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그들이 전하는 첫번째 선율

깊어가는 가을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국악 관현악 작품 다섯 곡이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

새로운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의 더운 바람은 어느덧 물러가고, 가을의 정취가 도시를 감싼다. 9월 25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는 깊어가는 가을밤에 더없이 어울리는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의 타이틀 <첫선음악회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이 음악회의 중요한 정체성이 담겨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할 아름다운 선율은 모두 초연곡이다. 그날밤 처음으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작곡가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토록 귀한 자리에 얼마나 다채로운 세계가 담겨있을지 미리 살펴본다.

첫선음악회라는 특별한 명명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국악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하여 1965년 창단되었다. 정기공연이 340회, 특별공연이 2000여 회에 이를 정도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무대를 완성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관현악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역할은 단지 전통문화의 계승에 그치지 않았다. 국악이라는 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음악, 동시대의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국악이라는 예술의 범위를 꾸준히 넓혀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상에 첫 선을 보일 음악을 소개하기에 앞서 ‘첫선음악회’라는 명명에 담긴 의미를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첫선음악회에는 단순한 초연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자 창작음악의 종가로서, 국악관현악의 발전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첫선음악회의 전곡을 초연 작품으로 위촉해 구성했다. 창작 국악관현악의 활성화를 위한 시도다. 창작 국악관현악은 아직 낯선 장르다.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초연’이라는 전문 용어 대신 ‘첫선’을 제목으로 정했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통해 가을의 풍성한 음악회로 발길을 이끌기 위해서다. 한국의 혼이 담긴 선율과 당대의 감각이 어울린 이번 공연에는 총 다섯 곡의 창작 국악관현악이 초연될 예정이다.

관현악 연주곡,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담다

첫선음악회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연주곡은 달항아리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린 작곡가 강상구의 ‘달항아리’, 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천마를 그린 작곡가 이문석의 ‘천마도’, 붉은 달을 음악으로 그린 작곡가 이정호의 ‘적월’ 세 곡으로 이어진다. 작곡가 강솔잎이 완성한 국악 뮤지컬 곡 ‘영웅’과 평화와 생명의 시대를 노래하는 ‘태평’ 또한 곁들여진다. 다섯 작곡가들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이 시대를 살아가며 가져야 할 희망을 다양한 악곡 형식에 담았다.
가장 먼저 연주되는 곡은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의 귀한 보물이자 김환기의 작품으로 형상화된 소중한 예술품이다. 둥근 달부터 어머니의 넉넉한 품까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작곡가 강상구는 그 순백의 너그러움을 국악 선율로 형상화하며, 전통적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하룻밤 여정의 첫 기수를 담당했다. 2014년 서울 아리랑 페스티벌 개막식,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등 주요 국가 행사에서 음악 감독을 맡아온 강상구의 저력을 아름다운 관현악곡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달항아리’에 이어 협주곡 ‘천마도’가 울려퍼진다. 지금까지 약 1000곡을 작, 편곡하며 다양한 관악 음악제에서 활약해온 작곡가 이문석은 ‘천마도’를 위해 국악관현악단과 트롬본이라는 악기를 함께 무대로 초대한다. 트롬본 연주는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자 서울트롬본콰르텟 리더인 트롬보니스트 김운성이 맡았다. 1500년 전 그려진 천마도가 발굴되는 순간의 감동을 협주곡으로 표현했다. ‘금관의 모습과 천마의 모습이 드러나기 직전 천둥번개와 폭우로 중단되기도 했던 발굴 작업’ 끝에 ‘기세등등하게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천마의 모습’을 힘찬 음악과 연주로 전할 예정이다.
세 번째 곡인 국악관현악 ‘적월’은 밀양아리랑을 모티프로 삼았다. 개기월식 때 달이 붉게 보이는 적월 현상으로부터 착안한 작곡가 이정호의 작품이다. 월식이 일어나는 동안 태양 빛 중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은 지구를 통과하며 대기 속에 흩어지지만, 파장이 긴 붉은 빛은 대기권을 지나 달을 붉게 비춘다. 그 붉은 빛처럼 마음 속 깊은 곳의 힘이 우리의 꿈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로 선보이는 관현악곡에 담겼다.

첫선음악회에서는 트롬보니스트 김운성과 경기소리 최수정, 서울시뮤지컬단의 한일경, 허도영이 협연을 펼칠 예정이다.

목소리와 국악관현악의 만남

네 번째 초연곡에서 분위기는 다시 전환된다. 작곡가 강솔잎의 ‘영웅’은 조선 세종 1년 장군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전투에서 소재를 찾은 뮤지컬 형식의 국악곡이다. 선율의 진행에 따라 왜구에 대한 조선의 분노, 세종의 슬픔, 이종무 장군의 결의와 전쟁을 향한 굳건한 의지가 청각적으로 전달된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으로서 수많은 무대를 빛낸 두 뮤지컬 배우 한일경과 허도영이 두 영웅의 의지를 매력적인 목소리로 대변한다.
마지막 곡 작곡가 황호준의 ‘태평’은 경기소리와 국악관현악이 어울리는 한마당이다. 역사적, 사회적 반목과 긴장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생명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 ‘무감한 일상의 나날을 뒤로 한 채 환한 빛 가득한 광장에서 함께 춤추며 노래’하길 바랐다는 것이 작곡가의 설명이다. 창극 <메디아>, 오페라 <아랑>, 국립관현악 <Bardo>, 마두금협주곡 <초원풍정> 등을 통해 이미 자신의 세계를 여러차례 보여준 황호준의 음악적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경기민요를 이수한 경기소리 최수정이 함께 무대에 선다.
다섯 작곡가의 다섯 작품은 저마다 다른 깊이와 음색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국악의 진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과거의 유산과 당대적 미의식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그 가을밤을 음악 애호가의 마음으로 열렬히 기다려본다.

첫선음악회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일정 :  2019.09.25(수)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오후7시3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R석 30,000원, S석 20,000원

_김송요(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