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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만난 카프카 그리고 나

프라하에서 만난 카프카
그리고 나

writer 요조(가수이자 <책방무사>의 주인장)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한 권의 책. 그 책을 통해 맞이하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아침.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나보자.

거기서 온밤을 머무르며, 그는 선잠에 잠겼다가 배가 고파 자꾸자꾸 놀라 깨면서, 또 그러면서도 근심과 불문명한 희망에 잠기기도 하며 보냈다.
- 변신, 34p

  • 프라하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 년 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라하로 떠났던 용감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친구는 프라하에서 씩씩하게 가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친구가 제 공연을 보고 나서는 “내가 노래할 것도 아닌데 무대에 등장하는 널 보면서 왜 내가 그렇게 떨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루돌피눔 앞에서 마이크를 차고 사람들 앞에 선 친구를 보는데 그때 친구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싶었습니다. 괜히 대견하고, 보는 제가 긴장이 되고, 행여나 실수는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아마도 프라하를 저 혼자 돌아다녔다면 맥주의 진가에 대해서만 알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훌륭한 가이드 덕에 저는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츨라프 하벨이라는 위대한 대통령과 카를 4세라는 훌륭한 왕,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이라는 프라하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 뜨거운 평화의 낙서가 가득했던 존 레논 벽, 그리고 밀란 쿤데라와 프란츠 카프카. 프라하에 머문지 일주일이 지난 후 친구는 여기까지 와서 유럽의 다른 나라를 안 둘러 볼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저를 억지로 바르셀로나로 떠밀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떠밀리며 그녀의 서재에서 급하게 카프카의 <변신>을 꺼내들고 왔습니다.
    친구가 없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그저 제 식대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주변을 그저 잠시 어슬렁거리다가 되는 대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와 잠이 올 때까지 책을 보다가 ‘거기서 온밤을 머무르며 선잠에 잠겼다가 배가 고파 자꾸자꾸 놀라 깨면서, 또 그러면서도 근심과 불분명한 희망에 잠기는’ 생활.

    책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꿈결 / 1만 8백원

  •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억만 있는 <변신>을 다시 읽으며 저는 하루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에게 아주 많이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프라하에서 카프카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 탓도 있을 것이고, 혼자 타지에서 읽는 슬픈 이야기라서 더 그랬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좀처럼 잠을 이루기가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침대 하나가 전부인 좁은 방안에서 괴롭게 뒤척이던 중 저는 감사하게도 또 하나의 이야기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소설 중 하나인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되어있는 단편 ‘사랑하는 잠자’였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에 바치는 따뜻한 오마주.
    저는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전자책을 뒤져보았습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은 전자책으로 한 권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괴롭고 답답한 새벽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의 친구에게 근처 서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사서 ‘사랑하는 잠자’라는 소설만 한 장 한 장 핸드폰으로 찍어서 메일로 빨리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고약한 부탁을 하는 친구는 처음이라는 구박을 흠씬 받았습니다만, 결국 저는 ‘사랑하는 잠자’를 읽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벌레로 변신해 가족의 외면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던 그레고르 잠자는 무라카미 하루키 덕에 다시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하여 곱추 열쇠수리공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저도 비로소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무것으로도 변신하지 않은 ‘신수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느즈막히 일어난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고마운 친구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하루로 보내야겠습니다.

    책 :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동네 / 1만 3천 8백원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꿈결 / 1만 8백원

  • 여자가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동네 / 1만 3천 8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