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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석, 있는 그대로

강필석, 있는 그대로

글. 장경진(객원기자. 공연칼럼니스트)


“나 때문에 애쓸 필요 없어.” 한없이 서툰 사랑을 하는 인우를 향해 태희가 말한다. 무리하고 있는 이에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이하 <번점>)는 말한다. 강필석도 그렇다. 10년 전 작품의 탄생부터 몇 번의 공연을 거치며 그는 자신의 변화를 그대로 작품에 녹여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 순간에 집중하는 강필석을 만났다.

 



많은 관객이 기다려온 작품인 만큼 첫 공연 때부터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들었다.

<번점>처럼 잔잔한 작품에서 관객들이 기립을 해주시면 더 뜨거운 느낌이 있다. 첫 공연 때 배우들 모두가 울었다. 참여한 배우들이 이 <번점>이라는 작품 자체를 사랑한다. 배우들 중에는 학교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고, 초·재연을 객석에서 본 친구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서 굉장히 벅찼다고 하더라.

모두가 잘하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부담감도 있었겠다.

창작진부터 배우들까지 모두가 그랬다. <번점>이 다시 공연된다고 했을 때 무조건 한다고 했지만, 나도 이 작품이 롱런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공연을 15년 넘게 하고 있지만, 제작사에서 뭘 하자고 하면 잘 안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을 극장에 오게 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해보자 했다. 뭐든 해보자, 그런 마음이다. 이런 얘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5년 전 재공연 이후 <번점>이 계속 공연되어졌더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진 않았을 거다. 어떻게 보면 또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거든.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지만 시장 상황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삼연이 정말 감사하다. 다른 사람이 와도 이 작품이 꾸준히 공연될 수 있도록 탄탄히 만들어놓고 싶다.

어떤 점이 10년간 이 작품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나.

처음에는 이야기가 좋아서였다. 20대 때 영화를 봤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그리는데 다루는 내용은 굉장히 판타지였다. 온전한 사랑에 집중하는 영화를 보며 모두가 저런 사랑을 꿈꾸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뮤지컬은 쇼적인 부분이 강할 때여서 감성적이고 정적인 영화가 뮤지컬로 가능할까 싶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가 망쳐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음악을 한 곡씩 들으면서 뮤지컬에서도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다룰 수 있다는 게 새롭고 좋았다.


그동안 사회도 변했고 강필석도 변했다. 삼연에 맞춰 변화하는 지점이 있나.

초연 때도 인우가 결혼한 이유에 대해 꾸준히 의문을 가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 선택은 두 가지다. 같이 따라가거나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거나. 물론 지금도 사랑이나 운명을 믿는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의 상처나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피부로 많이 못 느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단 한 사람만 사랑해”라고 말할 때 너무 죄책감이 든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을까. 그게 이 작품의 포인트다. 예전에는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의 강필석은 조금 고민하게 된다.

끝끝내 버티다 와르르 무너지는 인물을 연기했을 때 강필석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그동안 맡은 인물들이 좀 그랬던 것 같다. 인우도 자신에게 생겨나는 감정을 부정하고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질투를 하고 잘 보이려고 연습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상대에게 끌리는 마음과 정신 차려야지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그러다 태희의 라이터를 현빈에게서 발견했을 때 같은 결정적인 상황이 온다. 인우는 아마 무서웠을 거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여도 무섭고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빈 무대에도 인우의 고민과 혼란이 객석으로까지 잘 전달돼서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더라.

이 작품은 비어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초연 때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가 연습 첫날 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아무리 해봐도 이 작품은 그럴싸해 보이는 무대로 포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오로지 배우들의 정서로만 채워져 그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져야 한다.” 이 말이 깊숙하게 박혀있다. 나는 이 작품이 얘기하는 사랑이 있을 수 없는 사랑 혹은 위대한 사랑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데 초·재연에 비해 20대의 인우가 너무 바보처럼 그려진 감이 있다.

있는 그대로가 가장 매력적이고 좋은데, 사람들은 가끔 애를 쓴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인지 잘 보이고 싶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는 서툰 행동 모두를 사랑스럽게 보지 않나. 상대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지만 인우가 하는 말들은 진심이 담겨 있어서 로맨틱하기도 하고.

공연이 진행되면서 ‘사랑이란 게 저렇게 사람을 바꾸지’라는 싶어서 오히려 관객이 생각할만한 공간을 열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그냥 느껴지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배우들은 표현에 대한 강박이 있는데, 무대에서 표현을 안 할수록 객석의 관객들에게 더 표현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대 안의 공간에서 최대한 진실을 느끼려 하려 굉장히 노력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계속 뭔가를 느끼고 경험하고 몽상도 해보면서 나아가고 싶다.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

기간 : 2018.06.12 (화) ~ 2018.08.26 (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요일, 공휴일 2시 6시
※6.27(수), 7.4(수), 7.11(수), 8,22(수) 3시 공연 있음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시간: 120분 / 인터미션 15분)

티켓 : R석 88,000원 / S석 66,000원 / A석 20,000원

연령 : 만 7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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