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3인 3색 「플래시댄스」

3명의 문화예술인이 뮤지컬 「플래시댄스」를 감상하고 각자의 소감을 보내왔다.

 

익숙한 것은 편안함을 준다. 음악 심리치료에서도 새로운 곡보다 알려진 노래를 편곡한 곡이 정신적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이것이 「신데렐라」처럼 뻔한 이야기가 꾸준히 리메이크 되는 이유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1983년의 영화를 뮤지컬화 하면서 그 시대를 무대 위에 재현했다. 이제는 아무도 입지 않는 촌스러운 옷을 입은 배우들이 철강 도시 피츠버그의 나날을 춤과 노래로 표현한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춤추는 알렉스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시놉시스가 사랑스럽다. 부자 남성 닉과 가난한 여성 알렉스의 사랑 이야기 역시 익숙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닉은 회사 위기 수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알렉스와 데이트하고 싶어 전화번호도 달달 외우는 순수한 남자다. 알렉스는 명문 발레학교 입학을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지만 친구가 갑자기 죽고, 닉이 학교에 압력 행사를 했음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 ‘What a feeling’ ‘Maniac’ ‘Gloria’ ‘I love Rock and Roll’ 등 영화 OST 속 팝 명곡들이 라이브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숙한 멜로디들이다. 닉 역을 맡은 앤디 브라운은 영국 보이 밴드 멤버답게 팝 스타일의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알렉스 역의 샬롯 구찌는 정통 뮤지컬 배우로서 시원하게 노래하지만 둘의 화음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플래시댄스」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즐거움을 전해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발레와 현대무용, LP판과 MR, 자전거와 포르쉐, 삶과 죽음이라는 여러 반대 요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착한 사람은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백만 분의 일이라면 가능성이 있다는 말. 백만 분의 일이라면 불가능은 없지. 백만 분의 일이라면 해볼 만한 게임.”
이소영(문화예술 전문기자)

뮤지컬 「플래시댄스」 웨스트엔드 오리지널팀의 공연을 보기에 앞서 원작 영화 「플래시댄스」 를 다시 봤다. 인상적이었던 몇몇 시퀀스 정도만 끊어진 필름처럼 남아 있던 기억을 다시 온전히 이어 붙이고 가는 것이 뮤지컬에 대한 예의일 듯했다. 쥬크박스 뮤지컬로 만들기에 이미 최적의 요소를 갖추고 있던 영화였기에 2D의 세상을 뚫고 나온 무대 위 배우들의 육성과 몸짓은 더욱 생생한 감동과 재미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특히 눈 여겨 봤던 부분은 영화의 서사 구조를 뮤지컬이 어떻게 흡수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비슷하다 해도 엄연히 형식과 전달 방식이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댈 수밖에 없었을 이야기의 뼈대, 플롯 말이다. 필자가 느낀 서사 구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알렉스와 닉의 러브 라인이다. 영화에서 닉은 이혼남으로 등장하고 전부인과의 관계를 잠시 오해한 알렉스로 인해 세 사람 사이에 묘한 오해와 질투의 에피소드가 형성된다. 알렉스의 꿈과 도전, 사랑을 두루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뮤지컬은 이런 삼각 관계 구도를 깨끗하게 도려냈다. 그럼으로써 알렉스의 꿈과 도전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사랑은 그 열정의 테마를 받쳐주는 서사의 서브 구조로만 기능한다.

뮤지컬은 무대 위로 관객의 집중력을 얼마나 끌어모으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를 위해 영화적으로는 아무리 좋았다 해도 무대 위에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잔가지들은 과감히 쳐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걸 각색이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플래시댄스」의 서사적 선택과 변형은 꽤 현명한 각색이었다고 본다.

1983년의 감성을 현재에 되살리기에 알렉스와 닉이 보여주는 사랑의 구도는 조금 식상했다. 대신 춤과 노래는 ‘Oldies but Goodies’라는 레트로 뮤지컬의 미덕을 잘 살려 중장년 세대에게 모처럼 흥겹고 몰입도 높은 무대를 선사한다. 커튼콜은 역시 소문대로다.
이승민(소설가, 장편 『스칼렛 오아라』 출간)

 

무려 「보헤미안 랩소디」가 화제를 몰고온 이 시점에? 드라마에나 존재할 법한 악역들이 현실에 등장하는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휩쓸고 간 한국 시장에?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놀라울 정도로 순진하다. 대놓고 “꿈을 좇으라” 말한다. 악역도 없고 계산기를 두드리지도 않는다. 덕분에 영어 작품임에도 이해하기 수월하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무려 10여 분에 이르는 커튼콜이다. 극 전반에 사용된 뮤지컬 넘버들을 하나로 믹스해 감상이 이보다 더 간편할 수 없다. 전 출연자가 무대 위에 오르니 스케일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커튼콜 즈음 슬그머니 커지는 음량은 심장을 때리기에 충분하다. 콘서트에서나 느끼는 그 두근거림 말이다. 굳이 주인공이 “일어나라” 소리치지 않았어도 분명 관객들은 흥에 겨워 일어났을 것이다.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1부 마지막에 나오는 알렉스의 물벼락 댄스. 뭔가 기시감이 들어 찾아보았더니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 배우가 이 장면을 패러디했단다. 아, 그런데 「작업의 정석」 OST 중 가수 자두가 부른 ‘작업의 정석’의 작사가 이름이 이태건이라지? 어라, 나랑 이름이 똑같구나. 이 분위기를 타고 자연스럽게 “저는 작사가입니다”라고 내 소개를 하고 싶지만 왠지 망설여진다. 일과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냥 직장인 아닌가. 그리고 일에서 해방되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잠깐 짬을 내 작사가가 된다. 그러고 보니 알렉스도 피차일반이다. 낮에는 용접공, 밤에는 춤꾼. 그녀는 남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을까?

사람의 재능은 보통 하나 이상이라고 믿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례들을 꽤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알렉스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이 입술을 맴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생계 해결에 밀려 사람들이 꿈에 투자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아직 멀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알렉스처럼 “꿈에 칼처럼 찔려(Maniac 중)” 보지도 못했고 “음악도 되어보고 리듬도 되어본(What a feeling 중)” 적도 없으니. 꿈이 덜 고팠던 게지. 애초에 이 작품에는 없는 ‘악역’과 ‘계산’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 역시 꿈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그녀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이태건(작사가, 이은미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