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극장 앞 독립군의 독립 찬가

삼일운동 백 주년.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이 모여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펼친다. <극장 앞 독립군>은 가슴이 뛰는 작품이다.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 이 문장은 1920년 봉오동 전투의 선봉에 서서 독립군의 첫 승리를 이끌어낸 독립운동가 홍범도를 위한 것이다. 수식어는 누군가의 정체성과 업적을 담기 마련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의병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일본군 관사와 순사주재소, 우체국을 습격해 소각했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금광에서 금괴를 탈취하거나 일본 권력자를 거침없이 처단했다. 사냥을 주업으로 삼으며 포수들의 권익 보호에 힘썼던 과거가 뛰어난 저격 실력을 갖춘 독립군 부대 규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방팔방에서 신출귀몰했던 그의 업적은 ‘축지법’이라는 단어에 백발백중 사격 솜씨는 ‘총알’에 담긴 셈이다.

‘극장 앞 독립군’은 바로 홍범도 장군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은 홍범도의 생을 다룬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무장독립항쟁에 앞장섰던 그의 인생 안에서도 가장 드라마 같은 순간으로 기록된다.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에서 뒤집어진 삿갓 모양의 지형을 이용해 골짜기 안으로 일본군 추격대를 유인한 뒤 집중 사격으로 그들을 격퇴한다. 일본군 157명이 전사한 것에 반해 독립군은 단 4명의 희생만이 있었다. 청산리에서도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함께 10여 회의 전투를 벌였고 그 결과 1,200여 명의 일본군이 전사했다. 하지만 <극장 앞 독립군>은 승리의 순간 대신 그가 평생 경험했던 실패에 주목한다.

<극장 앞 독립군>은 민족주의적 정서보다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 삶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는 가난을 피해 군인이 됐고, 귀의와 파계를 경험한 후 산과 들, 공장에서 노동하며 잔뼈를 키웠다. 독립군으로서의 활약이 더해질수록 일본의 압력은 가족에까지 이어져 그의 아내는 고문 끝에 희생됐으며 스스로 아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며 한반도 밖 이주민의 신분이었던 그 역시 스탈린 시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극장의 수위로 노년을 마무리하고 유해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서울시극단 김광보 연출가는 “민족주의적 성향보다는 외롭고 쓸쓸했던 그의 인간적인 삶에 주목해 그 원인을 살펴보고자 했다”는 말로 <극장 앞 독립군>의 관점을 설명한다. 극작을 맡은 고연옥 작가 역시 ‘실수도 실패도 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사람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하는 극’이 되기를 희망했다.

웅장한 합창과 함께 서울시무용단원들의 일사불란한 안무가 스펙터클을 자아낸다.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삶에 주목하다

“난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됐어요.” 은퇴 후 직업을 소개받으러 간 자리에서 홍범도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들이 세운 ‘고려극장’에서 홍범도를 알아본 극작가에 의해 그의 삶은 재조명된다. 극중극이 홍범도 개인을 돌아본다면, 고려극장의 배우들은 연습실과 무대를 오가며 ‘고려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또 다른 투쟁을 보여준다. <극장 앞 독립군>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홍범도와 극장 사람들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독립’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세종문화회관이 개관 41년 만에 산하 7개 예술단체가 모여 만드는 <극장 앞 독립군>의 취지로도 명확하게 이어진다. 서울시극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이 15개 배역을 소화해내고 서울시무용단원들의 일사불란한 안무가 작품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담당한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바이올린과 가야금, 콘트라베이스의 서로 다른 음역대로 화음을 만들 듯 서울시오페라단과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목소리는 합창의 힘으로 극을 견인한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쇼케이스에서는 세종문화회관의 계단 지형을 이용한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해, 대규모 합창과 연주로 작품의 웅장함을 드러냈다. 다양한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결합이 전투의 긴박감과 인간의 쓸쓸함을 담아냈다. 같은 듯 서로 조금씩 다른 창법의 단원들이 하나의 목표로 단단해지는 모습은 9월 본 공연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300명 단원들은 적재적소에서 작품의 일부가 되고 이를 통해 <극장 앞 독립군>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300이라는 숫자는 홍범도가 편성한 대한독립군 초기 병력과도 같다.

<극장 앞 독립군>은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최초로 힘을 모은 역사적 합작 무대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의 힘을 모아

<극장 앞 독립군>은 홍범도의 일생을 음악극 형태로 창작한 버전이다. 하지만 작품은 제목에 ‘극장’을 넣음으로써 인간 홍범도의 삶을 돌아봄과 동시에 공공극장의 책임을 묻는다. “정신과 물질의 충돌 속에서 강한 것과 약한 것의 싸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극장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싸움이 지속되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김광보 총연출) 극장은 시대의 저항을 담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면면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지와 위로를 건네는 곳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은 시대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서로 다른 구성원을 존중하며,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공공극장의 책임이자 의무임을 작품을 통해 말한다. 우리나라 독립에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한반도 밖에서의 활약 때문에 광복 이후 분단 이데올로기에 갇혀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 많다. 그들의 삶이 천천히 조명되기 시작했고 <극장 앞 독립군>은 마치 그간의 빚을 갚듯 가장 크고 웅장한 방식을 선택했다. 압도적인 규모가 뜨거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본 공연은 9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9월 20일(금) 오후 7시 30분, 9월 21일(토) 오후 5시(공연시간: 100분 / 인터미션: 2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70,000원 / R석 50,000원 / S석 30,000원 / A석 20,000원

|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