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나만의 음색을 찾아요

‘한국형 엘 시스테마.’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으로 인생을 배운다.

1975년,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베네수엘라.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총을 내려놓고 악기를 손에 쥐었죠. 아이들은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고에서 열렸던 이 음악 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엘 시스테마(El Sistema)’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베네수엘라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를 설립했는데요. 스페인어로 ‘시스템’을 의미하는 엘 시스테마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비전을 심어주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마약이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엘 시스테마를 통해 어엿한 음악가로 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현재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가 바로 이 엘 시스테마 출신이죠.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는 문화 소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엘 시스테마의 성공 사례는 여러 나라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내에서도 문화적 권리가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화 배제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예술 교육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데요. 세종문화회관은 사회 공헌 활동의 하나로 문화 소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 교육을 추진했습니다.
2010년 창단된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는 단편적인 음악 교육에서 벗어나 특화된 예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아실현 기회를 제공하고, 합주 등 단체 활동을 통해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죠.

매주 수요일 오후,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 모입니다. 정기연습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80명 안팎의 청소년 단원이 모여 연 1회 여름 캠프와 정기연주회에 참여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갑니다.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초창기 때부터 함께한 구립오금동지역아동센터 유은진 센터장은 “오케스트라는 앙상블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활동이자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술 활동의 목표는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갖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협동과 배려, 다른 친구들의 소리를 듣는 경험이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꼽았습니다.

올해 정기연주회는 국립서울맹학교 학생들이 함께해 더욱 뜻깊었다.

어려운 시기를 넘어, 드디어 무대로

지난 12월 17일 저녁 8시, 네이버 TV 세종문화회관 채널을 통해 <2021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온라인으로 개최됐습니다. 한국토요타자동차의 전액 후원으로 진행되어 아이들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연주회를 준비할 수 있었는데요. 세종M씨어터에서 사전 녹화된 무관중 공연 실황 중계와 2021년 활동 다큐멘터리를 함께 선보여 주목 받았습니다.
이번 연주회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과 환경’이었어요. 최근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을 아이들. 자연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깨닫는 기간이었을 텐데요. 어렵게 한자리에 모여 코로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정기연주회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참 소중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무대에 들어오는 단원들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가득 차올랐어요.
올해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는 좀 더 특별했습니다. 국립서울맹학교 학생들이 합류해 더욱 의미 있는 무대를 선보였기 때문인데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호흡하며 하나의 하모니를 만드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단원들은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

함께하는 즐거움

‘자연과 환경’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레퍼토리로 공연은 흘러갔습니다. 첫 곡으로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선보였고, 이어서 동요 ‘비행기’와 ‘작은 별’, 서울시립교향악단 호른 단원인 김병훈과 함께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1번, 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 반 맥코이의 ‘아프리칸 심포니’, 바리톤 이응광이 협연한 ‘사랑으로’를 연주했습니다. 아직 프로 오케스트라만큼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지휘자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 섬세한 활 맞춤에는 그동안 노력한 흔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영상에서도 역력히 드러나더군요.
2020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로 활동 중인 데이비드 이가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들었는데요. 그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첫 리허설 과정부터 학생들이 정말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해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구성원들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라는 느낌을 단번에 받았다고 합니다.
단원들은 ‘함께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는 듯합니다. 트롬본 단원은 “매주 오면서 귀찮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했고, 국립서울맹학교에 다니는 바이올린 단원은 “악보를 못 보지만 연주곡을 미리 듣고 집에서 연습을 하는데, 실수할 때도 많지만 단원들과 지휘자가 배려해 주셔서 잘 해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음색을 찾아가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이들의 깊은 속마음을 들으면서,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가 이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무엇보다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고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요, 본격적으로 음악 전공자의 길을 걷게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연주만이 아닙니다

다시 엘 시스테마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엘 시스테마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것이 유명 음악가들을 배출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오케스트라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의 사회성을 키웠고, 이들은 곧 다양한 직종으로 스며들어 건강한 시민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숭고한 예술’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입니다. 그동안 학교 안팎의 예술 교육은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훈련된 측면이 많죠. 이제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인생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때가 아닐까요. 영상을 통해 만난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신만의 ‘음색’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음색’은 바로 ‘자존감’을 말합니다. 코로나로 어지러운 시기에도 악기를 놓지 않고 함께 호흡을 맞춘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기대가 되지 않나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_장혜선(월간 <객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