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우리네 삶을 적는다는 것

서울시극단 <그 개> 극작가 김은성 인터뷰

우리네 삶을 적는다는 것

서울시극단 <그 개>
극작가 김은성 인터뷰

글. 장혜선(객원기자)


누구나 빈틈을 가지고 산다. 오늘도 결핍된 처지에 공허함을 느꼈다면, 김은성을 주목하길 바란다.
바로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 <함익>과 두산아트센터에 <썬샤인의 전사들>을 올리며 그 시즌 가장 주목 받는 작가가 됐다. 나 역시 표가 곧 매진된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예매한 기억이 난다.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를 회고해보면 어떠한 기분이 드는가.

<썬샤인의 전사들>은 오랜 시간을 걸쳐 완성한 작품이었다. 대중의 반응도 뜨거웠고, 오랫동안 공들인 작품인 만큼 기대가 컸다. 지나고 나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함익>도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인데 좋지 않은 평들이 신경 쓰여서 작품과 조금 거리를 뒀다. 힘이 들어가 있던 한 시기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허했다.

 

당시 “너무 숨 가쁘게 달려왔다”며, “작품이 끝나면 유럽 공연이라도 다녀오고 싶다”고 밝혔다. 2년의 공백 동안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 더욱이 모험이나 여행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어서 마흔 살이 가까이 될 때까지 유럽을 안 가봤다. <함익> 공연을 마치고 유럽과 미국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대부분 공연을 관람했고, 뉴욕에서는 <목란언니> 낭독공연을 했다. 해외를 자주 나가다 보니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까지 유학 가서 연극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연극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다. 이러한 경험이 나중에는 후유증으로 다가왔다. 큰 세계를 마주하고 나니 내가 하는 작업들과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게 됐다. 계속 똑같은 방식대로 희곡을 쓰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러한 고민 탓에 결과적으로는 아주 오랫동안 작품을 못 쓰게 됐다.

 

고민에 대한 해답은 찾았나.

아직 못 찾았다. 당장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평생 그러한 고민을 갖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김은성의 극작술이라고 하면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 우리 현대사를 지속해서 건드리려는 시도, 둘째, 삶의 변두리에 있는 소외된 삶을 조명하며, 셋째, 해외 고전 작품을 김은성만의 작품으로 새롭게 재창작하는 것이다. 이중 가장 애정을 두고 있는 작업이 궁금하다.

주로 그 세 가지 범주 안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역사에 관한 이야기만 쓰면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좀 지겹다. 그러다 보면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진다. 플롯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골격 있는 고전 작품들을 다시 해석해보면 환기가 된다. 앞으로도 번갈아 가면서 작업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그 개>는 소외된 삶을 조명하려는 의도인가. 가정의 결핍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 듯하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정서가 결핍이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데도 왜 이리 각박한지 모르겠다. <썬샤인의 전사들>과 같은 역사 문제, <함익> 같은 고전을 통해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내 주변의 삶을 돌아보다가 <그 개>의 출발점을 찾았다.

 

아직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나의 작품 경향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나.

항상 이야기는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상 과학 이야기는 오히려 더 쓰기 쉽다. 그런데 우리 삶을 소재로 하여 새로운 플롯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보편적인 이야기에서 신선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내용이 나올 때까지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내가 쓴 작품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고민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생히 논의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겼으면 좋겠다. 새로운 이야기인지, 그리고 오늘날에 필요한 생생한 메시지인지 스스로 진단을 많이 한다.

이번 신작은 <로풍찬 유랑극장>, <썬샤인의 전사들>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연출가 부새롬과 의기투합한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단장님 취임 이후, 단장님이 직접 연출하지 않은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작년쯤에 김광보 단장님이 부새롬 연출과 함께 서울시극단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그 무렵 <연번엄마>를 무대에 올렸는데, 김광보 단장님께서 공연이 잘 된 날에 보러 오신 것 같다.(웃음)

연출을 다시 해볼 생각은 없는가. 대본을 보니 무대 지시문이 빼곡하게 적혀있어서 인상 깊었다.

벌써 마지막 연출을 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연출할 마음은 전혀 없다. 내 머릿속에서 구상한 무대의 움직임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생각하면 연출의 매력은 엄청나다. 하지만 연극 연출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사람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활동적인 에너지가 부족해서 연출이 잘 안 맞는다. 지난 2년 동안 여러 고민을 거치며 결심한 것 중 하나가 연출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계속 글만 쓰고 싶다. 다만 그동안 희곡만 고집했는데, 앞으로는 글에 대한 가능성을 넓혀 보려고 한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올린 두산아트센터나 세종문화회관은 대형 극장이긴 하지만, 두산아트센터는 민간극장이고 세종문화회관은 공공극장이다. 창작자의 관점으로서 각 공연장에 올리는 작품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봤나.

두 극장 모두 작가가 원하는 방향을 존중해준다. 만약 상업성을 신경 써야 한다고 하면 작품의 방향이 많이 바뀔 텐데, 그런 부분에서 부담을 안 준다. 가장 좋은 점은 무대 구조를 미리 파악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로서는 공연이 올라갈 무대를 알고 작업하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온다. 이번에도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작업했다. 무대와 객석을 머릿속에 산정하고 대본을 쓰면 완성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작가가 많으면 좋을 텐데, 실제로 대부분 그러지 못한다.

이제 많은 후배와 제자, 팬들이 생겼고, 점점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의식되는 것이 있다면.

‘올드’해졌다는 말을 들을까 겁난다. “김은성 작품도 이제 늙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도 대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내 작품을 가장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 누구한테 인정받는 것보다도 그 친구들에게 재밌다는 평을 듣고 싶다. 데뷔 때부터 희곡이 너무 영상적이고 드라마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희곡 작가 활동을 하면서 추구하는 꿈이 있었다. 재밌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 심오하고 불편한 이야기보다는 보편적이지만 극장에서 이뤄지는 연극만의 디테일함이 살아있는 희곡을 쓰고 싶다. 그러면 젊은 관객층이 극장에 많이 와서 연극을 많이 볼 것만 같다.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작품과 함께 시대에 던지고 싶은 화두”를 묻자 “부끄럽지만 정의”라고 답했다. 인상 깊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정의에 대한 기준이나 가치가 점점 모호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한 세상에 스스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다짐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가.

그 무렵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불공정한 정치가 주는 스트레스가 과도했을 때이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내가 너무 거대담론에 휩싸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뒤돌아봤다. 정권이 바뀌며 법치주의의 틀이 조금은 정상적인 흐름으로 바뀌고 있는데. 다들 잊었던 것들이 비로소 하나하나 자기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부당함이 재조정되고 있는데, 정작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런 결핍감이 <그 개>를 쓰게 된 힘이 됐다.

이번 서울시극단 작업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작품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관객이 많이 와서 작품에 공감해주길 바란다. 이전에 세종M씨어터에 <함익>을 올리면서 느낀 건데, 세종M씨어터 관객은 대학로 관객과 조금 다르다. 세종M씨어터에는 확실히 연극과 친하지 않은 대중이 많이 온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대학로 쪽 반응보다 세종M씨어터 관객 반응을 믿는 게 있다.

앞으로 예술적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벌써 한 삼 년,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진행하는 세종 카메라타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본을 작업해 오페라단 내부 발표도 했다. 음악극은 연극과는 완전히 다르더라. 대본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며 써야 한다. 그동안 텔레비전 드라마를 안 하는 이유는 확실히 있었다. 희곡을 작업하는 이유가 분명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가 힘들었다. 변두리에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드라마에서는 피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앞으로 드라마 시장이 조금씩 열릴 것 같다. 앞으로는 오페라 대본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을 쓰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

창작극 <그 개>

창작극 <그 개>

일정 : 2018.10.5(금) ~ 2018.10.21(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오후 7시, 일 오후 3시
(화 공연 없음) (공연시간: 120분/인터미션 없음)

연령 : 만 13세 이상

티켓 : R석 5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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