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나의 ‘세종 톱텐’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1.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아 리사이틀(2004)

완벽주의와 프로정신이 만나 예술이 됐던 무대. 2004년 10월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본 마리엘라 데비아는 절대적 위상의 소프라노인 ‘소프라노 아솔루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로시니 ‘탄크레디’, 벨리니 ‘카풀레티와 몬테키’, 도니제티 ‘안나 볼레나’, ‘샤모니의 린다’ 등의 아리아와 예술가곡을 들을 수 있었다. 데비아는 신들린 듯 자신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조이고 풀었다. 흠결을 찾아볼 수 없이 선명하고 요철이 딱딱 들어맞는 천의무봉의 노래였다. 데비아의 완벽에 가까운 가창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찔했다. 앙코르였던 잔니 스키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나는 꿈속에 살고 싶어요’가 끝나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내던 장관을 잊지 못할 것이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마리엘라 데비아 리사이틀(2004) 프로그램북(왼쪽)과 <문화공간> 2004년 10월호(오른쪽)

2. 파비오 루이지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2009)

1548년 창단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현존하는 오케스트라 가운데 1448년 설립한 덴마크 왕립 오케스트라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됐다. 1995년(시노폴리), 2000년(시노폴리), 2006년(정명훈) 이후 네 번째 내한공연이었다. 까다로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열정적이고 추진력 넘치며, 종종 신경질적이고, 한없이 투명하고, 움직임이 많으면서도 정확하다고 설명한 파비오 루이지의 지론대로 디테일과 유머, 구조를 잘 살린 연주였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의 떨림은 지축을 흔들었고, 그에 조응하던 현과 관은 장엄했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파비오 루이지(왼쪽)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2009년 공연 사진

3. 오자와 세이지 지휘 빈 필하모닉(2004)

2004년 2월 28일과 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재개관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로비에는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새롭게 단장한 대극장과 빈 필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포디움에는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하는 오자와 세이지가 올랐다. 오자와는 광기를 띤 부분과 급격히 템포가 빨라지는 부분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에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은 크나퍼츠부쉬나 클렘페러처럼 큰 스케일을 도모하거나 요훔처럼 단단한 골조를 세우지 않고 투명한 자재를 써서 곡의 모양을 분해해 명쾌히 설명하는 접근을 채택한 듯했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현과 관의 절도, 쩌렁쩌렁한 금관악기의 포효가 세종문화회관에 울려 퍼졌다. 둘째 날 메인인 브람스 교향곡 1번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R.슈트라우스의 ‘돈 후안’과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랩소디’는 빈 필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현의 질감은 고급스러웠으며 목관은 청아하고 금관은 투명했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문화공간> 2004년 2월호와 3월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성 토마스 합창단 공연 소식

4.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성 토마스 합창단(2004)

비 내리는 바다를 보는듯한 감동적인 무대였다. 바흐 마태수난곡 1부의 제1곡 합창 및 코랄 ‘오라 딸들아 와서 나를 슬픔에서 구하라’가 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왈칵 눈물이 밀려왔다. 무대 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두 부분으로 분할돼 있었다. 가운데 위치한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중심으로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주자들이 제1오케스트라와 제2오케스트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외에 오보에, 바순, 류트, 첼로 주자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성 토마스 합창단원의 연령 분포는 8세에서 18세에 이른다. 소년들이 맑은 음성으로 부르는 소프라노와 알토, 그들의 미래 모습인 테너와 베이스들도 각각 둘로 나뉘어 노래를 주고받으며 입체적인 음향공간을 만들어냈다. 복음사가 마르틴 페촐트는 읍소하는 슬픔과 당당한 위풍으로 곡의 행선지를 정확히 짚었다. 소프라노 우테 젤비히는 아리아 ‘사랑 때문에’에서 천사의 연주가 아닐까 눈을 의심케 한 플루트의 미성과 함께 뛰어난 가창을 선보였다. 알토 수잔네 크룸비겔은 가장 잘 알려진 아리아인 ‘긍휼히 여기소서’에서 매우 절제된 느낌으로 노래했다. 마지막 합창 ‘눈물에 젖어 무릎 꿇고’가 끝나고,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는 지휘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경건함을 마무리하는 정적의 순간이다. 이때 터져나온 성급한 박수가 옥에 티였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베를린방송교향악단(2011) 프로그램북

5. 조성진 협연 마렉 야노프스키 지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2011)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던 베를린 필에서, 아벤트로트가 지휘하던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에서, 혹은 카일베르트가 지휘하던 밤베르크 심포니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2011년 10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공연은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세 번째 내한 무대였다.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으로 포문을 열었다. 보헤미아 삼림의 초목 냄새가 묻어나는 푸근한 호른 연주에 이어 숙명적인 어둠을 드리운 채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의 산맥을 굽이굽이 지나갔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한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에서는 1악장에서 주도권을 조성진이 쥐고 야성적이고 남성적인 측면을 모색했다가, 3악장에 와서는 야노프스키의 카리스마가 압도했다. 앙코르로 들려준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은 훨씬 더 자발성이 배가된 연주였다. 인터미션 후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질풍노도의 사조가 휩쓸던 18세기 고전주의 시대 교향곡의 이디엄이 녹아있었다.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자로서 브람스의 측면을 잘 드러냈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홍혜경과 친구들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2004) 프로그램북

6. 홍혜경과 친구들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2004)  

소프라노 홍혜경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노련함으로 공연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았다. ‘라 보엠’ 중 ‘무제타의 왈츠’나 들리브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등은 기품이 있었다. 앙코르 ‘그리운 금강산’은 코끝을 시큰하게 했다. 제니퍼 라모어는 ‘카르멘’ 중 ‘집시의 노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 음성’, 홍혜경과 함께 한 ‘노르마’ 중 ‘보라 노르마여 그들의 무릎을’ 등에서 고음에 강한 메조소프라노로서 힘과 기교를 마음껏 보여줬다. 몰타 출신의 1978년생 테너 조셉 칼레야의 아련하게 울리는 비브라토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한 컨트롤은 아무리 칭찬해도 아깝지 않았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문화공간> 2000년 8월호, 볼쇼이 오페라단 내한공연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 소식

7. 볼쇼이 오페라단 내한공연 스페이드의 여왕(2000)

러시아 예술의 종합선물세트, 그 위력을 실감한 무대였다. 마르크 에름레르가 지휘하는 볼쇼이 오케스트라는 성악가들을 돋보이게 했다. 쿠즈네트소프나 그리고리예프 같은 성악가들의 가창은 놀라웠다. 2막의 목가극에는 화려한 무도회가 등장했고, 발레 장면은 러시아 본토에서 느끼는 듯한 순간이었다. 가수들의 노래, 중후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황홀한 음과 무대장치 속에서 4시간이 금방 지나간 무대였다.

8. 켄트 나가노 지휘 몬트리올 심포니–오케스트라(2008)

샤를 뒤투아가 세계적으로 키워낸 프랑스어권 오케스트라가 향기롭고 색채감 넘치는 공연을 펼쳤다. 첫날에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과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라벨 ‘볼레로’를, 둘째 날은 드뷔시 ‘바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쿄향곡’을 연주해 특유의 미묘한 음향을 뽐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협연하며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공연이기도 했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1978년 개관 이후 수많은 명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음악 평론가 류태형이 ‘내 인생 최고의 세종 공연 10개’를 꼽았다.

살바토레 리치트라 특별 초청공연(2008) 프로그램북

9. 살바토레 리치트라 특별 초청공연(2008)

파바로티의 대타로 무대에 올라 스타가 된 테너. ‘지는 해’였던 스리테너를 잇는 ‘뜨는 해’ 리치트라의 두 번째 무대였다. 후두염을 겪고도 여전히 힘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월드 클래스 무대였다. 1부에는 오페라 아리아를, 2부에는 ‘물망초’,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 귀에 익은 곡들을 불렀다. 파바로티는 2007년 별세했고, 리치트라도 2011년 스쿠터 사고로 세상을 떠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10. 포플레이 내한공연(2002)

포플레이는 1991년 밥 제임스·네이던 이스트·하비 메이슨과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 등 쟁쟁한 명인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퓨전 재즈의 슈퍼밴드다. 1997년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리 릿나워가 탈퇴했지만, 그의 빈자리를 기타 명인 래리 칼튼이 메웠다. 9·11테러 1주년을 맞은 날, 포플레이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호쾌한 리듬은 감칠맛을 띠었고, 감미로운 발라드는 대중성을 보여줬다. 피아노와 키보드를 오가며 또렷한 라인을 만들어내는 밥 제임스의 건반은 명성대로였다. 톡톡 튀는 네이던 이스트의 슬랩 베이스 진행은 경쾌했다. 구름 위를 나는 듯한 래리 칼튼의 기타는 애드리브로 많은 이야기를 던졌다. 하비 메이슨은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드럼 세트 위에서 손과 발을 문어발처럼 움직였다. 스틱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삶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디즈니 영화음악이 공연으로 찾아온다. 멋진 영상과 오케스트라 연주의 절묘한 만남을 선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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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_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