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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의 음악적 참회록 <작은 장엄미사>

11월 7일 열리는 서울시합창단 제154회 정기연주회는 지금까지 만나기 어려웠던 로시니 만년의 걸작에 주목한다.

미사곡은 가톨릭미사를 거행할 때에 사용하는 미사 통상문 즉 기도문을 가사로 하여 작곡한 작품이다. 서양음악은 가톨릭과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유명 작곡가들이라면 종교와 음악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미사를 통해 자신의 예술성과 종교심을 드러내곤 했다. 그중 ‘장엄미사’는 여러 악기와 합창이 함께 하는 말 그대로 ‘장엄’한 느낌으로 신을 찬미하는 음악이었다.

게으른 작곡가의 만년 대표작

이탈리아의 한 천재 작곡가는 조금 남다른 ‘장엄미사’를 작곡했다. 이름 하여 <작은 장엄미사>. 제목 자체가 모순적이다. 마치 “함께 하기는 하되, 같이 하는 건 아니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희극적 아이러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작은’과 ‘장엄’이라는 정반대의 단어를 통해 묘한 분위기의 음악을 만든 이는 이탈리아의 천재 작곡가, 혹은 ‘이탈리아의 모차르트’로 불리던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였다. 그는 오늘날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로도 유명한 로시니는 작품을 쓰는 데에도 통이 컸다. 이 천재 작곡가가 19년 동안 작곡한 오페라는 서른여섯 편. 1829년 그가 은퇴를 했을 때의 나이는 겨우 서른일곱에 불과했다. 영광의 은퇴작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빌헬름 텔>이다. 이 작품은 오페라로 만나긴 힘들어도 그 서곡은 오늘날에도 여러 공연의 막을 여는 데 긴요하게 연주된다.
그의 은퇴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시니의 엄청났던 게으름은 그의 은퇴를 앞당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는 주로 침대에 누워 주로 작곡했는데, 악보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져도 줍기가 귀찮아 새로운 종이에 다시 적었다곤 한다. 공연을 코앞에 두고도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며 늑장을 부리는 통에 극장주가 그를 가두어놓았다고도 한다.
1829년에 한번 은퇴했던 그가 1855년 다시 음악계로 돌아와 정착한 곳은 파리였다. 오페라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와 음악을 엮었던 로시니는 예술의 도시에서 다시 가곡과 실내악 작품들을 써냈다. <작은 장엄미사>는 그의 만년의 대표작으로 1863년에 작곡되어, 1867년에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 작품이다.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천재 작곡가다. Igor Bulgarin / Shutterstock.com

성당에서 금지되었던 미사곡

서울시합창단은 2018년 로시니 서거 150주년을 기념해 2018-2020 시즌에 로시니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2018년은 <글로리아 미사>를 국내 초연했으며, 올해는 <작은 장엄미사>다. 2020년에는 <스타바트 마테르>를 선보일 예정이다.
‘장엄미사’란 말 그대로 ‘장엄’한 느낌의 미사곡이다. 그런데 ‘작은’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이는 보통의 ‘장엄미사’보다 작품 분량과 규모가 비교적 ‘작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악가와 악기의 수는 일반적인 장엄미사보다 작은 편성이다. 로시니는 악보에 “12명의 성악가, 4명의 솔리스트, 두 대의 피아노 및 하모늄 편성이면 충분하다”고 적어 넣었다.
“내가 죽으면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오케스트라버전으로 편곡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로시니는 자기 스스로 증보판을 내놓는다. 두 대의 피아노와 ‘작은 오르간’이라 불리는 하모늄은 오케스트라로 변신했다.
미사(Mass)란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이다. 신을 향한 목소리와 악기가 더 많아졌으니 화려하고 그 영광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지만, 증보판은 성당의 제재를 받았다. 소프라노의 아리아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성당은 여성들이 미사곡을 연주 할 수 있도록 허가하지 않았다. 성당을 울리는 소년합창단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시니는 교황에게 성당에서 ‘작은 장엄미사’가 여성의 목소리로 연주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되었고, 증보판이 자신의 사망 후에만 연주 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증보판으로 다시 태어났던 ‘작은 장엄미사’의 첫 연주는 로시니가 사망한지 3개월 만인 1869년 2월 24일 파리에서 연주되었다.

피렌체에 위치한 로시니의 무덤. <작은 장엄미사>는 작곡가가 죽기 전 남긴 일종의 음악적 참회록이었다.

로시니의 음악적 참회록을 감상할 드문 기회

오페라에 대한 로시니의 천부적인 재능이 살아 있는 이 곡은 자중하고 엄숙하며, 극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였던 만큼 선율들의 자태도 빼어나다.
그런데 이 미사곡은 성당을 위해 쓴 곡이 아니었다. 그래서 초연도 성당이 아니 파리의 어느 살롱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 곡을 왜 작곡했던 것일까? 아마도 천국으로 가기 위한 ‘음악의 차표’였거나, 혹은 ‘음악으로 쓴 참회록’이 아니었을까? 그는 이 곡을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 여기 이 미사곡을 보십시오. 제가 방금 성스러운 음악을 썼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죄스러운 음악을 썼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오페라 부파(코믹 오페라)를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저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고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옵소서.”

서울시합창단의 공연 모습.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작은 장엄미사>기 서울시합창단을 통해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합창단의 ‘명작 시리즈’로 펼쳐지는 이번 무대는 국내 무대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힘든 <작은 장엄미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두 대의 피아노와 ‘작은 오르간’인 하모늄으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울시합창단은 증보판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오르간이 함께 연주한다. 이 곡을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그것도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른바 로시니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서울시합창단의 강기성이 지휘를 맡은 이번 공연에는 미성의 성악가들이 함께 한다. 201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소프라노 서선영을 비롯하여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이원준, 바리톤 이광희, 오르가니스트 김은희, 그리고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함께한다.
<작은 장엄미사>는 분명 종교곡이다. 그의 전성기에 이 곡이 나왔다면 로시니가 뽑아낸 신앙의 선율들은 그의 오페라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장엄미사>는 그가 만년에 힘을 빼고 쓴 작품이다. 어떤 관조의 미학과 세월을 이겨낸 자의 여유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가을날의 헐거운 바람과도 닮아 있다.

서울시합창단 `명작시리즈II`
일정 :  2019.11.07 (목) ~ 2019.11.07 (목)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오후7시30분 (공연시간 : 120 분 / 인터미션 포함)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B석 10,000원

송현민(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