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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추억을 선물합니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왕자와 크리스마스>

성탄절의 추억을 선물합니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왕자와 크리스마스>

writer 김영주(공연칼럼니스트) / photo 이도영(STUDIO D)

오래도록 세종문화회관의 역사를 만들어온 서울시오페라단의 이건용 단장과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원학연 단장.
두 사람이 세상에 내놓은 소중한 아이 같은 작품 <왕자와 크리스마스>가 올겨울에도 다시 관객들을 만날 차비를 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시오페라단의 이건용 단장과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원학연 단장

세상 사람들이 다 함께 생일을 맞은 것처럼 행복한 크리스마스. 그 특별한 날에 부모님과 함께 극장을 찾은 아이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그날의 추억을 마음속 보물 상자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법이다. 그렇게 평생을 기억할 작품이 <호두까기 인형>과 <애니> 같은 라이선스 공연뿐이라면 그건 너무 섭섭한 일이 아닐까 하는 원학연 단장의 아쉬움이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시작이었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애초에 종합무대를 하는 예술 단체가 아니니까 인원이나 예산 규모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선 <호두까기 인형>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합창극으로 만든 작품으로 시험을 해봤어요. 약간의 연기와 안무, 연주가 들어가는 공연을 경험하면서 아, 종합무대의 프로세스가 이런 거구나, 이런 부분이 리스크가 있고 이런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구나, 확인했죠. 당시 서울시극단을 맡고 계셨던 김석만 단장님께 아이들을 위해서 역사적인 의미와 교훈을 담고 있으면서 재미도 있는 음악극을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은데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책 한 권을 권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조선의 소녀 옥분이>였어요.”
개화기 조선을 지켜보았던 선교사 미네르바 루타펠이 쓴 흥미로운 이야기 중에서 원학연 단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는 왕자에 지나지 않아’였다. 그는 난생처음 크리스마스를 알게 된 조선의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환상적인 스토리를 손에 들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몸담고 있던 당시 이건용 총장에게 달려갔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수준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극음악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들어줄 분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적은 예산이라 부족한 작곡료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읍소에 “흥미가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조선의 소녀 옥분이>라는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전부는 아니었고요. 원학연 선생님의 합창단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잘하거든요. 아이들이 사실은 어른보다 더 기량이 있는데 어른들이 좋은 것을 주지 못하고 못 가르치는 게 문제고,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좋은 곡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죠. 이 작품이 소위 말하는 애들다운 소재에 국한된 것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완성하고 보니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나갔어도 좋았겠다 싶을 만큼 아이들이 정말 잘 받아들였어요.”
교육학에 말하는 히든 커리큘럼-아이들이 배움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스스로 깨우쳐 나가게 되는 과정-의 좋은 예가 바로 이 작품이라는 것이 그의 자평이다.

원학연

원학연

원학연 단장

왕자와 크리스마스

아역 배우가 아니라 합창단원들이니 당연히 그 연기가 미숙하고 어눌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들이 가진 특성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총 21곡이 들어가 있고 그 중 4곡은 사람들이 다 아는 캐럴이나 민요를 쓴 건데 만약 어린이 합창단에서 의뢰를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래도 작곡가의 오리지널리티를 더 의식했겠죠. 그렇다고 이 작품의 모든 곡이 다 그런 식은 아니에요.
‘무서워’ 같은 곡은 성인 합창단이라면 오히려 어려워했을 만큼 복잡한 곡이죠. 매우 친숙한 선율로 시작해서 고난도로 올라가는 건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생각을 했죠.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움직이더라고 말한 것이 다른 어떤 평가보다 좋았습니다.”
초연 당시 부족한 시간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이들이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열한두 곡 정도 나열해 놓고 적당하게 이야기를 얽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해를 거듭해서 공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었고, 드라마를 좀 더 강화할 기회가 되었다. 3년째에는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추적을 거듭한 끝에 양이재와 덕수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의친왕일 것이라는 추정에 이르게 된다. 극의 깊이와 디테일이 점점 더 풍부해진 것이다. 이건용 단장은 이러한 과정이 매우 흡족하다.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의 콘체르토든 베토벤의 <피델리오>든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거든요. 수많은 수정과 보완 과정이 있었고 그렇게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데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처음 만들어서 한 번 무대에 올린 걸 보고 ‘에이, 역시 한국 사람은 안 돼’ 같은 말을 하면서 젖혀두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굉장히 좋은 샘플이에요.”
아역 배우가 아니라 합창단원들이니 당연히 그 연기가 미숙하고 어눌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들이 가진 특성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원학연 단장의 마음에 보상이라도 하듯 아이들은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더할 수 없이 진솔하고 다양한 감정을 작품 속에서 표현해낸다. 일일이 기술적인 연기 지도를 하는 대신 큰 틀을 보여주고, 동선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깨치고 훌쩍 성장해서 제 역할을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다.
10년째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지휘봉을 맡고 있는 원학연 단장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의 생명력은 충분히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성장시켜온 작품은 5년째인 지난해에 드디어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자타공인 더 이상 크게 손댈 곳이 없어진 여섯 살배기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2016년 작품의 핵심인 음악에만 집중한 칸타타로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종합극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음악만으로도 승부해볼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며, 좀 더 다양한 무대로 운신의 폭을 넓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또한 기대하는 바이다.
“이 작품을 일본 쇼와무대 이사장님도 직접 보셨어요. 후지와라 오페라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일 오페라 교류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죠.
대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어도 음악과 드라마만으로도 굉장히 이해가 잘되는 좋은 작품이라고 하셨어요.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이 포함된 이야기를 ‘우리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담담하고 넉넉하게 말씀하시며 초대해주셨어요. 올해 한일수교 70주년 기념으로 12월 20일에 일본 쇼와무대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합니다.”
원학연 단장은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2016년 여름 공연으로 뮤지컬계의 실력파 노선락 작곡가와 함께 신작도 준비 중이다. 익숙한 동요들을 다양한 장르로 자유자재로 편곡하고 새로운 가사를 붙여서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겨울의 성탄 트리 같은 <왕자와 크리스마스>에 이어 여름방학처럼 생기 넘치는 예쁜 아이가 또 태어나길 기대해본다.

이건용

이건용

이건용 단장

왕자와 크리스마스

교육학에 말하는 히든 커리큘럼 - 아이들이 배움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스스로 깨우쳐 나가게 되는과정 - 의 좋은 예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