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 서거(逝去) 4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 아본 강변 스트랫퍼드에서 1564년 태어나서 희곡 37편, 소네트 시를 남기고 1916년 52세로 사망했다. 그의 희곡 작품에는 1천 명의 색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세상만사 희로애락과 인간의 흥망성쇠 드라마가 만화경처럼 펼쳐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그의 작품은 180개 나라에 번역되어 매일 세계 어디선가에서 공연되고, 오페라, 발레, 미술,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 수용되 면서 현대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토록 갈채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작품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리고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융합 때문이다. 둘째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교훈을 안겨주는 탁월한 극작술 때문이다. 셋째로 언어 의 황홀감, 그 마술 때문이다. 그의 대사는 줄줄이 명언이다. 그의 작품을 접하면 지금도 우리는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의 친근하고도 영원한 이웃으로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가 쓴 8편의 사극은 15세기 영국의 정치사를 전하고 있다. 그 사극 중 <리차드 2세>, <헨리 4세 1부, 2부>, <헨리 5세>, <헨리 6세 1, 2, 3부>, <리차드 3세> 은 내용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나머지 사극인 <존 왕>과 <헨리 8세> 는 이들 작품과 관련을 맺지 않고 있다. 셰익스피어 사극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엘리자베 스조 시대 이전 300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국가 형성 과정을 전달하는 국민드라마이다.
<헨리 4세 1부>는 ‘왕자의 교육’, ‘우울한 왕실’, ‘핫스퍼의 반란’ 또는 ‘폴스타프’라는 부제가 붙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은 32세의 나이로 집권한 랭커스터의 헨리가 1413년 자연사할 때까지의 통치 상황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헨리 4세는 계속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영주들은 헨리 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왕은 헨리 왕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전란의 먹구 름이 밀려오는데 왕자는 런던 술집에서 폴스타프 패거리들과 방탕한 세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왕의 호출을 받은 왕자는 부왕의 지극정성으로 정신을 차리고 전쟁에 참가해서 반란군의 사령관 헨리 퍼시(핫스퍼)를 살해하는 무공을 세우고 반란을 진압한다.
<헨리 4세 2부>에서 헨리 왕자는 폴스타프와 결별하고, 왕위를 계승해서 대관식에 임한다. 폴스타프는 기쁨에 넘쳐 그 자리에 뛰어가지만 왕이 된 헨리 왕자는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폴스타프를 문전박대한다. 이른바 ‘폴스타프의 추방’이다. 이 반전 드라마는 이후 수 세기 동안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숱한 연극적 해석으로 다양하게 전달되는데, 이번 서울시극단 공연에서도 왕자와 폴스타프의 관계에 극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헨리 4세 1부,2부>의 구조적 특징은 왕자의 정치 장면과 폴스타프의 민중 생활 장면이 교차되면서 서민 생활의 자유와 반항이 왕실의 권위와 통제로 대조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햄릿이 있고, 희극에는 샤일록이 있다. 그의 사극에는 폴스타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작품 <헨리 4세>에서 폴스타프의 비중은 크고 관객의 호응은 압도적이다. 폴스타프의 추방’이라는 극적인 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셰익스피어는 작품 초반에 폴스타프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그를 사기꾼이며 주정뱅이, 색한으로 만들고 있다. 폴스타프에게 붙여진 별명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악한, 기생충, 바보, 허풍선이, 군인, 폭식가, 색한, 거짓말쟁이, 겁쟁이 등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이 모든 별명이 무색할 만큼 폴스타프를 순수한 웃음의 천사로 성격을 창조했다. 2부에서 관객들은 그를 보고 웃고, 또 웃는다. 그 웃음이 그의 추방 사건을 잊도록 만들고 있다. 헨리 왕자가 떠난 자리에 셰익스피어는 그의 단짝 친구로 작중 인물 피스톨을 안겨 주었다. 그의 정부(情婦) 돌 티어시트도 웃음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부패한 셸로우 판사도 폴스타프의 웃음에 가세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그를 ‘광범위한 총체적 의식’의 소유자라고 격찬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우리를 웃기지만, 자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 오든(W.H. Auden)은 ‘폴스타프는 초월적인 자비(慈悲)의 질서에 속하는 희극의 상징’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폴스타프는 우리 모두를 항상 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비규환(阿鼻叫喚) 세상에 내려온 구원자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헨리 왕자가 그를 부인할 때도 그는 왕자를 사랑했다. 헨리 5세가 된 헨리 왕자가 원하는 것은 그의 추종자들이다. 폴스타프는 추종자가 될 수 없는 성격의 인물이다. 폴스타프는 상류계급 사람들을 우롱하고 그들의 악을 폭로하고, 겁을 주면서, 대중들의 온정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래서 대중은 그가 무대에 나타나면 환호성을 지르며 갈채를 보낸다. 셰익스피어가 사극을 쓰게 된 동기중 하나는 엘리자베스조 시대 국민들의 왕성한 정치적 관심 때문이었다. 희극의 형식이 사회적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고, 비극의 형식이 도덕적이며 윤리적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생겨났다면, 역사극은 인간의 정치적 행위나 권력욕 또는 권력의 획득과 그 상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창조되었다. 영국사에서 권력은 왕위를 의미했다. 그것은 또한 권력의 확대와 인간 능력의 한계 사이의 어떤 불가 피한 관계를 의미했다. 셰익스피어는 사극을 통해 정치의 본질적 문제에 접근해서 정치가 인간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사극에서 끊임없이 질문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인간 사회의 질서는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 지나친 권력욕은 폭력과 배신과 잔혹한 죽음을 유발하는 온상이 아닌가? 이런 질문은 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에게도 뼈아프게 절박한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