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체임버홀에서 빚어내는 절정의 감동
2016 세종체임버홀 개관 10주년 기념 프로그램
writer 조혜진(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세르반테스는 소설 <돈키호테>에서 말했다. 음악이 있는 곳에 악(惡)이 있을 수 없다고.
눈과 귀, 그리고 영혼을 매혹하는 세상의 모든 선(善)이 있는 곳. 실내악이 완성되는 아름다운 공간, 세종체임버홀에서 올 한 해 선보일 세종문화회관의 특별한 기획공연을 소개한다.
음악으로 써내려간 10년간의 러브레터. 세종체임버홀 개관 10주년 기념공연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교향곡을 떠올리곤 한다. ‘기악의 꽃’이라는 수식어처럼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들은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반면 실내악은 말 그대로 실내에서 은은하게 연주하는 합주곡이다. 개인의 기교가 아닌 연주자들의 교감과 조화로 빛을 발하는 실내악은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연주되기에 청중과 연주자의 거리가 가까워 선율 하나하나를 보다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악기도 다른 악기 뒤에 숨을 수 없으며 모든 악기가 분명한 음을 내야만 한다. 세종체임버홀은 그런 공연장이다. 비단 실내악뿐 아니라 모든 연주에 있어 청중들에겐 연주자들의 몸짓과 표정, 숨결까지도 전달하는 더할 나위 없는 무대인가 하면, 연주자들에겐 숨을 곳 없이 고스란히 자신을 드러내어야 하는 한없이 불친절한 무대. 지난 10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매일같이 관객들에게 가장 솔직하면서도 아름다운 천연의 선율을 건네 온 세종체임버홀이 1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실내악 앙상블 팀이 모여 바로크에서 현대 음악까지 실내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풀어낸다. 작곡가 류재준이 예술감독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리더를 맡고 있는 앙상블 오푸스, 여성 연주자들의 섬세한 선율을 선보일 디앙상블, 올해로 창단 51주년을 맞이하는 코리아챔버오케스트라(구. 서울바로크합주단), 그리고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 없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실내악 주자들로 구성된 쳄버오케스트라까지 촘촘하게 짜인 실내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비발디, 바흐의 고전적 선율을 비롯해 슈만, 브람스의 낭만적 음색, 라벨의 현대적인 색채까지 실내악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될 예정이다.
열렬한 사랑이 천재의 영혼을 만든다.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훗날 그곳의 역사를, 아니 세계의 역사를 뒤흔들 특별한 아이가 태어났다.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모차르트 탄생 2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모차르트에게 헌정하는 특별한 무대,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가 펼쳐진다. 세종 체임버 시리즈는 해마다 국내 최정상의 아티스트를 상주음악가(Artist in Residence)로 선정하여 연중 다양한 편성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정통 클래식 공연이다. 2015년 첼리스트 양성원에 이어 2016년 세종문화회관이 선정한 아티스트는 마에스트로 임헌정. 그의 지휘봉 아래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하고 우아하며 온화한 선율을 세종체임버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구성이 재미있다. 매회 디베르티멘토 한 곡과 악기별 협주곡을 선보인다. 디베르티멘토는 궁정 또는 귀족의 저택에서 열리는 행사나 연회에서 분위기를 돋우거나 부드럽게 하기 위해 연주되던 기악 모음곡이다. 18세기 중·후반에 활약한 고전파 작곡가라면 대부분 디베르티멘토를 남겼는데, 모차르트가 남긴 20여 곡의 디베르티멘토 중에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빛나는 가치를 가진 곡이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바로 그런 곡들을 다룬다. 더불어 플루티스트 조성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피아니스트 김태형, 선우예권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천재 연주자들이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21세기 음악 천재가 연주하는 18세기 천재의 음악을 2016 세종 체임버 시리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른다섯 해를 살며 모차르트는 20여 개의 오페라와 징슈필, 17곡의 미사·레퀴엠, 55곡의 교향곡, 23곡의 피아노 협주곡, 15곡의 협주곡, 26곡의 현악 사중주곡, 19곡의 피아노 소나타, 수많은 아리아와 춤곡을 쉼 없이 썼다. 모차르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안정적인 궁정 음악가도, 명예로운 귀족의 음악교사도 아닌 자신의 마음과 음악을 제대로 읽어줄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억지로 작품을 만드는 일을 치욕이라 여겼던 모차르트. “천재를 만드는 것은 지성도 아니고, 상상력도 아니다. 사랑, 사랑, 열렬한 사랑이 천재의 영혼을 만든다”고 한 그의 말처럼 자기를 격려해준 이를 위해서라면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악보를 채워 넣었다. 이런 열정이 모차르트를 살게 했고, 그의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음악에 대한 정직한 사랑으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관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모차르트의 음악. 세종문화회관이 모차르트를 선택한 이유다.
실내악으로 꽃피우는 음악에 대한 열정.
몽블랑과 함께하는 ‘양성원의 체임버 스토리’
실내악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한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들을 만났을 때 어떤 호흡으로 어떤 색깔의 선율을 만들어내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라면 ‘양성원의 체임버 스토리’는 이에 꼭 들어맞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양성원이라는 유려하면서도 강력한 연주력을 가진 연주자가 국내외 최고의 솔리스트들을 만나 매회 새로운 조화를 탄생시켜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상주음악가로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을 연주하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첼리스트 양성원이 올해 더욱 풍성하고 탄탄해진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음악적 스펙트럼도 더욱 넓어졌다. 멘델스존, 베토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물론 헝가리의 민족주의 작곡가 코다이, 후기 낭만파 도흐나니, 쇼송까지 다소 낯설지만 매력적인 선율과 세련된 감수성을 담은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함께 호흡을 맞출 연주자들을 보면 이 낯선 새로움도 두려움 없이 접해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가 생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정원,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김다미, 트리오 오원 등 명실상부한 국내외 최고의 클래식 스타들이 함께하는 것. 이들의 연주가 한 공연에서, 그것도 연주자의 숨결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울림통 세종체임버홀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양성원의 체임버 스토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연주자들의 명성뿐만이 아니다. 앞서 영국의 그라모폰지는 양성원을 ‘풍부하고 깊이 있는 톤과 뛰어난 선율 감각의 소유자’라고 소개하며 그의 코다이 연주를 ‘찬란한 기교와 대담한 표현은 코다이 음악의 웅대함을 최고조로 느끼게 한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작곡가의 프로그램이지만 클래식 마니아라면, 실내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접하고 싶은 이라면 올 한 해 꼭 보아야 하는 공연으로 체크하게 만드는 힘이다. 연간 6회에 걸쳐 진행되는 공연은 연주자들과 연주 프로그램에 따라 그 색깔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공통된 특성은 그 안에서 연주의 중심을 잡아갈 양성원이라는 연주자의 리더십과 감각, 그리고 그와 함께 호흡하며 하모니를 만들어갈 또 다른 연주자들의 열정이 섬세하고도 거대한 조화를 이루어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