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는 소리에 마음을 담는 일입니다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 상주 음악가 임헌정
writer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 photo 이도영(STUDIO D) / coperation 파크랜드
지휘자 임헌정이 세종 체임버 시리즈 상주음악가로 첫발을 내딛는다.
모차르트 탄생 260주년을 맞아 모차르트 작품만 연주한다. 제목도
임헌정
지휘자 임헌정이 세종 체임버 시리즈 상주음악가로 첫발을 내딛
는다.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는 임헌정이 세종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4회 공연으로 구성됐다. 모차르트 탄생 260주년을 맞아 모차르트 작품만 연주한다. 제목도
다. 공연마다 디베르티멘토와 악기별 협주곡으로 모차르트 특유의 우아한 선율을 선보인다. 4월 30일에는 조성현이 플루트 협주곡 등을, 6월 25일에는 김태형이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6번을 협연한다. 10월 30일에는 김봄소리가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5번을, 11월 19일에는 선우예권이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27번을 함께 연주한다. 세종문화회관 박승현 본부장은 작년 세종 체임버 시리즈를 대표적인 실내악 기획공연으로 꾸밀 생각을 했다”며 “작년 상주음악가 양성원을 통해 첼로를 특화시킨 이후 실내악의 틀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했다. 그 결과 임헌정을 상주음악가로 선정했다. 세종체임버홀에서 듣는 협주곡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1989년부터 25년간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는 클래식의 대중화보다는 청중의 프로화를 주장한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 초유의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로 말러 마니아들을 공연장으로 이끈 것도 그의 신념이 바탕이 되었다. 2014년 코리안 심포니 상임지휘자 부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를 진행 중인 그가 이제 세종체임버홀에서 실내악의 외연을 확장하려 한다. 임헌정을 만나 세종 체임버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됐습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결국은 부분부분 실내악의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필하모닉도 산하 실내악 단체들이 많죠. 무엇보다 모차르트를 연주한다고 하기에 제의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모차르트 작품만 연주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모차르트관은 무엇인가요?
모차르트는 근본적으로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푸치니나 베르디와 마찬가지죠. 베토벤은피아노곡을들어도교향곡같습니다. 슈베르트, 슈만, 말러, 브람스는 가곡 작곡가입니다. 쇼팽은 피아노에 익숙한 작곡가죠.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에 서툰 면도 있습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이디엄과 캐릭터가오페라의 그것입니다. 모차르트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의 오페라와 그가 습득한 전 시대 음악부터 해석에 필요한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원래는 오페라 서곡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무대가 작고 편성 때문에 궤도 수정을 해야 했죠. 디베르티멘토는 폭넓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되도록 다른 날짜의 곡들도 통일성을 기해서 연주하기로 했습니다. 호른이 나오는 17번 K334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플루트(&하프) 협주곡 C장조,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21번 C장조, 26번 D장조, 27번 B플랫장조를 연주합니다. 협주곡을 해석할 때는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실 생각입니까?
모차르트 작품의 조성에 유념해서 해석할 생각입니다. 조성이 오페라에 나오는 캐릭터와 매치되어 있죠.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이었습니다. 작년에 지휘한 오페라 <마술피리>는 프리메이슨의 정신에 입각해서 쓴 곡입니다. 재작년 유럽 투어에서 슈테판 성당 뒤 집회 장소를 방문했었어요.
작년에는 빈에서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프리메이슨 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했죠. <마술피리>의 E플랫장조는 숭고하고 거룩하고 교훈적입니다.
C단조는 불안하고 초조한 뜻이 있죠. <돈 조반니>나 ‘밤의 여왕의 아리아’에 나오는 D단조는 저주를 뜻합니다. <마술피리>에서 시련을 인내하는 타미노, 실연을 슬퍼하는 파미노, 이들을 격려하는 자라스트로가 함께 노래하는 삼중창이 B플랫장조입니다.
C장조는 승리입니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에서 자유와 시민정신을 조명했죠. 돈 조반니가 노래한 ‘자유만만세’가 C장조입니다. 물의 심판과 불의 심판을 이겨내는 <마술피리>의 승리도 그렇죠. 모차르트는 자기 곡 안에 오페라의 모티브들을 활용했습니다. 협주곡 21번 1악장은 타미노가 자라스트로 성에 들어가려는 장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협주곡들을 실내악용으로 편성을 줄여서 연주한 적이 있습니까?
30년 전쯤이죠. 이대욱 선생님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한 적이 있어요. 원래 편성보다 연주하기 훨씬 더 힘듭니다. 바이올린 음정이 세세하게 다 들리니까요. 청중들은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휘자나 연주자들은 더 힘든 편성입니다.
조성현, 선우예권, 김봄소리, 김태형 등 젊은 연주가들과 협연합니다.
젊은 음악가들이 나와서 좋은 일입니다. 후배 연주가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은 선배들과 어른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선배로서 젊은 연주자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빨리 피면 그만큼 빨리 진다’고요. 오랫동안 주변의 사람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연주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요즘 음악계를 보면 신구의 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륜이 있는 사람들의 무대도 필요합니다. 균형을 가져가야죠.
코리안심포니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해보신 말러와 비교해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말러는 마니아층이 있습니다. 음악 자체가 감각적이고 흡인력이 있죠. 브루크너의 매력은 다른 데 있습니다. 저도 50이 넘어서 브루크너를 시작 했습니다.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계속 찾고 있다’고 브루노 발터가 얘기했죠. 브루크너가 성가대원으로,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던 성 플로리안 성당을 세 번 방문했어요.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하다 보면 보이 소프라노가 들리는 것 같은 매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청순하죠. 요즘은 그런 소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브루크너 음악은 우리에게 필요한 해독제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정화시켜줍니다.
선배로서 젊은 연주자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빨리 피면 그만큼 빨리 진다’고요.
오랫동안 주변의 사람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연주 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좋은 지휘자를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지휘자가 만들어지기가 왜 어려울까요?
제 얘기를 하자면, 전 꿈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지휘자가 될 거야’ 이런 게 없었죠. 고등학교 때 아마추어로 지휘도 하다가 작곡과에 들어갔어요. 작곡을 하다 보니까 지휘 활동도 하게 됐고, 지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지휘를 하다 보니 음악을 더 알게 됐고요. ‘지휘자는 이것부터 해야 한다’ 이런 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연구하고 기본적으로 이론적인 배경이 있어야 해석이 가능하죠.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파우스트>를 읽힙니다. 숱한 서양 고전음악에서 주제가 되어 나오잖아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주할 수는 없죠. 문화를 파악 못하고 소리만 내서는 안되고, 낼 수도 없습니다.
작곡도 하라고 합니다. 너의 구조(structure)를 만들어봐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겠느냐. 우리는 구조에 대한 개념이 약합니다. 쿠벨릭이 말했던가요. ‘아름다움은 구조에서 나온다’고요. 강력한 메시지도 거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엽적인, 감각적인 아름다움에만 매몰되는 것 같습니다. 말러 교향곡을 예로 들까요. 악장마다 템포와 성격의 대비, 기승전결, 클라이맥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공부하지 않고 음반에서 들리는 대로만 지휘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막말로 지휘봉 흔드는 건 한 시간이면 배웁니다. 제 대학 시절에는 복사기가 없었습니다. 대학 3년 때 처음 나왔죠. 매번 악보를 베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 가서도 사보를 했죠. 남산 어린이회관에서 희한한 편성으로 동요 편곡해서 아이들한테 연주해줬죠. 그렇게 닥치는 대로 현장에서 음악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제 음악생활에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지휘자가 되는 과정에 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리허설 때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연주합니다. 전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똑같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연주는 할 때마다 다릅니다. 매번 바꿉니다. 할 때마다 다시 공부
하면서요. 안 바뀌면 죽은 음악입니다.언제나 새롭게 합니다. 음악은 결국
지휘자와 단원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내가 완벽하니 나를 따라
오라’는 지휘자는 좋은 지휘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가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강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여러분은 어떤가 묻는
거죠. 거기에 동의했을 때 파워풀한 음악이 나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소리만 나오죠. 그러한 관계(rapport)가 형성되면, 단원들이 연주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동의했을 때 자기들이 열심히 하죠. 기량만 좋아서는 안되고 모든 연주는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합니다.
“기량만 좋아서는 안 되고, 모든 연주는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합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지 않나요?
핵심을 알면 다 풀립니다. 핵심을 모르면 더 걸리죠.
올해 계획을 들려주세요.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서 말러 교향곡 2번과 3번을 연주합니다. 코리안심포니와는 교향악 축제가 있고, 브루크너 사이클을 완주합니다. 한-불수교 130주년 일환으로 프랑스에서 연주가 있습니다. 8월에는 롯데콘서트홀 개관으로 말러 <천인교향곡>을 초연 때와 동일한 편성으로 연주하는데,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9월에는 린츠 브루크너 페스티벌 초청으로 린츠에 가서 객원지휘를 합니다. 아, 물론 세종체임버홀에서의 모차르트 연주가 제일 중요하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