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을 지나며 세계 공연계에는 기다리던 봄이 왔습니다. 영국에서는 5월 17일 모든 공연장을 열었으며, 7월부터는 더 이상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형 공연들과 신작들, 젊은 프로듀서들의 ‘귀환’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쁨 속에서도 코로나 기간에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위기로 어쩔 수 없이 공연계를 떠나야 했던 동료들은 예상했던 것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들의 예술적 재능은 다른 분야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초부터 공연장 입장 수익을 늘리기 위해 백신 증명서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다른 모든 산업계의 표준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고, 프로듀서들은 팬데믹 보험 제도를 신설했으며, 가속화된 디지털(영상)화에 따른 디지털 저작권에 대한 논의 또한 발 빠르게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선택들 속에서 전 세계는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최근 아프리카에 시작된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은 모두를 다시 혼란에 빠트리고 있네요.
이런 흐름을 담아 지난 2021년 한 해와 다가올 포스트 팬데믹 시대까지 계속 이어질 공연계의 중요한 현안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공연 단체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해외 투어링 계약이 출국을 앞두고 하나씩 취소되었고, 특히 유럽 내에 감염자 수가 증가하면서 영국 공연 단체의 입국을 원천적으로 막기 시작해 최근까지도 재계약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연초부터 이런 단체들에서 ‘만약 백신 접종이 완료된 공연 단체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됐습니다.
초기에는 공연 문화계 단체에게 접종 우선권이 주어져 ‘안티 코비드 슈퍼 파워’를 가지게 된다면 국경을 넘어 예전처럼 활발한 투어링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하는 업계의 욕심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민이 백신 접종을 하게 되면 코로나19 사태가 점차적으로 해소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백신을 맞았다는 것을 어떻게 쉽게 증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대부분의 일상에 위험이 발생하면 증명을 하는 방식의 공식적인 ‘메커니즘’이 발동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하기를 원한다면 운전면허를 취득해 트레이닝이 끝났음을 보여주고, 국경을 넘어가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땐 여권을 만들어 보여주는 식이죠. 하지만 국가마다 다른 백신 접종엔 아직 신뢰, 국제적인 공인 방식,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이나 영미의 제작사는 작품을 만든 후 국내외 투어링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접 유럽 국가와의 공동 작업이 있을 경우, 계속해서 코로나 검사를 하거나 자가 격리를 위한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아도, 배우와 관객 모두가 백신을 맞은 상태라면 사회적 거리 두기도 필요하지 않을 테니 전처럼 안심하고 극장으로 돌아오는 효과가 기대되는데요.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여권의 실효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미 과거 30년 동안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공연 시장의 보험에서는 “Theatre Producer& Production Insurance”라는 상품이 ‘비스포크’로 출시되어 수많은 공연 제작사와 프로듀서들이 안심하고 작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당연히 ‘비스포크’ 방식으로 디자인되기 마련인데요, 공연 제작사 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 고용 및 일반 손해 배상, 공공 책임보험
– 장치 및 공연장 시설 손해 배상
– 천재지변, 불가항력, 날씨 기상악화, 질병으로 휴업, 취소, 영업 정지, 배우의 무단결석
– 지방 공연(국내외 투어링으로 이동 시 파손)
– 공연장 내부 사고
– 의료비 발생
– 사이버 위험(고의적인 예약 취소)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취소되는 작품의 손해 배상은 아직 논의 중입니다. ‘신종’이라는 용어를 두고 보험사에서 적용 여부를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험이라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보상할 수 있다는 상품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으니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팬데믹으로 산업계 위기가 지속되면서 영국 공연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공연 취소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면 공연계 정상화의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올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공연 제작사 보험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작업 중인 일부 프로듀서들과 투어링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독립 프로듀서 리그(The League of Independent Producers) 대표인 에드워드 스네이프는 이제부턴 자신들도 “보험 적용 없이 새로운 작품 제작이나 지방 투어링 공연 프로젝트는 시작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웨스트엔드 공연보다는 지방 자치단체의 갑작스러운 록다운 결정은 제작사에 어떠한 선택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민간 보험사에서 보험 상품 가입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면 공연 예술을 지원하는 새로운 방편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코로나 팬데믹 보험 제도를 신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공연의 디지털화(영상화)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온라인 스트리밍의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력해졌고 공연을 즐기는 한 방식으로 공연계에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온라인 공연이 극장 공연을 대체하는 게 아닐까’하는 일반적 염려는 이해할 수 있으나, 주장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런던과 뉴욕에서 문화 창조 산업 내 트렌드를 조사하는 ‘AEA 컨설팅’에서 2016년 영국 정부의 의뢰로 실시한 ‘극장에서 디지털 콘텐츠 개발이 관객, 제작 및 유통에 미치는 영향력 이해(Understanding the Impact of Digital Developments in Theatre on Audiences, Production and Distribution)’라는 연구 조사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반대의 결과를 도출한 바 있습니다. 이 연구는 공연과 관련해 그동안 발표된 논문과 표적 집단 조사, 인터뷰, 스트리밍 공연을 관람한 관객 조사, 각 극장별 케이스 스터디 등 폭넓게 진행된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자료입니다.

관객들은 스트리밍으로 본 공연에 매우 만족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했으나 ‘새로운 방식의 관람 형태’이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라이브와 디지털은 대립관계가 아님을 증명해 주는 조사처럼 보입니다.

관객들과 온라인으로 만난다는 것은 공연 예술가로서 단 한 번도 극장으로 불러오지 못했던 관객을 바로 내 발등 위로 초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만들어진 콘텐츠를 소셜 미디어나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풀어야 할 첨예한 문제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디지털 저작권입니다. 기존 저작권의 모든 내용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이 나오기 훨씬 전에 정리된 개념이라 현실에 적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금은 디지털 저작권이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포함해 앞으로 만들어질 작품까지도 온라인으로 소개해 관객들과 함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엔 기존 저작권(UK Copyright Designs and Patents Act of 1988) 외에 영상화의 상위 개념인 ‘공연예술이 디지털화되어 유통되는 경우’를 모두 포함시켜 놓은 것으로 ‘유통 저작권(Distribution Rights)’로 언급되기도 하는데요.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프로듀서와 개별 예술가들이 계약을 할 경우 검토해야 할 내용은 비교적 육하원칙(4W2H)에 근거해야 합니다. 아울러 영국에서는 계약서를 근거로 개별 예술가들이 소속된 각각의 조합에서 경험 있는 디지털 미디어 변호사의 조언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누가 어떤 권리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밝혀 둔 데이터베이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연계에서는 자신들이 참여한 작품에 디지털 유통이라는 상황이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예술가나 프로듀서들이 지극히 실용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으로 대면하길 권고하고 있답니다.

공연 제작에 필수적인 인력인 의상, 소품, 장치 디자이너가 되려면 정규 대학 교육을 받고도 현장에서 낮은 보수를 받으며 일정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 이런 시기를 잘 버티고 전문가가 된 숙련 장인들이 공연계에서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TV나 영화 산업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공연계 종사자가 영상 매체로 유출되는 현상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이 빠져나간 곳엔 자연스럽게 신입 디자이너들이 들어오면서 또다시 초보 저임금 노동이 반복되지요.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상황 변화가 더 빨라져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은 이런 움직임은 백스테이지 크루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배우, 연출가들에게까지 퍼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빠른 확산으로 새로 진입하는 젊은 예술인 세대 전체에 이런 경향이 보인다면 공연계에겐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됩니다. 지난 록다운 기간 동안 직업을 잃어버린 공연 프리랜서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매우 안정적이고 금전적 보상이 확실한 영상 매체에 자리 잡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작년 약 50%의 백스테이지 직원을 감축했던 영국 국립극장 측은 올 크리스마스 전까지 자신들이 보유한 세 개의 극장에 작품을 다시 올린다면 심각한 인력 부재가 예상된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비교적 큰 공연장을 운영하는 조직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장치, 소품, 의상 디자이너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팬데믹에 대비해 조직을 대폭 축소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연말까지 이런 인력을 모집하는 경향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얼마 전 런던에서 열린 공연예술 직업 박람회에 관심이 모아졌죠.

영국에서만 약 20만 명의 프리랜서 예술가들이 타격을 입었는데, 런던 극장협회는 이들을 지원하는 새로운 패키지와 세제 혜택이 제시되지 않으면 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을 기준으로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연간 1,200만 관객이, 런던 웨스트엔드는 약 1,500만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으며, 영국 전체로 확장하면 연간 3,400만 관객이 공연장을 찾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을 찾는 관객(2019년 1,450만)과 비교해도 약 2배 이상 높은 수치죠. 산업 규모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각각의 정부 기관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보다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도 적절한 수준의 지원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그대로 공연계를 떠날 듯합니다.

*본 내용은 해외 현장에서 공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현상을 지켜본 바에 의한 지극히 개인적 관점에서 순서 없이 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