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세종문화회관의 힘, 조선 삼총사

지난해 펼쳐진 〈극장 앞 독립군〉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조선 삼총사〉가 찾아온다.

공연계는 유사 이래 매년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은 무엇을 해야 하고, 극장은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했다. 극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금기시되는 코로나19 시국에 그 고민은 더 늘어났다.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두 번째 무대인 <조선 삼총사>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이유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극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이 뭉친 이 작품은 오는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통합 공연의 시작을 알린 2019년〈극장 앞 독립군〉

지난해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극장 앞 독립군>은 우리 사회의 연대(連帶)에 대한 갈망을 기분 좋게 해소시킨 작품이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개관 41년 만에 처음으로 뭉쳐 만든 음악극. 서울시국악관현악단·서울시청소년국악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극단,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 단체가 모두 참여해 무대에 오르는 인원만 300명에 달했던 ‘블록버스터 극’이었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조선 삼총사> 홍경래 역의 한일경, 김선달 역의 허도영, 조진수 역의 김범준(왼쪽부터)

이 작품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학을 넘어 작품이 지향한 가치의 진정성에 있다. 작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올해 봉오동 전투의 승전 1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해 선보였다. 1920년 6월 7일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대한 북로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 추격 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가 봉오동전투다. 주지하다시피 봉오동전투는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끌었다. ‘극장 앞 독립군’ 주인공이 홍범도다. 그는 19세기 말 일제에 항거해 일어선 항일의병장으로 대한독립군 사령관을 지냈다.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50여 년간 조국 해방을 위해 무장 독립투쟁을 펼친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하지만 <극장 앞 독립군>은 홍범도의 영웅적 순간만을 다루지 않았다. 실패한 독립군으로, 극장의 배우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홍범도의 마지막 모습을 그렸다.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이 주축이 돼 한국어로 된 공연을 올렸으나 공산당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관 압박을 받은 고려극장 스태프·배우들은 홍범도를 소재로 한 극을 만들면서 수없이 좌절하지만 신기루 같은 희망을 엿본다. <극장 앞 독립군>은 연극에 대한 연극, 즉 메타극이기도 했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조선 삼총사>는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같은 꿈을 가진 세 친구의 이야기다.

같은 꿈, 다른 길

<극장 앞 독립군>에 이어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두 번째 무대인 <조선 삼총사>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배경은 동학농민운동에 앞서 1811년(순조 11년)에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으로, 자신의 안녕보다 세상의 평안을 위해 세도정치와 삼정문란에 맞섰던 김선달·홍경래·조진수 세 친구의 이야기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같은 꿈을 품지만 각자 다른 길을 택하는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공존한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배짱 두둑한 설화의 주인공인 김선달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평양 출신의 희대의 사기꾼 김선달은 세상을 바꿀 수단으로 돈을 택한다. 입담과 재치로 거상이 돼 막대한 자금을 모은 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돕는다. 김선달 설화도 단순히 사기에 집중하는 오락성에 치우치지 않는다. 능력은 있으나 신분 때문에 영웅이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김선달의 속임수는 기성 체제를 뒤흔들기 위한 무기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사회적 신분이 높은 자가 표적이 되고, 김선달은 하층민을 위해 싸우는 ‘민중 영웅’으로 거듭난다. 김선달의 친구로 등장하는 홍경래는 조선 순조 시대 평안도 농민 반란군의 지도자인 동명의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총연출 한진섭(서울시뮤지컬단 단장)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무용안무 정혜진(서울시무용단 단장)

하지만 지방 출신인 홍경래는 한양 중심부로 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세기 초 중세적 봉건시대를 발칵 뒤집으려는 일부 흐름을 타고 홍경래는 의군(義軍)을 통해 민심을 얻으려 했다. 그런데 그 개혁의 불꽃은 불타오르기 전에 관군에게 진압된다. 김선달과 홍경래의 친구로 등장하는 조진수는 가상의 인물로 그 역시 평민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란을 잠재우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홍경래의 난은 공식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농민·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후 조선 곳곳에서 발생한 농민 봉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난은 파멸됐지만, 그 난은 저항의 새로운 찬가였던 셈이다.

극장에서 얻는 위로와 연대

언뜻 <조선 삼총사>와 <극장 앞 독립군>은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가상(假想)이 홍수처럼 넘치는 온라인 시대에 극장만이 갖고 있는 정경을 보여준다. 극장 안에서는 가상의 것을 다루더라도 눈앞에서 물리적으로 현현한다. <극장 앞 독립군>에서 자신의 활약이 전설처럼 부풀려진 것을 바로잡는 홍범도는 마치 존재의 유무를 알 수 없는 바다 위 섬 같았고, <조선 삼총사>에서 연대와 투쟁을 오가는 세 친구는 진정한 실체를 알기 힘든 하늘 위 구름 조각들 같다. 그런데 각각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바다 위 폭풍우, 하늘 속 먹구름이라는 불의에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홍범도와 세 친구의 상황은 같다. 변수로 가득한 예상치 못한 날씨 속에서 무기력과 맞서 싸우며 꿋꿋이 일상의 위협을 버티고 그 힘겨움을 위로로 채우는 행위. 그건 극장 안 공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난으로 가득 찬 바깥세상과 맞설 용기와 희망을 극장 안에서 얻는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들이 연대하는 건 더 많을 힘을 싣기 위해서 기를 모으는 것과 같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지난해 펼쳐진 에 이어, 두 번째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통합 공연 가 찾아온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은 작년 <극장 앞 독립군>에 이어 다 함께 <조선 삼총사>를 만들었다.

삼총사는 언제나 존재한다

제작진과 내용이 달라도 세종문화회관 통합 공연의 맥락은 이어진다. 공연은 당대에 맞선 절박한 기록이며 이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유효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연극 <그게 아닌데>로 2012년 한국연극대상, 동아연극상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고 이번에 <조선 삼총사>를 쓴 이미경 작가는 “올바름을 향한 순전한 마음들은 비록 갈등이 있더라도 분명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놓는다. 어느 시대나 있었던, 어느 시대나 있을 법한 인물들로 꾸려진 <조선 삼총사>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나라 상황에 대해 수많은 갈등과 불만이 넘쳐나지만 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전해주고 싶다”라고 밝혔다.
<조선 삼총사>에는 연출 한진섭(서울시뮤지컬단 단장), 무용 안무 정혜진(서울시무용단 단장), 뮤지컬 안무 서병구도 힘을 보탠다. <그날들>, <피맛골 연가>, <투란도트> 등 창작 뮤지컬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온 장소영 음악감독이 작곡을 맡았다. 그가 이끄는 TMM오케스트라가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풍성한 오케스트라를 선보인다. 전통적 색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더해진다.

_이재훈(뉴시스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