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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모자를 쓴 여성의 위로

세종문화회관 광장에 놓인 아름다운 여성 두상 조각 작품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녀의 정체는?

지금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스럽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아픔을 위로하듯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씽긋 인사하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라 파멜라(La Pamela)’. 이 프로젝트는 2020년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이는 ‘야외 공간 큐레이팅’의 하나로 진행한 설치작품이다. 

한국과 스페인의 수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페라갤러리의 지원 아래 설치된 <라 파멜라(La Pamela)>는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럭셔리한 방돔 광장과 싱가포르의 가든 베이,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 등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장소에 들렀다가 세종문화회관 광장으로 왔다. 설치 기간이 끝나는 6월 28일 이후로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이 작품을 만든 조각가는 세계적인 설치 작가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한 명인 마놀로 발데스(Manolo Valdés)다.

세계적인 설치 작가의 작품이 세종문화회관 광장에

1942년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마놀로 발데스는 1957년 산 카를로스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64년에는 요한 톨레도(Joan Toledo)와 라파엘 솔베스(Rafael Solbes) 등과 정치적 예술가 그룹 ‘에퀴포 크로니카(Equipo Crónica)’를 결성했다. 이들은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이 세운 파시스트 정권의 정치적, 사회적 행태를 유머와 아이러니를 결합해 비판하는 작품들을 제작해 스페인에 소개하는 선동적인 그룹의 작가들이었다.

마놀로 발데스는 거장 화가들의 작품 속 인물의 얼굴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한다. 

뉴욕과 마드리드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발데스는 1979년 도쿄에서 열린 제2회 국제 프린트 비엔날레에서 은메달을 받았으며 리스본의 브리지스톤 미술관 상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미술을 위한 국가 상 수상, 1993년 베네수엘라의 안드레스 벨로 훈장 수훈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하는 마놀로 발데스 작품의 예술적인 특징은 미술사를 빛낸 거장 화가들인 벨라스케스, 루벤스, 피카소 마티스, 렘브란트, 고야, 모딜리아니, 반 동겐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스페인 거장의 명화 속 여성 인물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을 강력한 단순화로 추상화하면서 기념비적 조각품을 창조하곤 했다. 또한 발데스는 여성의 얼굴을 표현한 대형 조각품 외에도 100개의 접시 조각을 엮는가 하면 <푸른 가면> 같은 작품에서는 알루미늄으로 청색의 얼굴을 제작해, 인물의 다양한 표정으로 차별성을 보여왔다. 

특히 그는 마티스의 작품 속 여성을 직접적으로 차용하거나 벨라스케스의 작품인 <마가리타 공주> 등을 재해석해 콜라주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에 설치한 작품에서는 모자를 쓴 여성의 얼굴 위로 수많은 잎사귀들이 교차하는 장식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수많은 팬덤을 형성했다.

©MANOLO VALDÉS

마놀로 발데스, <La Pamela>, 2015, 알루미늄, 385×680×680cm

명화  속 여성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조각 작품들

발데스는 순수예술가답지 않게 정치적, 사회적 의무와 유머, 아이러니를 예술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미술사에 깊이 각인된 의미 있는 이미지를 다시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향수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독창적이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항상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마놀로 발데스의 작품은 강력하고 역사적인 예술 경계표로서 전 세계 주요 장소에 설치되는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유명한 작품의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곤 했다. 발데스가 ‘살아있는 피카소’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78세. 발데스는 젊지 않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매력적이다. 동시대 이미지를 차용하며 항상 새로운 작업을 통해 시대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발데스 작품의 매력이다. 발데스의 작품에는 팝적인 요소와 이미지, 재료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헌신과 재창조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작가 철학이 녹아있다.

흥미로운 파멜라 모자의 형태와 유래

<라 파멜라(La Pamela)>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성의 두상이다. 높이가 무려 6m를 넘는 대형 작품으로, 소재는 알루미늄이다. 작가는 공원에서 모자 쓴 사람 머리 위로 나비가 날아든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과 모자를 조립한 이 작품의 특징은 당연히 있어야 할 눈ㆍ코ㆍ입 등 여성의 구체적인 형상은 없고, 널따란 모자의 챙 아래로 음영이 드리워지면서 형태를 드러낸 것이다. 생략을 통한 단순미와 얼굴과 모자를 결합하는 방식의 재해석이 이 작품의 진면목이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잔 에뷔테른>이나 마티스의 <하얀 깃털>에 등장하는 여성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라 파멜라>는 코로나19 사태에 지친 우리에게 ‘아름다운 위로’를 건넨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파멜라’ 모자다. 파멜라 모자는 1842년에 ‘리본으로 정돈한 굵은 짚으로 만들어진 반 집시 모자’로 정의되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자의 이름은 작가 사무엘 리차드슨이 1741년에 발표한 <파멜라(Pamela)>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파멜라 모자의 형태는 다양하게 변화해왔지만 항상 짚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파멜라 모자는 가장자리가 작은 버전으로, 이런 형태의 파멜라 모자는 1810년대에 널리 착용되었다. 

서울시민에게 선물하는 기념비적 작품

세종문화회관 김성규 사장은 <라 파멜라>를 공개하면서 “서울시민에게 세계적인 거장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허브인 세종문화회관이 ‘복합문화예술공간’이라는 정체성을 단단하게 유지하면서 시민의 공감을 얻는 전시를 늘려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런 취지는 묘하게도 마놀로 발데스가 남긴 명언과 그대로 일치한다. “누구나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작가의 메시지에 ‘격하게’ 공감한다.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 기념특별전
<마놀로 발데스 야외 조각>
기간 :  2020.03.09(월) ~ 2020.06.28(일)
장소 :  야외 전시
시간 :  야외 전시
연령 :  전연령 관람 가능
티켓 :  무료

한시 낭독과 거문고 연주로 이뤄진 프롤로그.

태평소 협주곡 ‘태평’을 연주하는 성시영의 무대.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 기념특별전
일정 :  2020.03.09(월) ~ 2020.06.28(일)
장소 :  야외 전시
시간 :  야외 전시
연령 :  전연령 관람 가능
티켓 :  무료

글 | 김종근(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