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세종예술아카데미 하반기 정규 강좌 ‘아트테크-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의
손영옥 강사에게 듣는 ‘아트테크’ 이야기.

“넌 몇 조각 샀니?”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고 합니다. 피자 이야기 같지만 아닙니다. 미술품 공동 구매(혹은 분할 구매)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수천만 원, 수억 원 하는 값비싼 미술 작품을 천 원, 만 원 단위로 쪼개서 살 수 있는 미술품 공동 구매 서비스가 최근 수년 사이에 등장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화가 그려진 캔버스를 물리적으로 자르지 않고도 피자를 한 조각만 쏙 빼서 사 먹는 것처럼 조각 단위로 살 수 있는 거지요. 첨단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조각조각 쪼개진 작품의 소유권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덕분입니다. 어쨌든 이제 친구에게 삼성전자 주식을 ‘몇 주 샀느냐’라고 묻는 것처럼 미술계 삼성전자라 할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몇 조각 샀느냐’고 묻는 게 일상이 돼버린 시대입니다.

지난봄 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 아트페어를 찾은 청년들이 작품을 구경하고 있다.
ⓒ손영옥

아트테크 뛰어난 MZ세대

올해 들어 미술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아트테크(아트+재테크)’ 열풍이 뜨겁습니다. 그 기세를 보며 역대 최대의 열기를 보였던 2007년 미술시장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볼 때, 새로운 현상은 미술품 공동 구매와 MZ세대의 진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품 온라인 경매회사인 서울옥션블루의 통계를 볼까요? 서울옥션블루는 1월 중순 미술품 공동 구매 플랫폼 SOTWO(소투)를 출범시켰는데, 가입자가 6개월여 만인 8월 첫 주말 현재 2만 2000명을 돌파했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가입 고객 중 95%가 MZ세대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옥션블루의 전체 회원 가운데 MZ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인 것과 비교하면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미술품 공동 구매는 주식으로 치면 10년 이상 장기 보유보다는 6개월∼1년의 단기 보유에 가깝습니다. ‘주린이’ ‘빚투’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킨 주역인 MZ세대는 이미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에 대한 투자 경험이 많아 미술품도 단기 투자 대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술품 공동 구매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서울옥션블루 외에 아트앤가이드, 아트투게더, 테사(TESSA)등이 있습니다. 서울옥션블루의 경우 조각당 1천 원, 2천 원에, 아트앤가이드의 경우 조각당 1만 원, 10만 원, 100만 원에 판다고 합니다.
서울옥션블루 소투 가입자들이 공동구매한 작품 수는 이우환, 천경자, 쿠사마 야요이 등 234점, 공동 구매 총액은 138억 5747만 원에 이릅니다. 대체로 환금성이 높은 작가 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매각률은 73%, 작품 매각까지의 평균 보유 기간은 39일을 기록했습니다. 수익률은 평균 17%라고 합니다.

이우환, <대화>, 캔버스에
유채와 광물질,
194.6☓161.3cm, 2006.

쿠사마 야요이, <호박>,
캔버스에 아크릴릭,
15.5×22cm, 2004

이우환과 쿠사마 야요이는 미술품 공동 구매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다.

그런데 MZ세대는 공동 구매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미술품 투자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옥션은 오프라인 행사장에서 분기별로 메이저 경매를 엽니다.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가 상대적으로 저가의 미술품을 온라인으로 경매하는 것과 달리 수천만 원, 수억 원 하는 작품을 현장에서 경매합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통상 사회적으로 지위가 안정된 중년이나 노년층이 주 고객이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부터 전에 보지 못했던 30∼40대 새로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전합니다. 기자인 저도 취재 현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3월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를 취재하러 갔을 때입니다. A 화랑 부스 앞에서 직장 3년 차 28세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트테크에 관심이 많다. 그림 구매는 부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신진 작가 작품은 저 같은 20대도 살 수 있더라”면서 “그들 작품을 하나둘 사다 보면 안목도 기를 수 있고, 보다 가치 있게 재테크를 할 수 있어 좋을 거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산을 물어봤더니 “그래도 500만 원대는 돼야 앞으로 가치가 오를 수 있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되묻더군요. 어떤 50대 주부로부터 유럽 여행 갈 경비를 아껴 500만 원으로 그림 사겠다는 얘기를 들은 게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직장 초년생인 20대가 첫 그림 구매 예산으로 500만 원을 염두에 두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 ‘파라솔을 쓴 여인’(1875).

우리는 왜 그림을 살까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는 취향이 신분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대중문화인 영화가 아닌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등 고급문화를 관람하는 데는 취향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고나 할까요. 끊임없이 남과 나를 차별화하고자 명품을 사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을 구매한다는 것은 여러 문화 중에서 가장 고급한 취향이 아닌가 싶어요. 무엇보다 그림값은 엄청 비싸서 아무나 컬렉터가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근대에는 왕이나 왕족, 귀족이, 근대에 와서는 상업으로 돈을 번 부르주아들이 그림 수집가 층이었지요. 그림 구매에는 상류층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의 RM이 벙거지를 쓰고 그림을 감상하는 뒷모습은 우리 시대 가장 ‘간지 나는’ 문화적 행위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미술품 몇 조각을 샀을 때는 주식 투자가 결코 주지 못하는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한 주 샀어!’라고 할 때보다 ‘이우환 작품 몇 조각 샀어!’라고 내뱉을 때 투자 행위에 문화적 장식처럼 곁들여지는 효과가 있는 거지요. 좀 고상해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런 심리를 가장 적확하게 지적한 사람은 헝가리 태생의 미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입니다. 하우저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그림 매매 시장이 성행한 이유를 분석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보다 상류층 사람들이 그림을 샀기 때문이고, 그림으로 집안을 꾸미면 고상해 보였기 때문이며, 또한 그림을 샀다가도 되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가요? 그림을 사면 집안 장식이 되는 실용적인 목적을 충족시켜 주고 나아가 투자도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류층의 그림 구매 문화를 모방함으로써 신분 상승감을 안겨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독서도, 영화 감상도, 오페라 감상도 줄 수 없는, 그림 구매만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인 ‘아를의 병동'(1899)

아트테크, 이건희 회장도 공부했다

아트테크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습니다. 아트테크는 주식투자보다 어렵습니다. 우리가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살 때 그 기업의 업황과 재무제표, 거시경제 지표 등 비교적 상식적인 수치에 근거해서 그 기업의 미래 가치를 따집니다. 신문 기사나 애널리스트 분석 보고서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 작품은 ‘특수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적습니다. 미술 잡지가 있지만 전문적이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행에 휩쓸려 투자한 미술 작품이 테마주처럼 10년 후 가격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아예 휴지 조각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림 지식을 쌓아 안목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세종예술아카데미 하반기 정규강좌로 개설된 ‘아트테크-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에서 미술품 구매 노하우와 함께 서양미술사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식도 그렇지만 미술 작품도 미래 가치를 보고 사야 합니다.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작품은 잘 그린 그림, 예쁜 그림이 아닙니다. 좋은 그림입니다. 좋은 그림은 ‘새로운’ 그림입니다. 특정 작가와 그가 그린 작품이 미술사의 전통에 어떤 혁신을 가져와 새롭게 미술사에 편입될 때 그것은 좋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영옥 강사는 ‘아트테크-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강의가
미술에 흥미를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압니다. 하지만 그들이 장르상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흐에 얽힌 시시콜콜한 뒷얘기가 아닙니다. 고흐의 개인적 불행이 미술사에 어떤 혁신을 가져왔는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입니다. 컬렉터로서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미술품 수집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열성적으로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백자 선생’으로 모신 우당 홍기대 선생에게 배울 때는 아내 홍라희와 함께 우당이 사는 이태원 뒷골목 자택으로 찾아가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제 강의가 여러분이 미술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삶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디즈니 영화음악이 공연으로 찾아온다. 멋진 영상과 오케스트라 연주의 절묘한 만남을 선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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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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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_손영옥(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