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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크리스마스>, 벌써 10년

올해도 우리 곁을 찾을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스테디셀러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지난 10년을 돌아보았다.

예술계에 아이들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여러 예술 단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국립극단은 2011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세워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극을 실험했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어린이·청소년 무용 레퍼토리 개발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현재 워크숍과 포럼 등 단계적인 노력을 거치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어린이 무용 <루돌프>를 올릴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어린이 음악극이 화두에 올랐다. 초기에는 뮤지컬 형식이 주를 이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뮤지컬 <보물섬>이 세종문화회관에 올라 상업적인 성과를 보았고, 이후 공중파 방송국은 경쟁적으로 어린이 뮤지컬을 올렸다. 여러 극단에서도 어린이 작품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스토리 구성이 빈약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사다리’ 같은 어린이 전문 극단이 등장해 장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리고 2010년,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은 <왕자와 크리스마스>를 선보였다. 초연 때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2015년엔 쇼와음대 초청을 받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공연을 올렸다. 지난 10년 동안 매해 공연되며 세종문화회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을 무려 10년이나 건재하도록 한 힘은 무엇일까?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어린이 음악극의 새로운 장을 열며 흥행을 이어갔다. 2010년, 2012년 공연 모습.

#2010년, 초연

시작은 ‘합창’을 중심으로 한 뮤지컬이었다. KBS2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합창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던 시기였다. 2010년,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은 ‘합창뮤지컬’을 표방한 <왕자와 크리스마스>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2010.12.18~19)와 북서울꿈의숲(2010.12.25~26)에 올렸다. 전석 매진될 정도로 가족 단위 관객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어린이 음악극을 향한 대중의 관심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작곡가 이건용, 극작가 노선락, 대학로에서 화제가 된 뮤지컬 ‘쓰릴미’의 연출가 이종석이 함께했다. 드림팀으로 결성된 제작진 덕분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음(音)과 조화를 이루는 대본

대본을 쓴 노선락은 주로 어린이 작품을 많이 선보여 왔다. 10~30개월 연령의 영유아가 볼 수 있는 <달>, 연주자들이 연기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땅속 두더지 두디>, 동요 뮤지컬 <외할머니 댁에서의 여름방학> 등 이색적인 작품을 구성했다.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노선락이 처음으로 대본을 쓴 작품이다. 그는 스승인 이건용의 제안으로 이 공연에 합류했다. 그리고 음악극은 ‘음악을 잘 이해하는 작가’가 대본을 쓰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작곡을 전공한 노선락이 쓴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노랫말 한 절 한 절이 음과 조화를 이룬다.

해학적인 노랫말과 실제 이야기가 음악에 맞춰 흥미롭게 펼쳐지는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2013년, 2015년 공연 모습.

#역사를 고증한 대본

지나치게 교훈적인 내용에만 치우쳤다면 오히려 흥미를 놓쳤을 테다.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1910년 조선의 덕수궁과 양이재 등 실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양 학문이 유입되던 시기의 궁궐 문화, 일제의 잔혹한 압박 등 혼돈의 시기를 오롯이 담았다. 초연 때는 극장 로비에 역사 사진을 전시하며, 10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해학을 담은 노랫말

“A~ 에이는 삿갓에 띠를 둘렀네.
B~ 비는 3자에 작대기 그렸고,
C~ 씨는 왼쪽 귀를 그려보자”.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노랫말은 말 그대로 디테일이 살아있다. 위의 가사를 보면 알파벳을 처음 접한 민중이 생각했음직한 표현이 온전히 반영됐다. ‘고깃국에 흰 쌀밥 실컷 먹어 봤으면’이라는 합창에도 시대상을 면밀히 담았다. 경쾌한 선율과 어우러지지만 마냥 즐거울 순 없는 우리의 시대상.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노랫말에는 해학이 가득해 듣는 재미를 준다.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형식에 변화를 주며 음악적, 무대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2016년, 2017년 공연 모습.

#형식의 변용

2011년에는 안무가 최진한이 창작진으로 더해지며 초연 음악극보다 무대 구성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2012년 무대는 ‘합창뮤지컬’이 아닌, ‘어린이합창오페라’로 선보였다. 오페라 연출가 정선영의 합류가 큰 이유였을 테다. 2016년에는 ‘오라토리오’로 장르를 탈바꿈했다. 당시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 재직하던 이건용은 <왕자와 크리스마스>를 과감히 개작하고 선율을 새롭게 보완했다. 오라토리오는 독창보다는 합창이 중시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극의 진행을 일정한 음높이로 낭송하는 것이 특징이다. 합창과 주요 독창은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불렀으나, 서울시합창단 일부 단원이 객원으로 협업했다. 덕분에 음악적 완성도는 한층 높아지게 된다. 더불어 동화구연가 이규원이 합류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2017년에는 안무가 최진한이 창작진으로 더해지며 무대 구성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지난 10년간 받은 사랑만큼 성장한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앞으로도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왕자와 크리스마스>는 10년 동안 차근차근 공연물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현재 다양한 예술 단체들이 미래 세대 관객 발굴을 위해 어린이 작품을 고안하고 있지만, 이제는 양보다 질적인 성장을 모색할 시기다. <왕자의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성과는 부단히 작품을 개발하면서 질 높은 어린이 음악극을 완성시킨 것이다. 더불어 10년간 <왕자와 크리스마스>와 함께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도 성장을 이뤘다.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왕자와 크리스마스>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간의 행보를 보며 짐작하건대, 즐길 요소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놓치면 아쉬운 공연이다.

<왕자와 크리스마스>
일정 :  2019.12.20 (금) ~ 2019.12.21 (토)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금 오후7시30분 / 토 오후3시, 오후7시 (공연시간 : 115 분 / 인터미션 : 15 분)
연령 :  만 6세 이상
티켓 R석 30,000원 / S석 25,000원
할인 :  세종유료회원 40%~35%할인

_장혜선(월간 <객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