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천년이 지난들 변하리오

바로크 사조가 꽃 피던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사에 진한 발자취를 남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9월 서울을 찾는다.

꺼림칙한 단어들이 있다. 예컨대 ‘최고’라는 수식어. 이 단어가 붙으면 괜스레 거부감이 든다. 어느 기준으로 최고라 칭하는지 따지고픈 마음이랄까. 오는 9월 27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4년 만에 내한한다. 역시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내한한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느 해외 오케스트라 앞에 자주 붙는 표현인데도, 유독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앞에만 쓰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것은 ‘최고(最高)’가 아닌, ‘최고(最古)’라는 한자를 병기하기 때문일 테다.

무엇이 이 악단을 ‘최고(最古)’라 할까

첫 내한은 1995년이었다. 당시 주요 일간지에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유구한 역사를 내세워 대서특필했다.

“1548년에 창단된 세계 최초의 교향악단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동아일보 1995.02.22.)”
“44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한겨레 1995.02.25.)”

이 악단을 ‘최고(最古)’라고 일컫는 이유는 무엇일까. 1548년 독일 작센 왕국의 선제후 모리츠가 설립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독일의 궁정악단으로 시작됐다. 르네상스가 끝나가던 시기였다. 이후 악단은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오고 있다. 바로크 사조가 꽃 피고, 낭만주의 음악이 움트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서양 음악사에 진한 발자취를 남겼다.

오랜 역사를 품은 만큼 저명한 음악가들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했다. 대표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는 60년 이상 긴밀하게 호흡을 맞췄다. 그의 오페라 <살로메>,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등 총 아홉 편의 오페라가 드레스덴에서 초연했다. 특히 <알프스 교향곡>은 슈트라우스가 드레스덴 궁정악단의 제바흐 백작에게 헌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곡의 초연에서는 슈트라우스가 직접 드레스덴 궁정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공연의 지휘봉은 정명훈이 잡는다.

현재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지휘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다. 틸레만은 바그너와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해석에 있어서 호평을 자아낸다. 독일 정통 레퍼토리만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더욱 찰떡궁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을 보면 최고(最古) 악단의 필요조건은 ‘변화’보다는 ‘유지’라는 생각도 든다. 오랫동안 유지한 음악적 질감을 손상하지 않고 지켜내는 것 말이다. 틸레만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한 <알프스 교향곡>이 찬사를 받는 이유도 그러하다. 슈트라우스가 의도한 음표를 구석구석 파고드는 틸레만과 슈트라우스의 감성을 온몸으로 아로새긴 이 악단의 아름다운 조화를 선연히 느낄 수 있다.

정명훈·김선욱이 함께하는 여섯 번째 내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지금껏 총 다섯 번의 내한공연을 선보였다. 1995년과 2000년은 주세페 시노폴리, 2006년과 2015년은 정명훈, 2009년은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 내한은 다시금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한다. 정명훈은 2012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수석 객원 지휘자에 이름을 올렸고, 2015년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명예 음악감독으로 추대돼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2013/14 시즌 동안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여러 정기 연주회와 오페라, 해외 투어에서 호흡을 맞췄다. 지난 2015년 내한에서 이들은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사운드를 선보여 이번 공연이 더욱 기대된다. 당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근엄한 음색에 정명훈의 치밀함이 더해져 음악이 참으로 탄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독일 정통 레퍼토리인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해 최고(最古)의 풍모를 뽐낼 예정이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 찬사받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황제>를 협연할 예정이다.

또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다. 정명훈과 김선욱은 정말이지 ‘믿고 들을 수 있는 조합’이다. 지난 2013년, 김선욱은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예술의전당 실황 녹음을 DG를 통해 발매했다. 김선욱의 DG 데뷔 앨범이기도 한 이 실황 앨범에는 베토벤의 <황제>가 수록되어 있다. 2013년 정명훈과 서울시향, 김선욱의 예술의전당 연주를 들은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은 “(김선욱이) 가슴으로 사무친 작곡가의 내면을 이제 ‘김선욱 표’ 연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결코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를 압도하는 법 없이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사실 김선욱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베토벤은 김선욱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다. 그는 2012년부터 2년간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 독일 본에 직접 가서 베토벤 자필 악보를 구하고, 초판본과 현재 악보를 비교해가며 스스로에게 타당한 해석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김선욱의 이러한 진중함이 베토벤에게 어떠한 생명력을 부여하는지 실연으로 확인할 기회다.
물론 ‘최고(最古)’의 사운드가 단연 ‘최고(最高)’라고는 쉽사리 단정 짓지 않겠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시대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만의 장중한 본질이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할 뿐이다.

정명훈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일정 :  2019.09.27 (금) ~ 2019.09.27 (금)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오후8시 (공연시간 : 100 분 / 인터미션 : 20 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200,000원, R석 160,000원, S석 120,000원, A석 80,000원, B석 50,000원

_장혜선(월간 객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