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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스스로 진화한다

9번째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 페스티벌은 스스로 진화한다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해비치 페스티벌은 우리 공연예술계의 변화와 경향성을 반영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 구성원들의 관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해비치 페스티벌 / 공연 장면

10년 전 “해비치 호텔 & 리조트”(이하 해비치라 한다)를 처음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 그 해에 현대자동차그룹은 제주에 마지막으로 남았다는 목 좋은 곳에 대규모의 최고급 호텔을 열었다. 천혜의 풍광과 이를 최대한 활용한 초 현대 시설에 감탄했다. 기록에 의하면(해비치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해비치는 2007년 5월에 그 반쪽인 호텔을 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리조트는 아직 개관 전이었다. 내가 해비치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7년 6월에 리조트를 이용해서 열린 행사 때문이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혁신경진대회 및 예술행정 세미나”라는 긴 이름의 행사였다. 나는 예술행정 세미나 프로그램 중에 “문예회관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선희 당시 국립극장 극장장과 김주호 당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도 발제자 명단에 들어 있다. 이 행사는 다음 해부터 열린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이하 해비치 페스티벌이라 하겠다)의 모태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2008년 6월에 제1회 해비치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래서 올해가 9회라는 것이다.
사실상 해비치 페스티벌의 첫해로 볼 수 있는 2007년 무렵은 좀 특별한 조건들이 겹쳐진 때다. 그 때문에 프로그램이 가능했고 지금과 같은 중요한 행사로 굳게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첫째는 마땅한 재원이 있었다. 2004년 복권사업이 통합되면서 조성한 복권기금으로 문화예술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취지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왕성하게 발굴하던 시기다. 복권기금은 기존의 문예진흥기금과는 용도 자체가 달랐다. 예술지원의 주를 이루던 창작지원보다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복지 사업으로 한정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문화예술 지원에서는 향유와 유통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 주요한 연결고리는 전국에 산재한 문예회관이었다.
둘째는 장소다. 연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한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열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해비치는 해비치 페스티벌의 시작부터 함께 해왔다. 셋째는 그 장소의 소유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이다. 2007년은 현대자동차그룹이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해다. 해비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고 현대정몽구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해비치문화재단과도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추측한다). 지금까지도 현대자동차그룹은 해비치 페스티벌의 변함없는 후원자다.

해비치 페스티벌 / 아트마켓

넷째는 아트마켓이라는 트렌드다. 2005년 가을 국립극장에서 서울아트마켓이 처음 열렸다. 이듬해 초 이 마켓을 전담할 조직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공연시장에서 유통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갑자기 부각되던 시기였다. 다섯째는 관계자들의 니즈다. 해비치 페스티벌은 불과 몇 년 만에 전국의 문예회관 관계자들이 몰리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가고 싶은 행사’가 된 것이다. 쇼케이스와 아트마켓에 참여하는 예술가와 단체도 덩달아 몰렸다. 눈덩이 효과다. 내 기억이 맞다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해비치 페스티벌이 가장 중시한 가치는 네트워크였다. 일단 한자리에 모이는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자는 것이 페스티벌의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어쩌다 보니 그동안 한두 번(정확히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모르겠다)을 빼고 매년 해비치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발제자나 사회자로 참가하기도 하고 초청인사로 초대받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주최 측인 한국문예회관연합회의 회원사 구성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이 그렇듯 10년이면 많은 것이 바뀌는 시간이다. 그렇다. 그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주최자인 전국문화예술연합회가 한국문화예술연합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사단법인이었던 법인격은 특별법인으로 전환했다. 참가자의 수와 종류도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큰 틀에서 행사 포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 만큼 무르익고 의젓하다. 가을에 열리는 서울아트마켓과 함께 공연예술계의 중요한 만남의 장으로 자리가 잡혔다. 서울아트마켓이 해외로 열린 창이라면 해비치 페스티벌은 국내 전문가들 간의 네트워크의 장으로 역할 구분도 분명하다.
해비치 페스티벌은 우리 공연예술계의 변화와 경향성을 반영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 구성원들의 관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그중에 두드러진 것은 세대교체다. 더 젊은 세대와 새로운 주체들이 프로그램을 채우고 활력을 충전한다. 시작을 기억할 필요는 있지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페스티벌은 스스로 진화한다.(그러기를 빈다)

해비치 페스티벌 / 야외 공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