파리의 다른 건물과는 차이가 나는 ‘별난’ 외관의 건축물로서 명성을 지니게 됐다. 훗날 건물의 양식을 묻는 황후에게 ‘나폴레옹 3세 양식’이라는 당돌한 대답을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그래서 오페라 가르니에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 됐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고, 보이는 만큼 확인하고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먼저 화려한 샹들리에가 오르내리는 풍경이 그렇다. 뮤지컬 애호가라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샹들리에를 볼 때 남다른 감흥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뮤지컬과 실제의 작은 차이점이 있다면 요즘 오페라 가르니에의 무대 천장에는 샤갈의 그림인 ‘꿈의 꽃다발’이 있다는 정도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연대를 따져보면 나름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2막 첫 장면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배경 계단도 오페라 가르니에의 화려한 계단을 차용한 이미지의 무대 세트다. 또 지하의 미궁처럼 이어지는 은밀한 공간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혁명의 바리케이드를 탈출할 때 이용했던 바로 그 파리의 복잡하고 거대한 지하 하수도 공간들이다.
특히, 뮤지컬 속에서 유령이 자주 출몰하는 5번 박스석 출입구는 모르는 이들은 그냥 지나치겠지만, 뮤지컬 마니아라면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냥 지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조명이 밝지 않아 낮에도 어두침침한 입구 쪽 모습은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유령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에 오싹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

소설 <오페라의 유령>

한편 아쉬운 부분도 있다. 뮤지컬 무대의 프로시니엄 아치를 장식하는 천사와 악마의 조형물은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따로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찾자면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데코레이션 양식들에서 대신 위로를 얻을 수도 있는데, 이는 뮤지컬 무대의 금색 조각상들이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짐짓 꾸며져 만들어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라는 이미지가 바로 유령과 크리스틴의 복선과 같은 상징물인 셈이다. 뮤지컬에선 등장하지 않는 오페라 가르니에만의 볼거리도 있다. 대연회장으로 쓰였던 ‘그랑 푸아예’다. 공연이 없는 낮 시간엔 따로 입장료를 내고 건물 자체만을 관람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곳에 들어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화려한 장식과 색채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무대에 비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혹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풍경만은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파리를 방문하기 전에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뮤지컬 영화로라도 미리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작은 정성이 여행의 감동을 배가시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