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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의 디자인: ‘태도’가 그래픽 디자인의 ‘양태’가 될 때

화이트큐브의 디자인: ‘태도’가 그래픽 디자인의 ‘양태’가 될 때

writer 임근준 AKA 이정우(미술·디자인평론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화이트큐브라는 미술관의 전시실에 들어가 작업으로 제시될 때,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실 재계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디자인 결과물은, 갤러리 공간에 전시되기 위해 제작된 미술품과 달라서, 화이트큐브로 자리를 옮겨놓으면 기호적 의미 변환을 거쳐 박제된 뭔가로 전락하는 수가 많다.
즉, 본래의 문화적·상업적·역사적 의미 맥락을 상실한 민속지적·인류학적 자료가 되고 마는 것.
그럼, 디자이너는 화이트큐브에서 어떤 전시를 시도해야 좋을까?

현대미술가에겐 전시가 본업이지만, 현대디자이너에겐 전시가 부업에 불과하다.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못하는 것이 문제고, 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 사회의 암묵적 시선에 실린 긴장감은 크게 떨어지기 마련이다(전시는 이름값을 올리는 홍보 기회가 된다고 여기는 안이한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미술가들과 달리 ‘제도 비평’이나 ‘장소 특정성’이라는 의제를 논하고 실험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주어진 공간을 해석하는 능력 면에서 크게 뒤처진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디자이너니까 공간 해석력이 더 뛰어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다가, 미술계의 구성원들은, 미술가의 전시를 각자의 인생을 건 시각적 게임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주요 전시를 열심히 독해하고 비평하지 않을 수 없지만, 디자인계의 구성원들은, 전시를 네임드로핑의 공간 정도로 이해하기에, 건성으로 둘러보고, 또 상호 비평은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개막식 풍경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현대미술의 주요 전시 개막에선, 겉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해도, 행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요 디자인 전시의 개막에선, 모종의 공동체 의식이 두드러진다. 전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발견하기 어렵다.

  • 디자이너 듀오 M/M <번역(TRANSLATION)>

    ① 디자이너 듀오 M/M <번역(TRANSLATION)>

    2005년 팔레드도쿄는 디자이너 듀오 M/M 파리를 초청해 유럽의 대표적 당대미술 소장선인 다키스조아누콜렉션을 제 마음대로 큐레이팅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작가와 협업한 바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의 전시 연출은, 일종의 편집 디자인으로 기능하며, 새로운 고찰의 인터페이스를 제시했다. 이 전시의 제목은 <번역(TRANSLATION)>이었다. 디자인/큐레이팅 공통 분모를, ‘번역’으로 봤던 것.

  • 하지만, 이러한 나태한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온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전시 기획자들이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나 필요에 초점을 맞춘 채 문제 해결 과정에 천착하는 구습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내 실험적인 자율적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또 미술 기관이나 현대미술가 등 특수 클라이언트와 호흡을 맞춰, 새로운 협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대표적인 예는, 팔레드도쿄라는 신생 기획 전시관을 설립한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와 협업한 디자이너 듀오 M/M 파리(M/M Paris)였다. 그들은 ‘전시와 작가를 위한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주 업체’로서 대우받지 않았고,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협업자로 존중받았으며, 주요 단계마다 그에 상승하는 당대적 결과물을 실현해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아예 주요 현대미술전시에 작가로 초대받기 시작했고, 다시 이는 그들이 시도할 수 있는 자율적 실험의 폭을 넓혔다.

    거의 같은 시기, 네덜란드의 얀반에이크아카데미와 베르크플라츠티포흐라피, 그리고 미 예일대학교의 그래픽 디자인과에선 이러한 경향이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통해 확장-심화했고, 또 이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그래픽 디자인의 매체가 갖는 물성에 특정성을 부여하는 자세로 자율적 인쇄 실험을 지속해온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카렐 마르텐스(Karel Martens, 1939~)가 컬트적 지위에 올라 널리 존경을 받게 되기도 했다.

  •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

    ②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

    1969년 하랄트 제만이 큐레이팅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의 전시 전경. 1968년의 학생 혁명에 화답하는 뜻이 있었다.

  • 그래픽 디자인계의 의제와 담론을 이끄는 인물이 되고자 애써온 디자인 비평가/큐레이터 릭 포이너(Rick Poynor, 1957~)는, 제 저서 <더 이상 법칙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래픽 디자인(No More Rules: Graphic Design and Postmodernism)>(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3, 서울: 홍디자인, 2007/2010년)에서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디자이너는 다음의 세 가지 절박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 별다른 의문 없이 이뤄지는 친숙한 상업적 활용 외에, 그래픽 디자인은 어떤 일관된 용도(Use)에 적용돼야 하는가? 규칙을 깨는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디자이너들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어디에다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이제껏 이 책에서 다뤘던 탈현대적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으로서, 양식(Sstyle)의 차원에서 따져 봤을 때, 과연 어떠한 형식/형태(Form)가 지금 시점에서 저항적인 그래픽 디자인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2003년에 릭 포이너가 던진 이 질문은 꽤 시의적절했지만, 약간의 오류가 있었다. 저항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형식/형태’를 물으면서, 그걸 ‘양식’의 차원으로 제한했다는 점 말이다. 조형 예술 분야에서 저항적 실천으로서의 ‘형식/형태’를 물으면, 전문가들은 십중팔구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1969년에 기획했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를 즉각 떠올리게 된다. 현대미술에서 저항적인 태도나 사고방식이 어떻게 형식으로 물화될 수 있는지, 그 방식은 어떻게 진화-전개되고 있는지를 물었던 제만의 사례를 염두에 두자면,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실천도, 양식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창작 메소드와 전시 방법과 기존의 형식주의를 재해석하는 메타 시점의 문제 등을 포괄하는 질문으로써 재고찰돼야 마땅했다.

  • <커뮤니케이트: 60년대 이래의 영국 독립 그래픽 디자인(Communicate: Independent British Graphic Design since the Sixties)>

    ③ <커뮤니케이트: 60년대 이래의 영국 독립 그래픽 디자인(Communicate: Independent British Graphic Design since the Sixties)>전의 동명 도록

    2004년 / London: Laurence King

  • 릭 포이너는 제 질문에 자답하는 형식으로, 이듬해인 2004년에 기획전 <커뮤니케이트: 60년대 이래의 영국 독립 그래픽 디자인(Communicate: Independent British Graphic Design since the Sixties)>을 열어 나름 역사적 총괄을 시도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빌락(Peter Bi ľ ak, 1973~)은 2006년 브르노비엔날레에서 기획전 <화이트큐브 의 그래픽 디자인(Graphic Design in the White Cube)>을 큐레이팅해, 바로 지금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의 양태로 활동하며 새로운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각각의 방법론을 대차대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20)00년대 초중반, 지구촌 곳곳에서 소규모 스튜디오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생존 방식으로 대두한 배경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디자인이라는 의사-전문 직종이 어떤 위기적 상황에 봉착했다는 공통된 문제의식 때문에, 둘째, 작업 환경의 디지털화에 따라 예전과 달리 소형 공방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일정 수준과 양의 결과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셋째, 소규모 스튜디오로 활동하는 편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제 방법론의 특성을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구체화-심화-홍보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데, 소규모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들 대부분은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책을 중심으로 한 인쇄물과 웹사이트 등의 영역으로 활동을 제한했고, 따라서 작업에 전유되는 요소에도 비교적 명확한 제한이 가해졌다. 인쇄물을 포스트미디엄(Post-medium/media)으로서 재창안하거나, 미적으로 유효한 양태로 미디어-믹스(혹은 매시업[Mashup])해낼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넓지 않다 보니, 자연 이 새로운 조류에 제 이름을 걸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수는 많지 않았고, 또 그러한 실험으로 창출해낼 수 있는 성취의 종류도 그리 다양하지는 않았다.

  • <그래픽 디자인: 지금 제작 중(Graphic Design—Now in Production)>

    ④ <그래픽 디자인: 지금 제작 중(Graphic Design—Now in Production)>

    <그래픽 디자인: 지금 제작 중(Graphic Design—Now in Production)>의 전시 전경.

  • 그러한 점이 명확히 드러난 자리는, 2012년 워커아트센터(의 큐레이터 앤드류 블로벨트)와 쿠퍼휴잇디자인미술관(의 큐레이터 앨렌 럽턴)의 공동 기획으로 개막했던 전시, <그래픽 디자인: 지금 제작 중(Graphic Design—Now in Production)>이었다. 지난 (20)00년대에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거둔 새로운 성취를 한자리에 모은 이 기획전은, 조사-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해내고 그 결과를 포스트-프로덕션 과정에서 유의미한 형태로 가공-제시해내는 자가 프로듀싱/자가 큐레이팅/포스트-프로덕션 능력이 소규모 스튜디오의 미적 성패를 갈랐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 <101개 지표>

    ⑤ <101개 지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의 매트릭스 노릇을 하는 데이터베이스 카탈로그, <101개 지표>. 걸작선이 아니라 지표 기능을 하는 대표작을 골라 색인화한 것이라는데, 각 인덱스마다 다음의 정보를 제공한다 : 디자이너, 그 디자이너가 태어난 해, 그가 디자인을 공부한 학교, 가르친 학교, 근무한 곳, 작업 당시 디자이너의 근거지, 작품의 매체, 작품이 발표된 해, 연관 분야, 두드러진 장치/기법, 사업 기획자와 내용 편집자, 관련 작가 또는 저자, 작품을 제작/구현한 곳 또는 사람, 협력 기관, 그 밖의 협력자.

  • 한데, 2016년 그래픽 디자이너 김형진과 최성민이 큐레이팅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총괄했다. 대표적 디자인 스튜디오를 소환해 그들의 대표작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가 지난 10년의 궤적에 대한 메타-고찰이 되도록 꾸몄다. 기획자들은 먼저 지난 10년을 역사로서 되돌아볼 수 있도록, 비평적 스킨-DB로 기능하는 데이터베이스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제목은 <101개 지표>(기획 초기 단계에선 ‘지표 100선’으로 호명됐었다). 그리고, 옵티컬레이스, 북소사이어티, 길종상가, EH(김경태), 잠재문학실험실 등 11개 팀을 초청해 작업을 의뢰했다(최종 참가 팀은 열둘). 기획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화이트큐브에 ‘해석된 풍경’을 연출해버린 셈. 이 해석의 풍경은, 2015년 그래픽 디자이너 김두섭의 감독으로 개막했던 <타이포 잔치 2015: 제4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와 대조를 이뤘다는 점에서 퍽 흥미로웠다. <타이포 잔치 2015>는, 국내의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소위 ‘본진’에 속하는 이들이 갑자기 조사 연구 기반의 설치 미술이나 관계적 미술 비스무레한 걸 시도하고, 또 그 결과에 스스로 흡족해하는 모습을 노출했다는 점에서 다소 코믹한 풍경이 됐는데,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에 참가한 주요 디자이너들은, 그를 어느 정도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저희 작업에 어설프게 수행성을 부여하는 일을 삼간 채, 소규모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메타-고찰하며 각자의 디자인 전문직능을 고수했다.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은, 한 시대를 그 주역이 스스로 메타-총정리하고 대단원의 막을 확 내려버리는 기묘한 자리다. ‘소규모 스튜디오의 시대가 누려온 판단 유예의 시공은 시효를 다했다’는 것이, 이 전시가 던지는 명징한 메시지다. 이제, 다음 세대는 어떤 길을 개척해야 옳을까? 앞으론 어떤 성취가 가능할까?

  •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⑥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의 1층 전시장 전경. 아니나 다를까, ‘왜 디자이너들이 아트를 흉내 내느냐’는 관습적 힐난이 들려왔다.

  • <(아웃 오브) 포커스>

    ⑦ <(아웃 오브) 포커스>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의 2층에 전시된, 전은경·원승락의 2016년 작, <(아웃 오브) 포커스>. 언론인 전은경과 그래픽 디자이너 원승락은, 2005년 이래 월간 <디자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취재하며 촬영한 사진들을 간단한 원칙에 따라 재구성했다. 인물을 유추하기 어렵도록 얼굴 등 주요 부분을 합성수지판으로 가려버림으로써, 미장센으로 드러나는 기호/취향과 자기 연출의 태도 등을 고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