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자유롭다’, 대중음악의 새로운 변신
서울시뮤지컬단 뮤지컬 <브라보 마이 러브>
작곡가 김형석 인터뷰
글. 장경진 (객원기자)
‘사랑이라는 이유로’, ‘아름다운 이별’, ‘너의 뒤에서’ 등의 메가 히트곡을 남긴 김형석 작곡가의 음악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5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브라보 마이 러브>가 바로 그것이다.
원곡자이자 음악수퍼바이저로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김형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989년 故 김광석이 부른 ‘너에게’로 데뷔한 후 많은 곡으로 사랑받았다. 그동안 주크박스 뮤지컬 제안이 있었을 텐데.
2시간가량의 뮤지컬을 끌고 가려면 다양한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내 곡은 사랑이야기가 많다. 스토리를 넓게 펼치기도, 코미디나 반전 같은 요소를 넣기도 어렵다. 그래서 제안은 많았는데 쉽게 연이 닿질 않았다. 그러다 20년 지기인 박칼린 감독이 한진섭 연출가를 믿어보라고 해서 전적으로 믿고 시작하게 됐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해외로 입양된 후 유명한 플루티스트가 된 딸과 친어머니의 만남을 다룬 작품이다. 소재가 다소 올드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도 텍스트만 봤을 때는 요즘 같은 시대에 조미료가 가미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연습을 보니까 그건 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곡의 가사가 이야기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곡 선정은 전적으로 제작진에게 맡겼는데, 블록 쌓기 하듯 작가와 연출가가 잘 짜 맞췄더라.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지 않았을까. (웃음) 작품에 90년대, 2000년대 곡이 많아서 그때를 추억하기도 좋고 감성적으로 촉촉하게 볼 수 있겠다는 안심도 들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곡의 익숙함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음악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제일 좋은 뮤지컬은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지 극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곡들은 원래의 목적이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가요 틀어놨구나’ 같은 느낌이 들면 그 순간 작품이 뻔해지고 분위기가 꺾인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결국 스토리의 탄탄함과 편곡이 중요하다. 가요도 물론 무대에서 공연하는 곡이지만 이야기로 풀어낼 때는 거기에 맞는 옷을 다시 입혀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 장치를 많이 해야 된다. 내 색깔을 벗어야 된다는 것, 밸런스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작곡가로서는 내 곡에 스토리를 입혀 무대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고 즐거움이다.
편곡도 제작진에게 맡기고 조언을 하는 정도로만 참여하고 있다. 생각과 달라 흥미로웠던 곡이 있나.
베이비복스의 ‘킬러(Killer)’. 주인공 제니의 대척점에 있는 샤론이 부르는 곡인데 원곡보다 훨씬 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코믹하게 편곡이 됐다. 빅밴드 스윙으로 <인어공주>에 나오는 마녀 우슬라 느낌이 난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 ‘천국과 지옥 사이’다. 서로를 알아보게 된 모녀의 듀엣곡인데 연기가 더해져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가수는 노래할 때 자신이 무대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뮤지컬은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재밌다.
그동안에도 <스타가 될 거야>, <겨울 나그네>, <겨울연가>, <엄마를 부탁해>까지 4편의 창작뮤지컬을 했다. 어떤 지점에서 뮤지컬의 매력을 발견했나.
<스타가 될 거야>는 1995년에 공연됐는데 당시만 해도 뮤지컬시장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10시부터 모여서 몇 달간 하나의 극을 준비하는 모습에 많은 걸 느꼈다. 반성도 많이 했다. 작곡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다 보니 여러 사람이 한 군데 모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디테일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감동적이었다. 클래식을 전공해서 뮤지컬, 영화 음악에 대한 오랜 로망도 있었고.
왜 뮤지컬, 영화음악인가.
가요는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인 감각이다. 트렌드이기도 하고. 그런데 트렌드라는 것은 손바닥만 뒤집으면 식상함과 같다. 나이에 맞는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보면 결국 뮤지컬, 영화, 드라마 음악이나 연주로 귀결된다. 4분에 만족하지 않고 1~2시간 동안 베리에이션을 하고 스킬을 펼치며 나만의 색을 갖는 것.
하나의 앨범을 만드는 것도 나름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싱어송라이터가 앨범에 자신의 색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요즘은 다 음원을 내지 않나. 마케팅의 방법도 달라졌고 집에서 원맨밴드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물론 K-POP에도 그들의 세계관이 있다. 하지만 음원으로 소비가 되다 보니 연속성이 있어도 하나의 곡에서 스토리텔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는 모두가 동일한 시간에 각자의 롤을 해야 한다. 관객들도 표를 사고 시간을 내서 현장에 와야 한다. 훨씬 공이 더 들어가는 곳이다. 진검승부지.
어떤 스타일의 뮤지컬을 좋아하나.
아직도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뭘 봐도 신선하고 새롭다. (웃음) 뮤지컬은 2~3분 안에 그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매체다. 그 안에 수많은 상상력이 있고,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장르가 섞이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실험적으로 써볼 수 있고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물론 무대의 사이즈나 요즘 스타일이라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테크닉의 차이지 음악은 자유롭다.
점점 더 자유로운 것을 꿈꾸게 되나 보다.
구조에도 트렌드에도 갇히기 싫고 ‘이렇게 하면 왜 안 돼?’ 이런 게 생긴다. (웃음)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곡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저 곡 쓰는 법을 알게 된 거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같은 곡들 들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음악만 알 때의 순수성이 느껴진다. 돌아보면 그런 오차가 발견되기 때문에 이제는 비교대상이 나 자신이 되는 거다.
그것이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동력일까.
옛날에는 프란츠 리스트가 수도원에 들어간 게 이해되질 않았나.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고, 그에게는 결국 믿고 기댈 데가 신이지 않았을까. 음악으로 올인 한다면 내가 경험하는 환경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음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작업도 그런 의미라고 느껴진다. 스스로가 자유롭게 되면 가장 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해야 되고, 하고 싶고, 할 줄 아는 게 그런 거라면 진짜 대가가 되는 거겠지. 나는 그걸 향해 노력하는 단계니까 아직은 더 써야 된다. (웃음)
