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2021년 최고의 공연은?

2021년,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지만 밝은 미래를 그리며 많은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3명의 공연 전문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올해 최고 공연을 꼽았다.

연극 <천만 개의 도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이 연극은 올해 가장 아쉬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내용과 형식에서 더 톺아봐야 할 작품인데, 그만큼 주목받지 못해서요. 서울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47개의 숏폼 형식 장면으로 담아냈습니다. 보잘것없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공간들이 배경인데, 그 평범함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우리를 뭉클하게 만드는 것이 ‘평범한 삶에 끼어든 특별함’이 아닌, ‘특별한 삶에 비집고 들어온 평범함’임을 깨닫게 합니다. 특별한 서사 없이 서울에 사는 천만인의 삶을 눈부시게 만드는 천변만화의 풍경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평범함을 누리길 바라는, 현실이라 더 그리운 장면들이었습니다. <천만 개의 도시>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꿈꾸는 일’을 뜻하죠. 우리는 서울의 일상 속에서 ‘꿈꾸는 일’을 반복합니다.

연극 <천만 개의 도시>

뮤지컬 <아일랜더>,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비교적 길지 않은 기간에 소극장에서, 스타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올해 최고의 마니아를 양산한 수작입니다. ‘두 배우의 목소리로만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빚어냅니다. 두 배우가 별다른 악기 없이 직접 조작하는 루프 스테이션과 마이크를 통해 모든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루프 스테이션은 목소리나 연주를 즉석에서 녹음해 실시간으로 반복 재생하는 기계를 가리키는데요. 기계를 통한 아날로그적 상상력이 뮤지컬의 영역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내용적으로도 톺아볼 거리가 많아요. 신비로운 신화, 섬의 개발·미래를 논하는 현실을 아우르면서 우리가 당면한 환경 문제와 삶의 순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의를 담은 헌사입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LG아트센터

‘노래가 세상을 구원한다’로 요약 가능한 수작입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사랑 노래죠. 결말은 우리가 아는 신화 내용과 같아요. 하지만 마지막에 극의 첫 장면 ‘지옥으로 가는 길Ⅰ’이 다시 반복, 삶의 순환을 이야기하며 ‘그럼에도’라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특히 비슷한 또래의 두 여성 창작진은 신화에 전기 충격을 가한 것 같은 현대적인 새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지옥의 신’ 하데스는 적을 막겠다며 높은 벽을 세웁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인종·계급·빈부의 차별을 상징하죠. 뉴올리언스 재즈 기반의 넘버가 놀라운 이유입니다. 유럽과 현지인의 혼혈인 ‘크레올’의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섞인, 노동자의 연대곡이기도 합니다. 이 뮤지컬에서 유대감을 통한 용기가 돋보이는 이유죠.

글_이재훈(뉴시스 기자)

서울시합창단 <오월의 브람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성악은 ‘입김의 음악’이죠. 코로나 시국에 성악은 무대에 올리기 다소 부담스러운 장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주나 실내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서울시합창단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인 <오월의 브람스>는 이러한 시기에 접하기 힘든 목소리의 대향연이었어요.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 선곡의 안방을 차지한 이날의 공연은 원작에 담긴 우수함과 서울시합창단이 지닌 내공이 조화를 이룬 시간이었죠. 2악장 장송행진곡 조의 느낌이 시대의 우울과 맞물렸고, 3악장에서 양준모(바리톤)와의 호흡이 빛을 발했고, 5악장에선 박현주(소프라노)의 독창과 합창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작년부터 베토벤의 대작을 선보여 온 서울시합창단의 기획력과 노력이 돋보인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시합창단, <오월의 브람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 Ⅲ <대립과 조화:콘체르토>, 롯데콘서트홀

피아노, 아쟁, 첼로, 대금, 오르간이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하는 협주곡들을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김일구가 협연자로 오른 김일구류 아쟁 산조 협주곡(박범훈 작곡)에서 아쟁과 관현악단은 밀고, 달고, 맺고, 풀어가며 묘한 조화를 보여주었죠. 대금‧첼로 협주곡 ‘하늘을 향한 노래’(토마스 오스본 작곡)가 아니라면 대금과 첼로가 이렇게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오르간 협주곡 ‘삽화 속에’(김성기 작곡)를 연주할 때는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과 국악관현악단이 함께 그려낸 거대한 음향 속으로 관객들은 빨려 들어갔습니다. 국악 듣기의 색다른 묘미와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지휘하는 그는 지휘대를 점프대로 삼은 듯 도약과 분주한 동작으로 연주를 빚어 나갔습니다. 브람스 특유의 중력에 얽매이지 않았고, 경량화된 흐름과 속도감은 압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중후함과 무게감은 여전한, 한마디로 묘한 연주였죠. 이 공연을 선보일 때 코리안심포니는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가 공석이었는데요. 내심 그가 예술감독이 되면 코리안심포니로부터 ‘행복한 브람스’를 선물 받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소망이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11월에 코리안심포니 7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벨기에 출신 다비트 라일란트입니다. 이 공연에서 지휘한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도 감동의 눈물이 ‘핑’ 도는 명연이었습니다.

_송현민(음악평론가)

뮤지컬 <비틀쥬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뮤지컬 <비틀쥬스>는 팀 버튼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을 유쾌한 무대 언어로 새롭게 재현했습니다.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신작으로 발 빠르게 국내에 상륙해 뮤지컬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주었죠.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어 버린 기괴한 존재지만 애정과 관심에 목마른 비틀쥬스, 하루아침에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 그리고 그들의 집에 새로 이사 온 리디아 가족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판타지 세계로의 여행이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데요.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기발한 캐릭터들과 화려한 무대장치로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습니다.

뮤지컬 <비틀쥬스>

뮤지컬 <하데스타운>, LG아트센터

브로드웨이의 최근 흥행작 <하데스타운>의 라이선스 프로덕션은 2021년 국내 공연계에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어요.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 속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인간의 욕망과 자유, 사랑과 생존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죠. 회전무대를 적절히 활용한 담백한 세트와 밀도 높은 조명, 소규모의 캐스트는 서사의 몰입을 높이고 재즈와 포크, 블루스를 넘나드는 풍성한 음악은 ‘성스루(sung-though)’ 뮤지컬의 묘미를 배가하며 시종일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뮤지컬 <레드북>,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창작 뮤지컬 <레드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뛰어넘는 캐릭터와 서사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돈된 감동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주인공 안나의 당당한 행보는 다소 엉뚱하지만 누구보다 용감하죠. 슬픔을 잊기 위한 그녀의 ‘야한 상상’은 로렐라이 언덕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 ‘레드북’으로 출간되어 세상을 뒤집고, 편견에 맞서는 그녀의 단단한 용기는 틀에 갇힌 신사 브라운마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성공한 작가이기 전에 당당한 나로 살아가는 안나의 거침없는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더욱 솔직하고 용감한, 나를 위한 삶의 여정을 고민하게 합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_지혜원(연세대학교 객원교수, 공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