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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역사 ‘서울시뮤지컬단’을 말하다

이성봉 기자(前 서울시뮤지컬단 기획)

한국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역사
‘서울시뮤지컬단’을 말하다

글. 이성봉 기자(前 서울시뮤지컬단 기획)


세종문화회관이 40주년을 맞이하면서, 서울시뮤지컬단이 세종문화회관 전속단체로 합류한 것도 40주년을 맞이하였다.
한국 뮤지컬계의 창작의 산실로, 스타들의 사관학교로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서울시뮤지컬단’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

지붕위의 바이올린(1991)

유논과 아보스(1994)

세종문화회관 개관, 작품의 폭을 넓히다

 

세종문화회관(이하 회관)이 올해 40주년이 되었다. 새롭게 지어진 회관에 국립극장에서 국립가무단으로 활동하던 단체가 서울시립가무단(이후 서울시뮤지컬단으로 변경, 이하 ‘뮤지컬단’) 이름으로 바꾸어 세종문화회관 전속단체로 합류한 것도 40년이 되었다. 국립가무단은 당초 대형 집체극 형태의 창작물과 고전적인 소재 위주로 작품을 해 오던 단체였다. 이런 단체가 국립극장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합류한 것은 작품의 폭을 전통에서 서구적인 작품까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기와 베스>, <지붕위의 바이올린> 같은 작품성 있는 뮤지컬을 무대화 한 것도 이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94년 러시아와 합작 뮤지컬로 만들어진 <유논과 아보스( Junon & Avos )>에 기획자로 참여하면서 세종문화회관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이었고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후 뮤지컬단 기획위원으로 참여해서 함께한 작업도 러시아 출신 한인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었다. 당초 오디션에서 뽑힌 배우가 김법래였다. 하지만 단체에서 김봉환 음악감독을 주인공으로 대체해 공연을 하였다. 지금은 뮤지컬계 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김법래 배우지만 당시에는 이런 아픔이 있었다.

MBC 가족뮤지컬 <루루와 열두요정> 리플렛

뮤지컬 <애니> 공연장면

90년대는 방송의 시대였다. 방송 광고가 나가면 안내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였다. 당시 뮤지컬단이 MBC와 공동으로 어린이 뮤지컬을 제작하던 시기였다. 5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10일간 20회 공연 정도 공연된 대극장 공연은 그야말로 초대박 상품이었다. 세종 기획 공연을 위시하여 어떤 공연도 어린이날을 앞두고 있는 당시 어린이 뮤지컬 공연을 대체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단원들의 땀 흘린(?) 수고가 늘 따라야만 했다.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 배우들이 캐릭터 탈을 써야 했고 의상이나 동작도 워낙 많아 흘린 땀이 부지기수였다. 3천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하루 3회 공연한 당시 기록도 극히 드문 기록이다. 최근 다시 재결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젝스키스, 한류스타 ‘아시아 프린스’ 장근석, 가수 양파, 진주부터 방송인 홍석천, 노희지 등이 단원과 함께 한 스타들이었다. 우리나라 어린이 뮤지컬 제작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좋은 음악과 무대 공연을 만들어 미래의 관객을 만나는 역할을 하였다.

가족뮤지컬을 만드는 저력은 2011년 뮤지컬 <애니(Annie)>를 무대에 올리며 꽃 피울 수 있었다. 다음해 앵콜 공연까지 공연이 너무 잘 되어도 문제였다. 단기간 보여준 흥행이 라이센스를 가진 저작권자 입장에서 몸값을 올리는 기회로 이용했다. 천정부지처럼 뛰는 라이센스 작품의 저작권료 문제는 묻혀 있던 좋은 작품을 살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뮤지컬단만 낼 수 있는 팀웍과 앙상블의 묘미는 85년 이후 98년까지 5차례 공연되었던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 같은 작품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이 작품 역시 저작권이 걸림돌이 되어 더 이상 뮤지컬단에서 무대에 올리지 못한 작품이 되었다. 故 이의일 단장을 비롯한 송용태, 김진태, 김미정, 이흥구, 강효성, 박정자, 주성중, 이혜경 등 배우들이 당시 무대 주역이었다.

창작의 産室, 스타 士官學校

 

뮤지컬단에서 활약하는 배우들 중에 실력이 출중한 배우들이 많이 있지만 공공성을 띤 단체라는 면에서 일반 상업극단보다 배우의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면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뮤지컬단을 떠나야 스타로 뜬다는 이야기도 하곤 했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이혜경이나 <삼총사> 등 뮤지컬과 방송,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김법래, 뮤지컬계 주연급 배우로 자리잡은 고영빈, 문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송용태, 박철호, 이병준, 송영규, 서주성 등 배우들이 뮤지컬단이 배출한 스타들이다. 지금도 단체에서 호시탐탐 안정된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려는 젊은 단원들이 있는 줄 안다. 뮤지컬단은 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단체로서 연기, 노래, 춤을 배울 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직장생활까지 배우는 체험 현장이다. 오늘날 뮤지컬계는 아이돌 스타를 위시한 모든 배우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체에서의 훈련을 통한 자기 발전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 공연 사진

뮤지컬단도 세종 자체 제작이 아닌 대형 작품을 위해서 외부 기획사들과 공동 제작형태로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해 CJ E&M과 공동으로 제작하여 큰 성과를 얻은 <광화문 연가>도 광화문이라는 지역성 때문에 세종문화회관과 더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작업이었다. 안재욱, 이건명, 이경준, 정성화, 차지연, 허도영 등 출연진이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설앤컴퍼니와 공동제작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있었다. 박완규, JK 김동욱 등이 배우로 함께 하였다. 스타성 있는 가수로 가장 관심을 모은 케이스는 빅뱅의 승리가 출연한 <소나기>였다. M씨어터에서 한 달가량 공연된 이 작품은 상대역으로 출연한 배우가 승리 팬으로부터 부러움과 질투를 많이 받기도했다. 승리가 출연한 회차는 조기 매진되어 좌석 전쟁이 일어났고 다른 배우가 출연한 공연도 덩달아 많은 관객이 찾은 공연이 되었다.

예그린 시절 패티김이 출연한 <살짜기 옵서예>에 이어, 세종으로 이전한 후, 전통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형태로는 이덕화, 강효성, 최주봉 등이 출연한 <성춘향>과 윤복희, 박철호 등이 출연한 <나는야 호랑나비>와 <양반전>, <즐거운 한국인> 등 작품이 있었다. 열악한 시절 세종이라는 대형 무대에서 꾸준히 창작을 통해 뮤지컬을 만들어 온 열정이 오늘날 창작 뮤지컬의 터전이 되었다. 뮤지컬단에서 97년부터 세 차례 시도되었던 야외뮤지컬 <한 여름밤의 꿈>도 광화문을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특별한 문화 공간으로 기억하게 하는 시도였다.

서울시뮤지컬단은 한국 뮤지컬계의 창작 산실이었고, 뮤지컬 스타들의 사관학교였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저력은 한두 명 주연이 아닌 앙상블이 갖는 매력이다. 지면의 한계로 작품마다 땀 흘린 많은 배우들과 작곡, 극본, 연출, 안무 등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국 뮤지컬이 오늘에 이른 것에 서울시뮤지컬단과 함께 한 이들이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에 깊은 공감을 한다. 앞으로도 서울시뮤지컬단이 한국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관객들과 함께 오래도록 호흡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