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반짝이는 두 스타의 협주곡
writer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세종문화회관 송년콘서트가 2015년 12월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피아니스트 김정원, 첼리스트 송영훈, 두 클래식 스타가 나란히 공연한다. 김정원과 송영훈은 각각 웨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준수한 외모와 멋진 목소리를 자랑하는 두 연주자의 해설도 곁들여진다. 두 연주자를 각기 이메일로 만나봤다.
모차르트 21번, 직접 만든 카덴차 연주
윤디 리, 임동혁, 조성진이 모두 쇼팽 24개의 전주곡 앨범을 내서 화제다. 쇼팽의 이 작품을 해석하는 관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쇼팽 24개 전주곡은 녹음한 적이 없다. 하지만 24개 연습곡집, 4개의 스케
르초와 환상곡, 뱃노래집을 녹음했다. 어떤 곡이든 ‘해석하는 관건’이라는 건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얼마 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젊은 연주자임에도 개성을 빙자한 과장이나 음악 본질을 훼손시키는 과시욕을 배제한 연주였다, 진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한 음 한 음 섬세하게 작업한 장인정신이 돋보였고, 완성도도 높았다.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있는 연주, 감성과 정서가 풍부한 연주, 한마디로 영혼이 담긴 연주,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로부터 얻어지는 지성적인 연주가 청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제14회 쇼팽 콩쿠르 본선까지 진출했다.
그때 바르샤바에서 어떤 점을 느꼈나?
모콩쿠르 결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콩쿠르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등용문이지만 궁극적으로 예술이 심사위원 몇 명에게 평가받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당시 최종 결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폴란드 음악협회에서 준비한, 우승자 초청 예정이었던 공연에서 우승자를 제치고 연주할 기회까지 부여받았다. 그 협회 자문음악평론가의 의견으로 성사된 연주였다. 어쨌든 콩쿠르는 내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좋은 결과를 얻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고배를 마시더라도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물론,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했을 때만 그 의미가 있겠지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골랐다.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작품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다면?
지난 10월 성시연이 지휘하는 경기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바렌베르크 피아노 협주곡(라흐마니노프 협주곡 5번)을 협연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곡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내용 때문에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연말은 조금 더 밝고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 곡은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차르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경쾌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이 곡은 1, 3악장에 카덴차가 들어가는데(메인 카덴차 외에도 도입부와 곡 중간중간 작은 카덴차들이 있다), 전부 직접 만들었다. 학생 때 만든 카덴차다. 이 곡을 음반으로 녹음할 때도 자작 카덴차를 연주했고 이번 연주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제 김정원 하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5번이 떠오른다. 작품을 처음 연주했을 때, 레코딩할 때의 느낌은 어땠나? 연주회에서 연주를 거듭하면서 이 작품에서 새롭게 느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 곡은 언젠가 피아니스트들과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원곡 자체가 훌륭하고 솔로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즘을 그대로 재현해내 무척 피아니스틱하면서도 정교하다. 다만 라이브로 연주 할 때 교향악이 너무 헤비해서 밸런스에 어려움이 있다.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의 첫 결실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음반을 녹음하며 어떤 점을 느꼈나? 슈베르트 소나타가 다른 피아노 소나타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어떤 점에 유념하며 전곡을 녹음할 생각인가?
슈베르트는 연주자의 상상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음악이다. 재료는 훌륭한데 레시피도, 조미료도 없다. 잘못하면 밋밋하고 지루해지고 욕심부리면 좋은 재료를 다 망쳐버릴 수도 있다. 좋은 ‘소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니 아이디어들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연주자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박수갈채를 목표로 삼지 말고 내가 음악을 만들어가는 오늘 하루에 행복해 할 수 있어야 한다. 만들어가는 음악이란 손가락을 돌려서 템포를 올리고 악보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빈 도화지에 나만의 그림을 그려가는 작업이다.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솟아나는 열정이 가장 귀한 재능인 것 같다.
음악의 도시, 빈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피아니스트다. 1년 동안 빈에는 어느 정도 머무나? 빈이라는 도시가 자신에게 선사한 것들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나?
지금은 학교(경희대)에 있다 보니 생각처럼 자주 가거나 오래 있지 못한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리고 한 번 가면 한 달 남짓 머문다. 내겐 인생의 2/3를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내가 그 도시로부터 받은 것은 한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빈이라는 도시가 갖는 음악적인 가치와 그 도시의 정취 등을 떠나 내 인생의 역사 자체다.
2015년의 활동을 자평한다면? 2016년의 각오를 말해 달라.
누군가가 그랬다. 가장 큰 자뻑(자아도취)은 ‘나는 최선을 다했다’ 라고. 2015년은 최선을 다한 한 해였다. 내년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조금은 나의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첼로는 심장에 대고 연주하는 악기다
이번 연주곡으로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을 선정한 이유는?
요즘은 꼬마부터 프로까지 연주하는 작품이다. 나도 어릴 때 배웠다.
몇백 년 전 곡이지만 지금도 연주하고 미래에도 사랑받을 것 같아 골랐다.
주말에 듣는 ‘송영훈의 가정음악’은 여러 가지로 참신했다. 음악을 하는 진행자만이 할 수 있는 여러 묘수가 숨겨진 것 같았다. 주말 방송을 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나?
7년 전엔 매일 진행했었다. 주말만 하니까 훨씬 더 즐길 수 있고, 재미있다. 구력도 붙고 여유도 생긴 듯하다.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인다. 첫아들이 4월에 태어났다. 아들을 생각하며 뭔가 가정적이고 아이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콘서트홀은 많게는 2,500석, 스타디움이라도 1만 명 인데 라디오는 그보다 훨씬 많은 남녀노소 청취자가 듣는다. 요즘 음악회에서 아이들을 보면 ‘7년 전 뱃속에서 들었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11시 콘서트>의 해설을 통해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번에도 해설이 있는 음악회다. 음악회에서의 해설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11시 콘서트>를 5년간 했다. 처음엔 눈높이를 맞춰서 ‘불후의 명곡’ 시리즈를 했는데, 명곡들을 간단한 해설과 함께 소개하는 코너였다. 클래식 음악은 고전이다.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 같이 한 텍스트를 수없이 읽어야 뜻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는 조금은 어려운 음악도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해설을 하면서 배운 점이 많다. 현대음악들도 유럽의 오랜 전통과 더불어 소개하고 싶다.
송영훈 하면 탱고가 생각난다. 피아졸라 이후 지금은 클래식 음악 내 한 장르로 봐도 무방할 만큼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장르다. 송영훈이 생각하는 탱고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음악적인 여건 세 가지가 충족되면 시도한다. 첫째, 음악이 날 ‘꽝’ 때려줘야 한다. 둘째, 폭발적인 감성과 관능미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어야 한다. 셋째, 뚜렷한 취지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는 안 된다. 내가 탱고를 연주한 건 요요마, 기돈 크레머가 피아졸라를 발굴한 시점에서의 시도였다. 브람스, 슈만, 베토벤을 공부하듯 피아졸라를 연주했다. 파블로 지글러에게 배울 수 있어 좋았다.
해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면서 느끼는 점은 어떤 것이 있나?
15세 때 슈타커, 노라스에게 배우기 위해 핀란드 난탈리에 갔는데 당시엔 동양인이 없었다. 거장들을 바라만 봐도 좋았다. 그리고 10년 만에 아르토 노라스의 학생에서 동료 음악가로 내 또래의 음악도들을 가르치고 연주를 들려줄 수 있었다. 젊어서 활동하면 그런 점이 좋더라. 학생을 초청하고 선생님도 계속 모실 수 있다. 내년에 가는 프라드 카잘스 페스티벌은 가장 오래된 실내악 축제 중 하나다. 연주자에겐 페스티벌 참가 자체가 휴가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자연을 만끽하고 선후배들을 만난다. 신예들의 앞날을 점쳐보기도 한다.
경희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본인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요즘 학생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경희대에서 연주자의 스케줄을 배려해주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에 가게 됐다. 요즘 세대가 부러운 점은 ‘겁이 없다’는 거다. 뭐든 그냥 한다. 그게 참 부럽다. 부족한 점은 열정이나 동기부여가 덜한 것 같다. 우리 때에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영국 투어를 한다고 하면 용돈을 모아서 보러 갔다. 첼로 외에도 바이올린이나 라틴음악도 많이 들었다. 첼로를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던 시기에 잘 안 되면 다 내려놓고 그리스에 가곤 했다. 아무도 안 찾는 섬에 가서 쉬었다. 지금 학생들은 고3까지 평생 할 공부를 다 하는 것 같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연습을 시작했는데. 이제야 음악이 좋아졌다. 음악의 길은 길다.
첼로 전공자가 귀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첼로를 전공하면 이런 점이 좋다고 어린 음악도를 꼬드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형이 바이올린을 먼저 했다. 다섯 살 때 형보다 무조건 큰 거로 연주하려고 첼로를 시작했다. 이걸 평생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첼로 연주자에겐 비행기 좌석도 하나 더 든다. 항공료가 두 배로 드니까 학생 때는 항공료가 연주료보다 더 든 적이 많다. 그러나 역시 심장에다 대고 연주하는 악기는 첼로밖에 없는 것 같다. 두근대는 심장과 맞닿아 있으니 감정 표출이 특별한 것 같다. 첼리스트들은 대개 느린 편이다. 어딜 가도 빨리 못 움직이고 식사도 가장 많이 걸린다.
2015년의 활동을 자평한다면? 2016년의 각오를 알려 달라.
연주를 참 많이 했다. 요요마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10월 내 스케줄과 비교 해봤더니 내가 요요마의 3개월 치를 연주했더라. 나도 사람인지라 재충전을해야 하는데. 연주를 더 하고 싶다. 일본에서 서울시향과 브람스 이중협주곡을 협연하고 호텔 측에 부탁해 웨딩홀을 빌렸다. 거기서 새벽까지 하이든 협주곡과 아르토 노라스와 2중주 부분을 연습했다. 누가 시켜서 할 수 있 는게 아니다. 예전보다 음악이 더 좋아진다. 자신감이 생기고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2016년엔 악보를 내려놨을 때 만족감을 느끼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