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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번역, 성실한 스텝, 진지한 관객

 

서울돈화문국악당 음악극 <적로> 일본공연 후기

훌륭한 번역, 성실한 스텝, 진지한 관객

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사진.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훌륭한 번역, 성실한 스텝, 진지한 관객.” 일본에서 공연한 ‘적로’는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렇다. 그래서 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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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에서 만들어져서 일본에서 상영하거나 상연한 작품을 적잖이 봤다. 늘 ‘번역’이 아쉽다. 오래 전 한국에서 상영한 ‘서편제’(1993년)가 크게 인기를 끌었었다. 이듬해 도쿄의 시네마테크에서 ‘서편제’를 일본 관객과 함께 본 일이 있다. 2%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역시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년)를 볼 때도 그랬다. 한국적인 정서와 전라도의 빛깔이 드러나지 못했다. 모두 일본에 초점에 맞춰진 느낌을 받았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번역을 이렇게 하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게 되었으리라.

‘적로’는 달랐다. 한국도 알고, 일본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두 나라의 ‘전통’을 모두 알고 진행한 번역이었다. 일본의 전통을 깊숙이 알고 있는 관객이, 한국의 전통을 제대로 느끼게끔 해주는 번역이었다. 한국어와 판소리에 등장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비롯해서 맛깔 나는 어휘들이, 일본어에서 가장 적확(的確)하게 변환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한국어와 일본어와 어순이 비슷하다곤 해도, 이렇게 ‘동시통역’처럼 배우의 호흡과 번역된 자막이 정교하게 맞기도 쉽진 않다. 일본관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마치 한국어가 들리는 듯 관극(觀劇)을 했으리라! 안성민의 번역이다. 일본에서 가장 ‘조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랐다. 일본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일본에서 교사생활을 하기도 한 여성이었다. 이랬던 그녀가 판소리를 알게 된다. 남해성 명창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익히면서, 두 나라 사이를 오고 가면서 인생의 중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음악극 ‘적로’를 번역하는데, ‘안성민’ 이상의 인물이 또 있을까? 공연 후 알아보니, 그녀는 그간 한국에서 온 전통공연일본인들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여러 역할을 해왔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제작을 하고, 연출가 지기학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판에 박은 소리 – Victor춘향”의 일본공연에서도 그녀의 역할은 매우 컸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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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외에서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는 인재는 또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열성적인 삶은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해외공연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연관되면서 발견하는 안타까움 중의 하나는, “공(功)은 국내에서 간 사람의 역량이고, 과(過)에 현지에서 도와준 사람의 미흡”으로 도식화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한국문화원’과 ‘돈화문국악당’은 이런 도식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말이다.

이번 공연이 펼쳐진 한국문화원의 한마당홀은 훌륭한 소극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적로와 같은 ‘음악극’을 잘 보여주기 위해선 시스템을 더욱 갖춰야 하고, 전문적 스텝을 더욱 갖춰야 했다. 무대, 음향, 조명, 장치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좋은 조건은 아니었음에도, ‘돈화문국악당’의 스텝들이 주어진 조건에서 최상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대단했다.

오히려 한국보다도 더 좋은 점이 있기도 했다. 돈화문국악당의 초연공연에선 무대 뒤편에 ‘가려진’ ‘음악’이 이번 한국문화원 무대에선 ‘선명히’ 보인다. 실제 음악을 잘 아는 김정승 감독과 정영두 연출의 의기투합으로 짐작된다. ‘적로’의 주인공 안이호(박종기 역)와 정윤형(김계선 역)은 둘 다 대금재비. 실제 무대 뒤 두 명의 대금주자인 박명규(박종기 역)와 여상근(김계선 역)이 배우의 연기를 보강해주면서, ‘음악극’으로서의 면모를 국내초연보다 더욱 갖추게 되었다. 이렇듯 대사와 연기, 음악과 조명 등을 현명하게 병치(竝置)하면서, 작품은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이렇게 ‘적로’가 또 다른 장소에서 공연되면서 얻게 된 적잖은 수확이다. 특히 연극과 무용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공연분야를 넓힌 정영두 연출은, 동경문화원의 무대를 잘 활용하면서 ‘소리와 몸짓’의 조화로움을 잘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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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쉬움도 남는다. 하윤주(산월 역)가 그렇다. 공연에서 참 중요한 포스터와 리플릿에서 ‘산월’의 존재는 너무도 미미하다. ‘적로’에서 ‘산월’은 어떤 존재인가? 작가 배삼식은 두 명의 실존인물의 연결고리로 산월을 등장시켰다. 모녀(母女)를 넘나드는 그녀를 통해서, 인생과 예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유한한 인생과 공허한 예술은 일본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주제다.

특히 실존하는 한 공간에서 생자(生者)와 사자(死者)가 공존하는 건, 전통가옥 안에 불단(佛壇, 부츠단)을 설치하고 조상과 공존하는 일본인에게는 더욱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 매체로서 ‘산월’이 존재한다. 실제 정가(正歌)를 전공한 하윤주의 고아한 목소리와 한국무용을 기본으로 한 정갈한 움직임은, 품격 있는 음악극을 만들어내는 일등공로자였다. 공연 전 마치 2인극처럼 보였던 작품을, 하윤주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 3인극의 밸런스로 회복시켜주었다. 안이호, 정윤형, 하윤주가 참 자랑스럽다. 그들의 또 다른 행보가 크게 기대된다.

이번 동경문화원에서의 이틀 공연은, 관객들의 진지한 관극태도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일본관객들의 집요할 만큼의 집중은 대단하다. 한국 혹은 한국인의 좋은 점이 참 많으나, 여기선 그런 얘기는 잠시 접어두자.
한국의 ‘일부’ 관객은 너무 즐기고 느끼는데 치중한다면, 일본의 ‘다수’ 관객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는데 길들여졌다. 이런 일본의 관극태도가 한국의 공연자에겐 매우 ‘숨 막히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나라가 상대의 특성과 강점을 적절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를 오가면서 여러 문화를 접했던 사람의 이런 얘기가 다소 도식적임을 자인한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성사시키는 단계를 넘어서, 성공을 이끄는 차원으로 가기 위해선” 이런 얘기가 일정 도움이 되리라.

그간 한국작품의 일본공연의 역사에서, ‘적로’는 또 다른 훌륭한 성과로 기록되리라. 한국작품을 외국에서 소개할 때, ‘훌륭한 번역, 성실한 스텝, 진지한 관객’의 삼박자가 맞아야 함을 새삼 확인한다. ‘돈화문국악당’과 ‘적로’는 그런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